척의 일생(2025)
우리는 각자의 삶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그 삶들은 천차만별이겠지. 지금 글에서는 그 난이도를 논하지 않겠다. 젠슨황이 삼삼오오 모여 먹은 치킨의 자태도, 눈부셨던 마이클 잭슨의 춤사위도 지금은 연상하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인 삶 자체를 따져보자. 삶과 싸우는 법들은 각자 이름과 습관을 지녔다. 실존주의, 낙관주의, 허무주의, 극단적으로는 반출생주의까지. 이 모든 발버둥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삶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유 없이 태어나, 가까운 훗날 겨우 찾은 의미를 잃게 되겠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고통스러운 왕도를 거쳐 어른 비스무리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거기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삶을 '긍정'할 수도 있겠다. 척의 일생은 그 이야기를 담았다.
인터넷이 조금씩 먹통이 되고, 이상 기후가 심각해지는 멸망의 세계 속에 기이한 광고 하나가 반복된다. 척(찰스 크란츠)의 35년 인생을 치하하는 내용이었다. 이 영화는 3부작 구성이지만 3부부터 역순행적으로 연출되었다. 3부는 아무도 모르는 척을 축하해 주는 광고와 함께 멸망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2부는 척이 뇌종양 판정을 받기 반년 전에 길거리에서 일어났던 작은 해프닝을 담았고, 1부에서는 척의 유년시절과 함께 영화의 주제가 소개되었다.
척이 살던 집 다락방은 조부모들의 통제로 들어갈 수 없었다. 가족들을 먼저 떠나보낸 후에야 척은 그 다락방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다락방은 누군가의 죽기 직전 모습이 보였다. 척은 거기서 병상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개의치 않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척의 죽음과 함께 우주는 끝났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반복된다. 척이 접하거나 말할 때와 3부 등장인물들이 접하거나 말할 때. 노골적으로 반복되는 대사들은 전부 메시지다. 우주 달력으로 치면 인류의 시간은 12월 31일 마지막 몇 분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항상 기다리는 게 가장 힘든 일이다 거나. 전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 것인지 강한 격려를 담았다. 이 중 기다리는 게 가장 힘들다는 표현은 멸망을 기다리는 3부의 등장인물들, 다락방에서 자신의 죽음을 바라본 척의 할아버지의 말이다. 이미 끝을 알고 있는데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알 수 있는 미래는 죽음뿐이고, 거기까지 도착할 과정이 너무 피로하지만 그래도 거기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영화에서 척은 곧 우주다. 이는 척의 어렸을 적 학교 교사가 해준 이야기에서 착안된다. 교사는 척의 양쪽 관자놀이를 손으로 짚으며 자기 손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물어본다. 척은 뇌라고 답했고, 교사는 너가 바라보고 생각하는 모든 것. 결국 세상과 우주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척의 죽음으로 세상이 멸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조로 인해 영화가 표방하는 긍정의 휴머니즘은 난항을 겪었다. '척=세계'라는 알레고리는 설득력이 없다. 짐 자무쉬의 <패터슨>처럼 심도 있게 한 캐릭터의 내면을 세계관으로 구축한 게 아니라서, 3부의 등장인물들은 맥거핀 이상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의 통일성을 잡고자 3부의 등장인물들을 2,1부에 지나치듯 보여줬지만, 이는 상술한 구조를 약화하는 역효과를 냈다. 척이 곧 세계라면 주변 인물들은 인물로 인식되지 않아야 하는데, 척의 행적에 자꾸 걸려서 영화는 굉장히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게 되었다. 척의 죽음이 삶을 긍정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평범한 사람의 죽음으로 세상을 잃은 나머지 사람들에게 집중된다.
'나=세계'라는 따뜻한 주장은 좋았지만, '세계=나'라는 구조로 방향성이 엇나갔다. 이렇게 설계가 잘못되니 반복되는 대사들에서 자기 개발서의 염증이 도지고, 굳이 3막 구성을 뒤집은 거 아니냐며 영화의 의도 자체까지 위협받게 된 것이다. 3부에서 멸망이 가까워질수록 척의 일생을 축하하는 광고가 많아지고, 직전에는 호러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로 빈집 창문마다 척의 얼굴이 빛을 내며 드러났다. 이를 척의 내적 감정이 세상에 표출된 것이라고 추측하면, 뇌질환으로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지금껏 잘 살아왔다고 강하게 믿고 있는 거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역시 영화가 끝나고 돌이켜보면 기발한 장치가 될 수 있었지만, 분위기 잡는 애매한 연출에 그쳐버렸다. 나는 영화가 바란대로 척의 일생을 맘 편히 축하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