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지(Emoji): 감정 없는 감정 문자

테크-인문학 사전 5화

by 오토

옥스퍼드 사전은 매년 11월쯤 '올해의 단어'를 발표합니다. 2025년엔 Rage bait(분노 어그로), 2024년엔 Brain rot(뇌 썩음),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이던 2021년엔 Vax(백신)등이 이름을 올렸죠. 그런데 2015년에 선정된 것은 단어가 아니었어요. 공식 명칭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Face with Tears of Joy)'. 그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인 이모지였습니다. 옥스퍼드 사전 역사상 알파벳으로 표기되지 않는 것이 올해의 '단어'로 뽑힌 건 이때가 처음이었어요. 이모지가 명실공히 언어의 일부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장면이었죠.


옥스퍼드가 선정한 이모지의 대표주자가 '기쁨'이라는 선명한 감정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어떤 언어적 직관과 이어집니다. 이모지(emoji)의 앞글자 emo-가 감정(emotion)에서 왔으리라는 거죠. 감정을 표현하는 기호의 이름에는 당연히 감정이라는 뜻이 들어가 있을 거라는, 거의 상식에 가까워 보이는 연상. 하지만 이 직관은 사실과 다릅니다. 'emo-'는 감정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행복한 우연


원래 일본어에는 에모지(絵文字)라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絵(에: 그림)와 文字(모지: 문자)의 합성어, 글자 그대로 '그림 문자'라는 뜻이었고, 이것은 디지털 시대의 발명품이 아닙니다. 최초로 사용된 기록은 192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죠. 픽토그램이나 상형 기호의 개념에 가까웠던 이 '그림 문자'는 emotion이나, emoticon과는 어원적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영어권으로 건너가면서 운명이 바뀝니다. 영어 사용자의 귀에 첫 음절 'emo-'는 emotion의 그것과 구분되지 않았어요. 게다가 영어에는 이미 emoticon(emotion + icon)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1982년 카네기멜론 대학의 스콧 파흘만이 온라인 게시판에서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기 위해 :-)와 :-( 의 사용을 제안하면서 태어난 이 단어는, 이름에 '감정'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죠. 그 옆에 나란히 놓인 emoji는 자연스럽게 emoticon의 친척처럼 보였습니다.


image.png 1982년 9월 19일, 스콧 파흘만이 카네기멜론 대학 게시판에 올린 최초의 이모티콘 제안 © intelligentcollector.com


언어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거짓 동족어(false cognate)'라 부릅니다. 한국어 동명사 '알림'이 영어 단어 '알람(alarm)'과 전혀 뿌리가 다른데도 비슷한 단어처럼 쓰이는 것도 거짓 동족어의 사례입니다. 사람들은 '그림 문자'를 '감정 표현 문자'로 받아들였고, 실제로 그렇게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고, 현재진행형으로 누적되는 용례 앞에서 진짜 기원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죠. 한 온라인 어원 사전은 이모지가 영어에 편입된 과정을 두고 "행복한 우연(happy coincidence)"이라고 평합니다.




144개의 점으로 세상을 표현하는 법


1999년, 일본 NTT 도코모의 인터페이스 디자이너 구리타 시게타카는 문제를 하나 안고 있었습니다. 도코모가 야심 차게 준비 중인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 'i-mode'는 이메일을 보낼 수 있었지만, 한 통에 250자라는 제한이 있었어요. 250자 안에 날씨, 약속 장소, 감정까지 담아야 하는 상황에서, 구리타에게 필요했던 것은 정보를 극단적으로 압축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12×12 픽셀의 격자로 이루어진 총 144개의 점 위에 그림을 그렸고, 그렇게 해서 176개의 '최초의 이모지'가 만들어집니다.


