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인문학 사전 3화
1945년 7월 16일 새벽 5시 29분 45초, 뉴멕시코 사막에 태양이 두 개 떠올랐습니다. 인류 최초의 핵실험이 만들어낸 버섯구름을 바라보며,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고대 산스크리트어 경전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바가바드 기타 11장 32절. 오펜하이머가 이 구절을 인용했다는 사실에 비해, 경전 속에서 이 말을 한 주체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대사의 주인공은 크리슈나, 힌두교 최고신 비슈누의 '아바타'입니다. 오늘날 수십억 개의 화면 속에서 프로필 사진과 게임 캐릭터를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하죠.
아바타의 뿌리를 파면 두 개의 조각이 나옵니다. 산스크리트어 ava-는 '아래로', tṛ는 '건너다'. 합치면 avatāra, '아래로 건너온 자'가 되죠.
힌두 신학에서 이 하강에는 명확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바가바드 기타 4장 7-8절에서 크리슈나는 전사 아르주나에게 이렇게 선언합니다. "세상의 다르마(dharma, 우주적 질서)가 쇠퇴하고 혼돈이 지배할 때, 나는 스스로를 창조하여 시대마다 나타난다"고. 덕 있는 자를 보호하고 악을 행하는 자를 멸하기 위해, 다르마의 기준을 다시 세우기 위해. 다시 말해, 아바타가 되는 것은 일종의 긴급 출동이었습니다.
비슈누의 아바타는 열 가지로 전해집니다. 다샤바타라(Dashavatara)라 불리는 이 목록에서 신은 물고기, 거북이, 멧돼지, 반인반수 등을 거쳐 마침내 인간의 형상을 한 라마와 크리슈나로 나타났어요. 취하는 몸의 형태는 매번 달랐지만, 행위의 방향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전능한 존재가 자발적으로 유한한 몸을 취하는 것. 그 유한한 몸은 사명을 위한 것이지 유희를 위한 것이 아니었고, 사명이 끝나면 신은 다시 올라갔습니다. 하강은 임시였고, 귀환은 약속되어 있었어요.
이 단어가 영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784년, 영국의 동양학자 윌리엄 존스의 기록을 통해서입니다. 이후 약 200년간 avatar는 영어권에서 '신적 존재가 지상에 현현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쓰였어요. 오펜하이머가 바가바드 기타를 인용했을 때도 그 단어의 무게는 온전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어요. 오펜하이머가 인용한 "I am become Death"는 사실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원문의 kāla는 '죽음'이 아니라 '시간'에 가까운 단어예요. 오펜하이머의 산스크리트어 스승이었던 버클리의 아서 라이더 교수가 "Death am I"로 옮긴 번역을 오펜하이머가 기억한 것이고, 그것을 다시 1965년 NBC 다큐멘터리에서 카메라 앞에 앉아 회상하며 말한 것이었습니다. 산스크리트어 원전에서 영어 번역으로, 번역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카메라 앞의 독백으로. 여러 겹의 매개를 거치면서 '시간'은 '죽음'이 되었어요. 이러한 의미의 변형이, 아바타라는 단어가 앞으로 겪게 될 운명과 어쩐지 닮아 있다는 점은 재미있는 우연입니다.
오펜하이머로부터 40년 뒤인 1985년, 거의 동시에 두 곳에서 '아바타'가 디지털 세계에 현현했습니다.
첫 번째는 게임 디자이너 리처드 개리엇의 ≪울티마 IV: 아바타의 길(Quest of the Avatar)≫이었습니다. 개리엇은 힌두교 아바타에 관한 TV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그 다큐멘터리는 아바타가 16가지 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설명했고, 개리엇은 이를 8가지 덕(정직, 자비, 용기, 정의, 희생, 명예, 영성, 겸손)의 체계로 재구성했습니다. 이전 울티마 시리즈가 '악당을 무찌르라'는 전형적 구조였다면, 울티마 IV는 플레이어에게 덕을 실천하여 아바타가 되라는 색다른 목표를 부여했어요. 게임 속에서 도둑질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면 덕이 깎이고, 아바타에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유저로 하여금 게임 속 행동에 윤리적 책임을 느끼도록 한 거예요. 신이 덕을 가지고 세상에 내려온다는 원래의 아바타 개념에 이 차용은 비교적 충실했습니다.
