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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젠 Oct 10. 2022

크루엘라, 나쁘고 멋지고 불가해한

Cruella de vil -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1961)


Cruella De Vil, Cruella De Vil
크루엘라 드 빌, 크루엘라 드 빌
If she doesn't scare you
그녀가 무섭지 않다면
No evil thing will
세상에 두려울 것 없다네


페르디타와 퐁고, 그리고 그들의 반려인간 아니타와 로저는 유모, 그리고 곧 태어날 강아지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로저는 아직 벌이는 시원치 않지만 야심찬 작곡가로, 최근 마음에 드는 멜로디를 만들었지만 가사를 붙이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갑작스러운 영감이 불청객의 몸을 빌려 찾아온다. 아니타의 동창이라는 악마 같은 여자 크루엘라가 집에 들이닥친 것이다. 모피에 죽고 못 사는 그녀가 녹색 담배 연기를 풍기며 집안을 휘젓는 동안, 위층에선 즉흥적으로 가사를 붙인 로저의 연주가 흘러나온다.




악녀의

일반명사


2003년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는 [100년… 100명의 영웅과 악당]이라는 목록을 선정했다. 영웅 1위로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 악당 1위로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를 꼽은 이 목록에 이름을 올린 디즈니 캐릭터는 두 명이었다. 하나는 악당 10위에 랭크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그림하일드 왕비, 또 하나는 악당 39위에 랭크된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의 크루엘라 드 빌이었다. 그림하일드의 경우 출연작이 디즈니의 첫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상징성에 보정 점수가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크루엘라야말로 가장 인상적인 디즈니 빌런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번스 씨가 납치한 심슨 가의 강아지들

크루엘라는 1961년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에서 첫 스크린 데뷔를 한 이래 대중문화 속 ‘악녀’의 원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일례로 퀸Queen의 1978년 노래 [렛 미 엔터테인 유Let me Entertain You]에는 크루엘라의 이름을 동사로 쓴 “너를 크루엘라드빌 할 거야I’ll Crueladeville you”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심슨 가족] 시즌 6의 20번째 에피소드인 [13마리의 그레이하운드]에선 번스 씨가 옷을 만들 목적으로 심슨 가의 강아지들을 납치하는데, 누가 봐도 크루엘라의 패러디이다. 이 밖에도 크루엘라를 인용하거나 패러디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대중문화 레퍼런스들이 존재한다.




나쁘고 멋지고

불가해한


크루엘라가 이렇게 성공적인(?) 빌런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우선 캐릭터 디자인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흑백이 반반씩 공존하는 독특한 헤어, 비쩍 말라 언뜻 해골 같아 보이는 얼굴과 몸, 그와 대비되는 오버핏의 풍성한 모피 코트로 대표되는 스타일은 한 번 보면 쉽게 잊을 수 없다. 녹색 연기를 뿜는 담뱃대와 악마의 형상을 한 전화기, 날렵한 차체의 빨간 자동차 같은 아이템들도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유모와 크루엘라


크루엘라는 그 이름처럼 잔인하고(Cruel), 이기적이며, 사치스럽고 허영심에 물들어 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부유하고, 패셔너블하며 카리스마 있는 여성이다. 이런 멋쟁이가 훗날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재조명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인 일이었고, 이 흐름에서 2008년 셀레나 고메즈가 리메이크한 노래 [크루엘라 드 빌]과 2021년의 실사판 영화 [크루엘라]가 등장했다.


하지만 크루엘라를 진정 문제적인 악당으로 만드는 특징은 강아지 모피에 대한 집착이다. 디즈니의 다른 빌런들이 벌이는 악행의 동기를 보면 최소한 내적 논리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들이다. [라이언 킹]의 스카는 왕이 되고 싶어서, [인어공주]의 우르술라는 트리톤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알라딘]의 자파는 힘을 얻고 싶어서 나쁜 짓을 한다. 그런데 작고 귀여운 강아지로 옷을 만들겠다는 욕망은 관객의 이해를 한참 넘어선다. 실용적인 선택도 아니고, 섬뜩하며 불쾌하기만 하다. 빛이 강할수록 짙어지는 그림자처럼,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강아지들이 사랑스럽게 보이는만큼 이들을 파괴하려는 크루엘라의 집념은 불가해한 악처럼 느껴진다.


