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재 유튜브는 이제 과포화상태다. 그럴 만하다. '영화를 소개하는 영상'은 남녀노소 누구나 별 생각 없이 틀어놓고 보게 되는 대중적인 콘텐츠라는 것을 저 옛날부터 [출발! 비디오 여행] 류의 TV 프로그램이 입증하고 있으니까. 두 시간짜리 영화도 보러 가는 판에, 인기가 있었던 영화를, 그것도 흥미로운 장면들 위주로 쏙쏙 간추려 입에 넣어주는 콘텐츠는 여간해선 재미없기가 힘든 것이다.
영화 소재 유튜브는 이처럼 '안전한' 기획이기에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도전하지만, 그만큼 심한 경쟁 때문에 주목받기 어려운 시장이기도 하다. 때문에 유튜브의 영화 카테고리는 '클릭 미끼' 전략이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는 곳 중 하나다. 이를테면 영화의 설정 일부를 최대한 자극적으로 표현해 제목으로 만들고, 썸네일 역시 가장 자극적인 부분을 떼어 만드는 것이다. 차마 예를 들기에 민망할 정도다. 굳이 알고 싶다면 지금 당장 유튜브에서 '영화 리뷰'라고 검색해보라.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변론한다면 더 이상 부정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영상을 클릭하기 전에는 영화의 제목조차 알 수 없게 꾸미는 관행이 과연 '영화를 말하는 콘텐츠'로서 적절한 태도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이런 한가운데에서 정반대의 전략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견고하게 다져가고 있는 크리에이터가 있다.
[영민하다]는 '당신이 모르는 숨겨진 비밀' 시리즈로 알려졌다. 유명한 영화를 한 편 정해 제작 과정의 사소한 비하인드 스토리, 소위 'TMI'를 소개하는 이 영상들의 제목은 항상 정직하다. 다루는 영화의 제목이 무조건 맨 앞에 놓이고, 그 뒤에는 '당신이 모르는 숨겨진 비밀'이 붙는다.
본명 '이영민'에서 따 왔을 채널의 이름이 똑똑하다는 뜻의 '영민(英敏)'과 얼마나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영화 유튜브들이 보여주는 조회수에 대한 집념을 생각하면 '당신이 모르는 숨겨진 비밀' 시리즈의 일관적인 태도는 채널의 이름과 사뭇 괴리가 있다. 좋게 말하면 우직하고 나쁘게 말하면 둔하다.
'[살인의 추억] 당신이 모르는 숨겨진 비밀' 대신 '싸움 장면 찍다가 실제로 분위기 험악해진 배우들 ㄷㄷ'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곡성] 당신이 모르는 숨겨진 비밀' 대신 '일본인 배우가 촬영 중 홀딱 빠진 한국음식은?'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타짜] 당신이 모르는 숨겨진 비밀' 대신 '정마담은 그래서 이대를 나왔나?'라고 했어야 더 많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영민하다]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저 '이 영화가 재밌었다면 비하인드 스토리도 확인해보면 어때?'라고 담백하게 권할 뿐이다.
[영민하다]의 이러한 고집에서 느껴지는 것은 소위 '덕후'의 태도이다. 다들 영화 보고 나서 비하인드 스토리랑 배우 필모그래피 검색해보는 거 아니었냐고 묻는 트위터 이용자가 말해주듯, 영화 덕후들은 굳이 궁금증을 유발하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지 않아도 기꺼이 좋아하는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찾아본다. [영민하다]의 구독자 중 실제로 그러한 '영화 덕후'를 자처하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의 정직한 제목들이 주로 겨냥하는 것은, 자극을 찾아 헤매는 무료함이 아닌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뷰파인더 밖의 일까지 알고 싶어하는 오타쿠적 호기심이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알아냈지'가 절로 나오는 그의 콘텐츠들은 순전히 공부와 노력의 산물이다. Q&A 영상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수학 전공으로, 영화 산업에서는 일한 적이 없다. 2년 정도 영화 비평 모임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관련된 공부를 한 것이 전부다. 미장센이나 촬영 기법 등에 대한 내용은 공부를 하면 어느 정도 보이게 될 테지만, 각종 비하인드 스토리는 오로지 인터뷰나 코멘터리 영상, GV 등을 샅샅이 뒤져 알아내야 한다. 그렇게 수집한 정보의 양은 때로는 엄청나서 [곡성]이나 [황해]처럼 3-4편에 나누어 정리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잔잔하게 깔리는 나레이션과 편안한 편집 스타일 덕에 80~100개가 넘는 'TMI'들을 연달아 집어 먹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다.
[영민하다]가 다루었던 '비밀'들 중 몇 가지를 무작위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도 있다.
[어바웃 타임]에서 메리(레이첼 맥아담스 분)의 앞머리는 헤어피스이다.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 분)의 반지하 집이 침수되는 씬은 배우들의 건강을 고려해 땅을 파서 물을 채우는 식이 아닌 수조 세트를 따로 만드는 식으로 촬영됐다.
[터미네이터 2]에서 T-800(아놀드 슈워제네거 분)이 스페인어로 말하는 대사인 'Hasta la vista, baby(잘 가라, 애송이)'는 정작 스페인어판에서는 '사요나라, 베이비'로 번역됐다.
[내부자들]에서 안상구(이병헌 분)가 이강희(백윤식 분)의 차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퇴장할 때 '형님, 아일비 백(I'll be back)'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병헌의 애드리브이며, 백윤식의 웃음도 어이가 없어서 나온 애드리브이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어벤저스 어셈블'이라는 대사가 나온 최초의 실사 영화이다.
[타짜]에서 '정마담(김혜수 분)은 실제로 이대를 나왔는가?'라는 질문에 감독은 '들어가긴 했는데 졸업 여부는 모른다'고 답했다.
[곡성]에서 효진 역을 맡은 김환희는 '뭣이 중헌디'를 여러 버전으로 준비했다.
[신세계]에서 정청(황정민 분)이 쓰는 짝퉁 선글라스는 사실 명품이다.
2019년판 [라이온킹]에서 제임스 얼 존스(무파사 분)는 원작의 자기 역할을 되풀이한 유일한 배우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원래 제목은 [절권도의 길]이었다.
[데드풀 2]의 크레딧에서 감독은 이름 대신 '[존 윅]에서 강아지 죽인 애'로 나온다.
[설국열차]의 크리스 에반스는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기차 안에서 4시간씩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