두 번째는 칩 모닝스타와 랜디 파머가 루카스필름 게임즈에서 만든 '해비탯(Habitat)'이었습니다. 1986년 퀀텀 링크(이후 AOL) 서비스를 통해 코모도어 64에서 돌아간 이 프로그램은, 최초의 대규모 그래픽 가상 세계라 할 만한 것이었어요. 수천 명의 사용자가 만화풍 캐릭터를 조종하며 같은 공간에서 대화하고, 물건을 거래하고, 심지어 자치 정부를 구성하기도 했습니다. 모닝스타는 이 온라인 분신에 '아바타'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1986년 8월 Run Magazine에 실린 설명은 이랬습니다. "인간이 해비탯에 들어서면, 아바타의 시각적 형태를 취하고, 모든 의도와 목적에서 이 새로운 세계의 존재가 된다."
개리엇의 아바타와 해비탯의 아바타는 같은 단어를 빌려왔지만, 빌려온 층위가 달랐습니다. 개리엇은 '덕의 체현'이라는 신학적 핵심을 가져왔어요. 반면 해비탯은 '다른 세계에 나타난 나의 몸'이라는 형식적 구조만 가져왔죠. 신이 지상에 몸을 취하듯, 인간이 가상 세계에 몸을 취한다는 비유. 사명과 덕은 빠지고, 건너간다는 행위만 남은 거예요.
그리고 1992년, 닐 스티븐슨의 SF 소설 ≪스노 크래시≫가 이 용법을 결정적으로 대중화합니다. 소설 속에서 스티븐슨은 이렇게 썼어요. "사람들은 아바타라 불리는 소프트웨어 조각들이다. 메타버스에서 서로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시청각적 몸이다." 스티븐슨은 해비탯에서 이미 이 단어가 쓰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아바타라는 단어를 쓴 것은 독립적 발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페이퍼백 판에서 모닝스타와 파머에게 공을 돌렸죠.
≪스노 크래시≫ 이후, 아바타는 이제 '윤리적 성취'가 아니라 '그래픽 분신'이 되었습니다. 세컨드 라이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로블록스에 이르기까지, 아바타는 가상 세계에서 나를 대신하는 시각적 몸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됩니다. 신학적 무게는 벗겨지고, 형식적 껍데기만 남았어요.
이 역전을 가장 극적으로 시각화한 것은 게임도 소설도 아닌, 한 편의 영화였습니다.
2009년,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에서 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해병 제이크 설리는 나비족의 몸으로 '접속'하여 판도라 행성을 경험합니다. 처음에는 임무를 위한 도구였던 나비족의 몸이 점차 그의 진짜 삶이 되어가고, 영화의 끝에서 제이크는 인간의 몸을 버리고 나비족으로 영구히 이행합니다.
이 영화는 '아바타'라는 단어의 의미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원래의 아바타와 카메론의 아바타를 나란히 놓으면, 거의 모든 것이 뒤집혀 있습니다. 비슈누의 아바타는 하강입니다. 전능한 존재가 자발적으로 유한한 몸을 취하는 것. 제이크의 아바타는 상승이에요. 무력한 인간이 더 강하고, 더 크고, 더 자유로운 몸을 취하는 것. 동기도 뒤집혔어요. 신의 아바타는 사명입니다. 세상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긴급 출동. 제이크의 아바타는 해방이에요. 불구의 몸에서 벗어나 뛸 수 있고, 날 수 있는 몸을 얻는 것. 그리고 결말도 뒤집혔습니다. 비슈누의 아바타는 사명을 마치면 돌아갑니다. 유한한 몸은 임시였으니까요. 제이크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아바타가 본체를 대체해버립니다.
이 역전은 카메론의 영화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에요. 디지털 아바타 전반이 같은 구조를 공유합니다. 소셜 미디어 프로필, 온라인 게임이나 메타버스 속 캐릭터, 최근의 예로는 버추얼 유튜버/아이돌의 캐릭터까지. 모두 유한한 인간이 더 나은 몸, 더 매력적인 외모, 더 자유로운 존재를 취하는 행위예요. 원래의 avatāra가 가졌던 '자발적 제한'이라는 핵심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신이 스스로 작아지는 이야기가, 인간이 스스로 커지는 이야기로 바뀐 거예요.
그런데 같은 '아바타'를 쓰면서도, 그 단어가 가리키는 몸의 크기가 문화권마다 다릅니다.
서구에서 아바타는 대체로 작아요. 우리말로 '프로필 사진'이라고 일컫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트위터(현 X)의 동그란 프로필 이미지, 슬랙의 작은 아이콘, 레딧의 스누 캐릭터. 포럼이나 메신저에서 내 이름 옆에 붙는 조그만 그림이죠. 기능적으로 보면 이것은 나를 표시하는 기호에 가깝습니다. 실제 얼굴 사진을 올리든, 좋아하는 캐릭터를 올리든, 서구권에서 아바타는 나라는 존재의 축소된 표지예요.