이때 구리타가 영감의 원천으로 삼은 것은 서양의 이모티콘이 아니었어요. 먼저 일본 만화의 시각 약호인 만푸(漫符)의 전통이 깔려 있습니다. 십자 모양의 핏줄이 돋아난 것으로 분노를, 이마의 땀방울로 초조함을 표현하는 약속. 또 하나는 거리 곳곳의 픽토그램이었습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전세계로 퍼진, 정보를 최소한의 시각 요소로 압축하는 기술. 오늘날 이모지의 대명사인 '표정이 있는 얼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구리타의 이모지는 감정 도구가 아니라 정보 압축 도구로 태어난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모지의 직계 조상은 '웃는 얼굴'보다는 '화장실 표시'에 더 가깝죠.


ep05_kurita_original_176_emoji_moma.png Shigetaka Kurita, Inbox: The Original Emoji, 1998–99. © NTT DOCOMO. Photo: John Wronn / MoMA


재미있는 것은 구리타가 디자인한 최초의 이모지 176개 안에 하트 바리에이션이 5개나 존재한다는 겁니다(하나는 트럼프 카드의 문양이긴 합니다). 이모지 탄생 이전, 도코모는 십대를 겨냥한 포켓벨(한국의 '삐삐'에 대응하는 호출기)에 하트 픽토그램 하나를 넣은 적이 있었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그 전까지 일본 십대들은 숫자 코드로 감정을 전해야 했거든요. 0840은 'おはよう(좋은 아침)', 14106은 'アイシテル(사랑해)' 같은 식으로. 이런 시대에 하트의 등장은 작은 혁명이었습니다. 도코모가 후속 모델을 비즈니스용으로 기획하면서 하트를 빼자, 십대 사용자들은 거짓말처럼 대거 경쟁사로 이탈했죠.


도코모 포켓벨의 숫자 코드 치트시트. 하트(❤) 기호를 보내려면 88을 입력했어요. © Emojipedia


구리타가 디자인한 초기 이모지 세트 176종에 하트가 5종이나 들어가 있던 것은, 이 하트의 위력(?)과 관련된 포켓벨 시대의 교훈 때문일 수 있어요. 그리고 어쩌면 이 시점에서, 이모지가 훗날 '감정 문자'가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보편 언어의 균열


인터넷에는 영화 줄거리를 이모지만으로 표현하고 맞히는 퀴즈가 있습니다. 이 퀴즈에서 이모지는 단순히 감정을 강조하는 보조 수단을 넘어, 복잡한 서사를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 체계처럼 보입니다. 모국어가 무엇이든 상관 없이 이해되는 체계죠.


희노애락이 모든 문화권에 존재하는 인류 보편의 감정 팔레트인 것처럼, 그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지도 어쩌면 국경과 언어를 초월하는 '보편 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구리타 시게타카는 이모지의 보편성을 믿는 쪽입니다. "일본에서든 해외에서든 이모지의 사용법과 사랑받는 방식에는 결과적으로 차이가 없으며, 이모지는 보편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십 년간 이모지를 지켜본 사람의 낙관이에요.


하지만 이모지가 정말 보편적으로 읽히고 있을까요. 합장 이모지를 봅시다. 영어권에서 이 기호는 '기도'나 '제발'로 읽혀요. 일본에서는 '감사합니다' 또는 '미안합니다'입니다. 한국에서는 2020년대 이후로 손님에게 시도 때도 없이 거절과 당부를 남발하는 일부 불친절한 업장의 인스타그램 말투를 풍자하는 맥락이 추가됐습니다. 같은 제스처가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른 맥락에 놓여요.


세대 간 격차는 더 극적입니다. 스마일 이모지를 기성세대는 순수한 호의로 읽고, 젊은 세대는 수동적 공격성의 신호로 읽어요.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은 2015년에 올해의 단어를 받았지만, 2021년 무렵 Gen Z에 의해 밀려나 해골로 대체되었습니다. '웃겨 죽겠다'는 과장법이 해골을 웃는 얼굴보다 더 강렬한 웃음의 기호로 만든 거예요.