크루엘라와 퐁고


이 점 때문에 2021년작 [크루엘라]에서 크루엘라의 모피에 대한 집착은 통째로 들어내졌고, 대신 패션에 대한 열망, 개에 얽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만이 흔적기관처럼 남았다. 아무리 악당이라 할지라도 21세기에 만들어진 디즈니 영화에서 동물학대 범죄를 진지하게 계획하는 캐릭터를 그릴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1961년 원작의 크루엘라는 60년대라는 시대의 투박함 덕택에 기획되고 제작에 옮겨질 수 있었던 캐릭터라고도 보여진다. 사실 Cruel과 Devil이라는 단어를 섞은 크루엘라 드 빌Cruella de vil이라는 네이밍 센스도 유치하고 노골적이다(우리말로 치면 ‘나잔인’이나 ‘최악녀’ 정도 되지 않을까). 강아지로 모피를 만드는 계획에 진지하게 골몰하는 악당에게 이런 이름까지 붙어 있는 것은 아이들이 보는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 납작하고 기계적인 캐릭터 조형 아닌가? 마음 놓고 한껏 미워하고 무서워해도 되는 대상을 만든 셈이다.




개연성 없는

악의 이면에는


이쯤에서 작품으로 돌아가 극중 로저가 [크루엘라 드 빌]을 부르는 장면을 보자. 크루엘라가 남의 집 안에서 흡연을 하고 갓 태어난 강아지를 팔아버리라고 말하는 천박한 인간이라는 점은 잠시 차치해두자. 어쨌거나 그는 아니타의 동창 친구이며 이 집의 손님이다. 그런데 로저는 대 놓고 들으라는 듯이 그녀를 조롱하는 노래를 부른다([크루엘라 드 빌]은 빌런과 관련된 디즈니 노래 중 유일하게 빌런 본인이 부르지 않는 노래다). 이건 크루엘라에 대해서도, 그 친구인 아내 아니타에 대해서도 무례한 일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크루엘라가 너무나 손쉽게 미워할 수 있는 대상으로 그려진 탓에,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로저의 입장에 훨씬 많이 이입하고 만다.


‘불청객을 쫓아내고 집안의 평화를 지킨 가부장’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이 장면을 다시 보자. 집에 들어온 크루엘라는 대뜸 아니타를 “아니타, 달링”이라고 부른다. 대체 무슨 사이이길래 이름 뒤에 ‘자기야’를 붙여 부르는 걸까. 아니타가 이 악당을 기꺼이 집안에 들이고 다과를 내주는 것도 무언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이런 디테일들에 주목하면 두 사람의 관계는 상당히 흥미로워 보인다. 단순히 동창(classmate)이라고만 표현된 두 사람의 사이에 어떤 전사가 있을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아니타와 크루엘라


참고로 크루엘라는 1996년과 2001년의 연작 실사판 영화, 2021년의 실사판 영화까지 총 3번에 걸쳐 실사화되었는데, 이 실사판들에서 크루엘라와 아니타의 관계는 각기 다른 양상으로 묘사된다. 1996년작에서 아니타는 크루엘라의 회사에 고용된 의상 디자이너인데, 크루엘라는 아니타를 뛰어난 직원으로서 총애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아끼는 것처럼 보인다. 결혼하면 일을 그만둘 수도 있다는 아니타의 말에 크루엘라는 “여성의 재능을 가장 많이 사장시키는 건 전쟁, 기아, 질병, 재난보다도 결혼”이라는 차가운 진실로 안타까움을 표하는가 하면, 모피 코트 도안을 보며 “이걸 입으면 자네 강아지를 입는 것 같겠군”이라는 농을 던질 때는 아니타를 사뭇 불순한 방식으로 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996년 영화에서 글렌 클로스와 졸리 리처드슨이 분한 크루엘라와 아니타


한편 2021년 실사판에서 아니타는 머리 색으로 놀림 받는 크루엘라를 감싸준 어릴 적 친구이자, 현재는 재능을 썩히고 있는 가십지 기자로 나온다. 여기서는 아니타의 성이 ‘달링’이었다는 웃지 못할 설정이 추가되지만, 그럼에도 크루엘라는 아니타를 “Anita darling. My darling”이라고 부름으로써 1961년의 ‘달링’이 중의적인 의미였다는 점을 확실히 하기도 한다.


커비 하월바티스트가 분한 2021년작 [크루엘라]의 아니타 달링


오랫동안 여성들 사이의 관계는 ‘여자의 우정은 얄팍하다’거나 ‘여자들은 질투가 심하다’는 식으로 쉽게 폄하되어 왔다. 여자는 기혼자가 되면 친구를 조금씩 잃고 자식과 남편에게만 헌신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부연설명이 따라 붙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1961년의 크루엘라를 굳이 다시 찾아본다면, ‘아니타 달링’과의 관계를 비롯해 작품 곳곳에 숨겨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은 여과시키고 단순히 ‘모피에 미친 여자’만 기억에 남기는 것은 공정한 감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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