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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요 Mar 26. 2024

가장 밝을 때
가장 눈에 띄지 않게 다니기

나 홀로 행궁동 투어(1)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기. 내가 나한테 지어준 좌우명이다. 대개 좌우명은 힘을 주는 긍정적인 한 마디로 정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나는 세상살이 자체가 밝지만은 않은데 좌우명만 밝으면 뭐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그 속도에 맞춰 걸어야 한다는 말은 대한민국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 중 하나이다. 어차피 걸어야 한다면, 내가 속도를 정할 수 없는 무빙워크 같은 삶이 아니라 내 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러 조절할 수 있는 러닝머신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나만의 속도로 벼랑 끝으로 떨어지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주기적으로 스스로 떨어지는 시간을 가진다. 주변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는 성격을 고치기 위해 때때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혼자'라는 개념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4월부터 본격적으로 출근을 시작하면 여가 시간을 가지기 어려울 것 같아 3월의 마지막 주에 서울로 떠났다. 


나의 단순한 휴학 계획 중에는 전국에 퍼져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가기 앞서 수원에 들렀다. 중학교 때 친구가 수원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학 때도 얼굴을 쉽게 볼 수 없는 친구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싶은 친구라면 시간을 내서 잠깐이라도 만나고 싶었다. 나와 달리 친구 G는 학기중이었기 때문에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온다고 했다. G는 미안해했지만 나는 정말 괜찮았다. 왜냐하면 이때를 기회 삼아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혼영을 클리어한 나의 오랜 로망 중 하나는 혼자 여행하기였는데, 이번에 그 첫 발짝을 뗄 수 있을 것 같아 괜스레 설레기까지 했다.


G가 한창 학교 수업을 듣고 있을 시간, 나는 그동안 가고 싶었던 행궁동에 갔다. 하필 비가 내리고 있어 잠깐 가지 말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3시간 넘게 달려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일단 GO!를 외치며 지도를 켜서 열심히 길을 찾아갔다.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천성인지라 일주일 전부터 '행궁동 소품샵', '행궁동 독립서점', '행궁동 맛집' 따위를 잔뜩 검색해 동선을 짰다. 쇼핑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고 여기저기 다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서점을 둘러보는 건 예외였다. 특히 타지의 독립 서점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정길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다. 서점은 혼자일 때 가장 잘 즐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행궁동에 첫 자취를 남긴 곳은 '그런 의미에서'라는 독립서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장남의 친절한 인사가 들리는 곳이었다.


에너지 100% 상태의 내향인은 다소 주의할 필요가 있다. 힘을 낼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분배를 잘 해서 돌아갈 때까지 관리를 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돌아다니는 버릇이 아직 들지 않았던 나는 초반에 신나게 달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고 말았다……. 초반에 가장 신나게 달린 장소가 바로 '그런 의미에서'였다. 내 취향의 책은 없는데 이상하게 계속 책을 구경하게 되는 곳이었다. 사장님의 최애 작가가 장강명 작가라는 것과 차애 작가가 조예은 작가라는 메시지까지 빠짐없이 둘러보느라 1시간 가까이 썼다.

서점을 나서자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들고 멍하니 서있었다. 그때 든 생각은 이거였다.


'재밌어. 재밌는데 집에 가고 싶어…….'


하지만 먼 곳까지 나와서 벌써 돌아가면 되겠느냐고 스스로를 꾸짖으며 다음 책방으로 향했다. 고양이로 가득한 책방 '냥책방'이었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다양한 고양이 굿즈와 책들로 채워져 있어 인상적이었다. 특이했던 점은 굿즈나 책을 사면 자신의 취향에 맞춰 포장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미적 감각은 매우 처참하단 걸 알기에 이미 귀엽게 꾸며진 봉투에 고양이 부적을 넣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 독립서점은 '브로콜리숲'이었다. 책구경은 처음에 양껏 하고 왔기 때문에 새로 눈에 들어온 책들만 간단히 훑어보고 나왔다. 나는 그쯤에서 체력의 한계를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귀여운 키링을 사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가 남아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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