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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ad Feb 29. 2020

11일의 온세


온세를 만났다. 알옐리는 은세라는 이름을 듣고 온세?하고 되물었다. 독일에서 나를 타본, 다봉이라고 독일 발음에 맞게 불렀던 친구들이 있었듯이 멕시코에서 만난 은세는 온세가 되었다. 스페인어로 온세는 11이라는 뜻이고 그 애를 만난건 11일이니까 운명처럼 맞아 떨어지는 괜찮은 이름이 되는 것이다.

짧고 더벅한 머리에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검정색 긴 반팔티에 헐렁한 카키색 고무줄 바지를 입고 어깨에 배낭을 걸치고, 평소에 렌즈를 끼지만 오늘은 쇠테로 된 동그란 안경을 낀 그 애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한차례 망설였다. 어떻게 해, 너무 떨려. 멕시코에 와서 말을 걸 만한 한국인을 처음 만난 것이다. 한번쯤 만나 이야기를 했을 법도 한데 그런 기회는 우리에게 이제껏 찾아오지 않았다. 한국인인 것을 알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온세와 그의 친구가 한국어로 대화하는 소리를 멀찍이서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인인 걸 알지만 먼저 다가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혹시 한국인이세요. 라는 말이었다. 그도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금세 반가운 얼굴이 되었다. 오티 때 보지 못했는데, 라며 말을 이어가는 온세에게 시모는 지난학기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고 지금 남아있으며 나는 여행와서 쉬고 있다는 우리의 사정을 대충 설명했다. 일주일 전 구름이 자욱하고 비가 내리고 조금 쌀쌀한 날씨에 케레타로에 도착했다는 말에 나 역시 그날의 날씨를 기억하며, 전에 없이 춥던 날이었어요. 하고 말을 이어갔다. 

아침을 거르고 나와 학교에 동남아 식으로 작은 종이 박스에 볶음면이나 볶음밥을 파는 식당에 가 끼니를 해결하려 했던 우린 밥을 먹으러 가는 길이라 했고, 수업이 저녁 7시에 시작한다는 온세는 우리를 따라왔다. 그 애를 가운데 두고 타마린도 새우 볶음면과 고기가 들어간 볶음밥을 각자 먹기 시작한 우리는 어쩐지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자기는 서브웨이에 다녀온 지 얼마 안됐고 그저 이야기를 하고 싶어 따라온 거라며 신경 쓰지 말라했다. 그러면서 어디선가 사온 펩시 콜라를 마셨다. 억양에 지방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영주에 사는 친구들이 쓰는 말투와 비슷한 것 같아 혹시 고향이 경북이냐 물었더니 전라도라 했다. 그러고 보니 전라도 사투리가 섞여 나오고 있었다. 광주보다 조금 아래에 있는 화순이 집이란다. 어렸을 적 고인돌을 보러 화순에 간 적이 있다 하니 그 작은 도시에 가봤다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늘이 들던 식사 자리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가면서 뜨거운 볕을 그대로 옮겨놓았고 온세는 등에 닿는 햇빛이 더운지 손으로 옷을 잡아 부채질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입이 짜고 텁텁해 나와 시모는 편의점에 가서 용량이 큰 초코우유를 하나씩 샀고 우리는 다시 그늘밑의 편한 의자를 찾아 눕다시피 앉았다. 

존대를 섞어 대화하다가 시모가 먼저 온세에게 말 놔도 돼요 라며 말을 건넸다. 나보다 나이가 적든 많든 먼저 말을 놓으라 한다거나 나이를 묻는다거나 하는 성격이 아닌 나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온세는 우리의 나이를 궁금해했지만 시모는 그냥 이름을 불러도 된다고 했다. 그때 내 안에서 그래도 이름을 부르는 건 좀 불편하지 않을까 했던건 내 안에 한국에서 살아온 꼰대력이 고개를 들었던 걸까. 그치만 아무래도 좋다고 금세 다른 마음이 수긍했다. 한국에선 다 언니, 오빠, 선배, 뭐 이런 식으로 나이에 따라 수직적인 관계가 형성되기 마련이니까. 아주 허물없는 관계가 되기 전까지 그런 건 없을 수 없으니까. 그치만 여긴 멕시코니까. 온세는 우리 나이를 궁금해했지만 서로 묻지는 않기로 했다. 온세가 한국외대에 다니고 18학번이며 이제 3학년에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지만, 그 애는 내가 시모보다 세살이 많고 언니라는 사실을 알긴 했지만, 온세는 재수를 했을 수도 삼수를 했을 수도 있는 일이고 그 애는 시모의 나이를 모르니까 우린 정확한 나이를 아는건 아니였다. 이름을 부르는 건 온세에게도 어색한 일이었는지 나를 언니라고 칭하긴 했으나 시간이 지나 좀 더 편해지면 다원이라고 부르라고 말했다.

한국인과 한국어로 대화한다는 건 생각보다 편하고 안정을 주는 일이었다. 멕시코에 온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여행지에서 얼굴을 스친 한국인들은 있을지언정 대화를 해본 건 처음이었다. 나와 시모는 늘 둘이었고 그간 나는 한국인과 대화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한국인 뿐 아니라 어떤 국적을 가진 외국인을 만났다 해도 늘 같은 마음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에 진력이 났기 때문이었나. 그러다 이렇게 긴 대화를, 한국에서 만난 것처럼 하다 보니 내 마음에 어떤 불안은 이미 걷힌 지 오래고 그 애와 우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 집중하게 됐다.

시모의 멕시코 친구 알옐리를 만나 그의 집으로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 시간이 다가왔고 전날처럼 앉아있던 우리 앞에 수업이 끝난 알옐리가 나타났다. 우리는 온세를 소개시켜주었고, 수업시간까지 한시간정도가 남은 그 애는 우리와 함께 학교 택시를 타고 알옐리의 집으로 향했다. 수업 시간까지 다시 오는 게 바쁘지 않겠어, 라고 물었지만 누군가의 집에 아직 가본 적 없어 잠깐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고 했다. 

쓴 술은 싫어하지만 단 술은 좋아한다는 온세는 알옐리의 집으로 가서 레드와인을 마시고선 멕시코에서 마시는 첫 술이라고 기뻐했다. 수업 들어가기 전 너무 취해서는 안 되니까 딱 한잔만 마시겠다고 했다. 온세는 스페인어 통번역학과인데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알옐리와 대화했다. 그 애는 입을 벌리지 않고도 자주 웃었다. 케레타로에 온지 일주일이 되었지만 집 밖으로 반경을 벗어난 적은 없고, 길을 잃을까봐 집 앞을 산책해도 한 방향으로만 걷다가 그 길을 따라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주말마다 여행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따라가기 어려워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기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기대와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돌산에 등산갈 때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으니 등산과 걷는 걸 좋아한다며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다음 수업 시간 때문에 이삼십분 남짓 있다가 일어난 그 애는 못내 아쉬워했다. 다음에 또 만나서 놀자. 집 바깥으로 나가 가는 길을 알려주며 우리는 아쉬움을 달랬다. 해가 넘어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알옐리에게 온세는 스페인어로 하늘이 예쁘다고 말했는데, 그 문장을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집 주인과 늘 하는 말이기 때문이란다. “멕시코에 와서 보낸 일주일 중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인 것 같아“. 온세를 만난 오늘은 나에게도 분명 전과는 다른 결의 날이었다. 

인연은 그렇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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