이 부분에서 한국의 카카오톡 이모티콘 생태계는 더 깊은 균열을 드러냅니다. 세대별 인기 키워드를 보면, 10대는 '정색', '힝', '귀여워', 20대는 '배고파', '포옹', 30대는 '헤헤', '술', 40대는 '수고했어', '힘내'예요. 이건 단순한 미감의 차이가 아닙니다. 같은 기호의 해석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기호를 꺼내는 충동의 구조 자체가 세대마다 다른 거예요. 10대에게 이모티콘은 매 문장에 붙는 기본 문법이지만, 40대에게는 특별한 격려의 순간에 꺼내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보편 기호라는 약속이, 세대와 문화 앞에서 끊임없이 갈라집니다.




누가 문자를 통제하는가


해석은 이렇게 통제 불가능한데, 이모지를 만드는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중앙집중적입니다.


유니코드 컨소시엄이라는 비영리 기구가 어떤 이모지를 표준에 포함할지 결정해요. 투표권을 가진 정회원 대부분이 애플,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테크 기업입니다.


권총 이모지의 운명이 이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2015년, 뉴욕의 총기 규제 단체 '총기 폭력에 반대하는 뉴요커들(New Yorkers Against Gun Violence)'은 #DisarmTheiPhone(#아이폰을무장해제)이라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애플 CEO 팀 쿡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권총 이모지의 삭제를 요구한 거예요. 캠페인 자체는 미온적 반응에 그쳤지만, 이듬해 흐름이 바뀝니다. 2016년 애플은 iOS 10에서 권총 디자인을 초록색 물총으로 교체했습니다. 같은 해, 유니코드에 올림픽 테마로 제안된 소총 이모지도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반대로 표준 등재가 차단되었어요. 2018년 파클랜드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구글, 삼성, 트위터가 잇따라 물총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한 기업의 정치적 판단이 전 세계 키보드 위의 '총'의 형상을 바꾼 겁니다.


ep05_gun_emoji_evolution.jpg 2018년 주요 플랫폼별 권총 이모지 디자인 비교. 애플이 2016년 물총으로 교체한 뒤 구글, 삼성 등이 뒤따랐어요. © Emojipedia


히잡 이모지가 표준에 포함되기까지의 과정도 마찬가지예요. 2016년, 베를린에 살던 열다섯 살 사우디 소녀 라유프 알후메디는 친구들과의 왓츠앱 단체 채팅에서 자신을 표현할 이모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히잡을 쓴 여성 이모지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궁여지책으로 터번 남성 이모지, 좌우 화살표, 여성 이모지를 나란히 놓아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알후메디는 10쪽짜리 제안서를 작성해 유니코드 컨소시엄에 제출했고, 유니코드 이모지 소위원회 위원 제니퍼 대니얼과 레딧 공동창업자 알렉시스 오하니언의 지원을 받아 캠페인을 확장했어요. "우편함의 네 가지 상태를 표현하는 이모지는 있는데, 히잡을 쓴 5억 명의 무슬림 여성을 표현하는 이모지는 왜 없는가." 그녀가 캘리포니아 산호세의 유니코드 본부에서 직접 발표한 이 한마디가 핵심이었습니다. 제안은 2016년 승인되었고, 이듬해 이모지 5.0의 일부로 전 세계 키보드에 등장했어요. 어떤 정체성이 문자 체계에 진입할 수 있는지를, 결국 누가 결정하느냐의 문제입니다.


image.png 히잡 이모지의 가이던스 디자인. 아펠란드라 메서가 라유프 알후메디, 제니퍼 8. 리와 협업하여 제작 © Cooper Hewitt, Smithsonian Design Museum


역사적으로 문자의 통제권은 늘 권력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진시황이 문자를 통일해 제국을 통합했고, 중세 교회는 라틴어 성경의 독점적 해석권을 쥐었어요. 이모지는 이 계보 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집트 히에로글리프는 서기관이라는 소수 엘리트만 읽고 쓸 수 있는 문자였어요. 이모지는 훈련 없이 즉시 해독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문해력의 장벽을 낮추는 가장 민주적인 문자처럼 보여요. 하지만 그 민주적 문자의 목록을 결정하는 것은 소수의 기업입니다. 사용은 분산되어 있지만 결정은 집중되어 있다는 이 모순이, 이모지 정치학의 핵심입니다.