한국에서 아바타의 감각은 좀 다릅니다. 2000년대 초 싸이월드의 미니미, 혹은 세이클럽이나 버디버디 같은 메신저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알 거예요. 미니미는 프로필 사진이 아니라 전신 캐릭터였습니다. 도토리를 사서 옷을 입히고, 머리를 바꾸고, 미니룸을 꾸몄어요. 거기에 감정과 돈과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이 감각은 메이플스토리의 캐시 아이템, 그리고 훗날 제페토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의 3D 아바타로 이어졌어요. 한국에서 아바타는 '나를 표시하는 아이콘'이 아니라 '되고 싶은 나', 혹은 '꾸밀 수 있는 또 다른 나'에 가깝습니다. 일종의 확장된 몸이에요.
아이러니한 건 한국적 용법이 원래 산스크리트어의 의미에 오히려 더 가까울 수 있다는 점이에요. avatāra는 본래 표지가 아니라 완전한 형태의 몸이었으니까요. 물론 이건 우연의 평행이지 인과가 아닙니다. 2000년대 초반의 한국 웹 기획자들이 힌두 신학을 참조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죠. 다만 '프로필 사진'이든 '확장된 몸'이든, 어느 것도 원래의 아바타 개념과 정확히 겹치지는 않습니다. 아바타는 신 자체의 현현이었고, 그것은 말하자면 분신이 아니라 '본신(本身)'이었습니다.
기술은 신학에서 단어를 자주 빌려옵니다. 아바타만이 아니에요. 유닉스의 백그라운드 프로세스는 그리스 신화의 다이몬에서 이름을 가져와 'daemon'이 되었고, 블록체인의 최초 블록은 'genesis block'이라 불리며, 델포이 신전의 신탁에서 이름을 딴 'Oracle'이라는 데이터베이스 기업이 있죠. 새로운 기술이 하는 일을 설명할 기존 언어가 없을 때, 초월적 경험의 언어가 빈자리를 메우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취향도 분명히 작용하고 있습니다. 초기 컴퓨터 문화를 만든 해커들은 SF/판타지 소설, 던전 앤 드래곤과 반문화 운동을 동시에 소비하던 사람들이었어요. 신화적 레퍼런스는 이들에게 낯선 서재의 장식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였고, 기술에 이름을 붙일 때 그 언어가 자연스럽게 손에 잡힌 겁니다. 리처드 개리엇이 힌두 신화 다큐멘터리에서 '아바타'를 가져온 것도, 닐 스티븐슨이 소설 속 가상 세계에 같은 단어를 붙인 것도, 이 문화적 토양 위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다만 빌려온 단어에는 함께 오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비슈누의 아바타에는 사명이 있었고, 귀환이 있었고, 무엇보다 정체가 있었어요.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의 전차를 몰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바가바드 기타 전체가 "나는 다르마가 쇠퇴할 때마다 스스로를 창조하여 나타난다"는 선언이에요. 아바타라는 유한한 몸을 취하면서도, 그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힌 거죠. 디지털 세계에서 아바타의 주인들은 그러지 않습니다. 아바타 뒤에 숨고, 부캐 뒤에 숨고, 버추얼 유튜버의 '본체'는 밝히지 않는 것이 예의가 되는 세계입니다.
여기에 어떤 윤리적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익명성은 보호이기도 하니까요. 현실의 외모, 나이, 성별,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 디지털 아바타의 힘이에요. 다만 원래의 avatāra에서 '정체를 건다'는 것은 얼굴을 보여준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비슈누가 건 것은 외모가 아니라 책임이었어요. 세계의 혼돈을 바로잡겠다는 서약, 유한한 몸이 부서지더라도 머물겠다는 각오. 기술은 신학에서 단어를 빌리면서 힘과 장엄함은 가져오되, 그 단어에 붙어 있던 무게는 두고 옵니다. 우리의 아바타는 수없이 강림하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도 실제로 도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테크-인문학 사전"은 테크 용어의 인문학적 어원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기술 용어들이 신화, 철학, 문학, 역사에서 건너온 과정을 따라가며, 그 차용이 드러내는 의미의 변형과 긴장을 살펴봅니다.
사전 · 백과사전
Britannica, "Avatar (Hinduism)"
Online Etymology Dictionary, "avatar"
Wikipedia, "Avatar (computing)"
Wikipedia, "Habitat (video game)"
Wikipedia, "Ultima IV: Quest of the Avatar"
아티클
Dazed Digital, "Snow Crash: the 30-year-old novel that predicted today's twisted Metaverse"
Margaret Morabito, "Enter the On-line world of Lucasfilm", Run Magazine Issue 32
Restricted Data, "Oppenheimer and the Gita"
The Conversation,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 the Bhagavad Gita explai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