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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요 Apr 11. 2024

오늘은 사과를 키우지만
내일은 물고기를 기르는 일

하고 싶은 일은 돈이 되지 않는다

본인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해야 하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그것도 꽤 빈번하게 찾아온다.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마냥 밝은 모습으로 꾸며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그걸 반기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에게 무거운 분위기를 부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모든 말들은 가벼울 예정이다.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는 독자라면 이 글의 무게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사건이 있는지?

-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아직 그런 순간이 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살아온 과정을 단기간에 알고 싶을 때 그 사람의 시련을 흔히들 묻는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망설임 없이 '없다'고 말했다. 이제는 조금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없다'고 말한다. 내 인생을 알려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말로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도 나이지만 워낙 평탄한 성장 과정을 거쳐와서, 자랑스럽게 으스댈 만한 영웅담은커녕 파란만장한 일화 하나 없다.

언젠가부터 불행을 트로피처럼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시련은 한 두가지 정도 가지고 있어야 했고 그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면 패배자, 이겨내면 승리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고통조차 겪지 않은 사람은 도태자가 되는가?


나는 뭐든지 중간까지만 생각하는 애매한 사람이라,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들도 애매하기 그지없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삶을 꾸려 나갈지 고민하는 지극히 현실 속 사람이기도 해서 내가 겪는 어려움은 모두 현실과 미래에 치중되어 있는 면이 있다. 뭐 해먹고 살지? 그게 요즘 나의 최대 난관이었다.


하지만 난제도 이런 난제가 없다. 답이 없지 않은가. 오늘까지는 사과를 재배해서 먹고 살았다 해도 내일은 갑자기 전염병이 들이닥쳐 벌레들에게 사과를 빼앗길 지도 모른다. 그럼 그때부터는 약초를 캐서 먹든 물고기를 키워서 먹든 어떻게든 먹고 살 방법을 궁리해야지 별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그저 사과를 열심히 기르고 있는 농부다. 아직 사과 구경도 못해 봤고 맛도 본 적 없다. 하지만 일단 열심히 물과 양분은 주고 있는 상태. 그게 썩은 도움인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취업 시장에서 전혀 유리하지 않은 어문학을 전공하고,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는 종이책을 사랑한다. 수요가 점점 줄어드는 출판 시장에 뛰어드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며 대안을 찾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좋아하지 않으면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불명확한 진로에 불확실한 출판 스타트업 취직은 내가 원하던 일임과 동시에 원하지 않던 일이기도 했다. 불명확성 또는 불확실성 하나만 있어도 버거운데, 불명확에 불확실을 더하면 이건 다른 의미로 정말 답이 없지 않은가.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건 계속 글을 쓰겠다는 일차원적인 내 목표만으로 충분했다. 고정적인 체계와 업무를 지향하는 나로선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골몰하고 행동에 옮기는 시스템이 부담스러웠고, 자신도 없었다.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는 국면이 솔직히 말하면 썩 달갑지 않았다. 


아무튼 취직을 했으니 불투명한 진로 문제는 해결된 게 아니냐는 의문을 품을 수 있겠으나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애매하게 된 요즘이다.


현재 휴학생 신분인 나에겐 야심차고 단순한 계획이 있었다. 바로 경장편 공모전을 준비하는 것. 학교에 다닐 때는 여느 대학생처럼 과제하랴 시험 공부하랴 바빠 마음을 다잡고 소설을 쓸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휴학 후 용돈을 벌며 남는 시간에는 자격증 공부와 공모전 준비에 온 힘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엔 늘 괴리가 있는 법이었다. 좋아하는 일로 돈벌이를 한다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인지 최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수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수익을 보장하는 글과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글이 수단으로 사용되는 데 거부감을 느낀다.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사적인 목적을 위해 글을 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가치관 때문이다. 특정인을 치켜세우거나 타인의 삶을 집대성하는 것, 매력적이라고 느끼지 않는 분야의 글을 집필하는 것, 이미지 쇄신을 위해 내 노력이 한 톨이라도 들어가야 한다는 것.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성격의 글이 있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나와 맞지 않는 글도 존재한다. 그런 글이 내 의무이자 역할이 되었을 때,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 아마 나는 가장 힘이 들 것 같다. 물론 아직 내가 제대로 맡고 있는 업무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고지 받으면서, 시장 조사를 하면서 틈틈이 느끼는 것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걱정도 한 움큼 얻어가고 있는 바람에 괜히 막막해져 호들갑 한 번 떨어보는 걸지도 모른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선 현실을 견디는 법을 일찍 터득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최근 많이 한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해야 한다면 해야 한다. 비즈니스적 소설과 개인적 소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는 건 사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못할 것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내 글에 온전히 집중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또 불평하고.


아직 사회를 많이 겪어보지 않은 사회초년생의 푸념 섞인 토로라고 봐주길.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은 이들은 작디작은 어려움을 유독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본인이 거대한 난관이라고 느꼈다면, 그냥 그런 것이다. 태클은 무의미하다. 모두가 똑같은 무게의 걱정 거리를 가지며 살아갈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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