다시 처음의 우연으로 돌아갑니다. 絵文字, 그림 문자. 이 이름이 emotion과 무관하다는 사실은 사소한 잡학처럼 보여요. 하지만 이 우연 속에 이모지의 정체성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이모지는 감정의 도구가 아니라 정보의 도구로 태어났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감정의 도구로 전유했습니다. 거짓 어원이 진짜 용법이 되었고, 설계 의도와 무관하게 이모지는 텍스트가 담지 못하는 감정의 온도를 실어나르는 역할을 맡게 되었어요.


어쩌면 이것이 모든 문자의 운명인지도 모릅니다. 문자는 발명자의 의도를 항상 배반해요. 관료제를 위해 발명된 쐐기문자에 길가메시 서사시가 새겨졌고, 페니키아 상인들이 만든 실용적 기록 도구 위에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쓰여졌습니다. 구리타 시게타카가 12×12 픽셀 안에 넣으려 했던 것은 일기예보였어요. 그것이 사랑 고백의 도구가 되고, 세대 갈등의 전선이 되고, 저항의 깃발이 됩니다.


문자는 한번 세상에 놓이면 만든 이의 손을 떠나요. 의미는 설계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는 것이니까요.




"테크-인문학 사전"은 테크 용어의 인문학적 어원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기술 용어들이 신화, 철학, 문학, 역사에서 건너온 과정을 따라가며, 그 차용이 드러내는 의미의 변형과 긴장을 살펴봅니다.



참고자료


사전 ·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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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jipedia, "Pirate Flag"

Online Etymology Dictionary, "emoji"

Online Etymology Dictionary, "emoticon"

Wikipedia, "Emoji"

Wikipedia, "Emoticon"

Wikipedia, "History of writing"

Wikipedia, "Pistol emoji"

Wikipedia, "Shigetaka Kurita"

Wiktionary, "emoji"


아티클

Denise Schmandt-Besserat, "The Evolution of Writing", UT Austin

Jacopo Prisco, "Shigetaka Kurita: The man who invented emoji", CNN Style

Johanna Mayer, "The Origin of the Word 'Emoji'", Science Friday

Julia R Deathridge, "Are emojis the hieroglyphics of the 21st century?", UCL Researchers in Museums

Kakao, "카카오 이모티콘 출시 10주년, 창작자와 동반 성장하며 상생 가치 실현"

Keith Broni, "Major Moments in Emoji History: 1995 to 2025", Emoj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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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umine, "日本から世界に広まった「絵文字(emoji)」は、どのように生まれたのか?", FU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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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ecca Hersher, "Apple Ditches Pistol Emoji In Favor Of Water Gun", NPR

Victor Luckerson, "Meet the 63-Year-Old in Charge of Approving New Emojis", TIME

Victor Mair, "Emojis vs. emoticons", Language Log

保母千佳恵, "世界に広がる「emoji」生みの親・栗田穣崇氏が語る、絵文字が果たした役割と課題", @Living

石澤萌, "176種の"初代絵文字"はどう生まれたか 「iモード」開発者の原点とは", スタジオパーソル

関口聖, "MoMAに収蔵された「絵文字」の"父"、栗田氏が語った開発当時のエピソード", ケータイWatch


전시 · 아카이브

MoMA, "Inbox: The Original Emoji"

MoMA, "Shigetaka Kurita. Emoji. 1998-1999"


통계 · 데이터

Unicode, "Emoji Frequ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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