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불신을 견디며 쓰는 글
성인 ADHD 진단 후 내 인생은 많이 달라졌다. 하루 동안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할 때 비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일이 없어졌고, 책을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앉은자리에서 막힌 곳 없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태어난 지 26년 만에 공부다운 공부를 하면서 공대 출신자에 걸맞은 기술 자격증 필기 합격이라는 영예(?)도 얻었다.
이렇듯 내 삶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내가 원했던 평균만큼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보통의 삶’을 실천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근본적인 질문이 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취업과 영화학교 입시를 동시에 준비하며 쏟아지는 자기소개서의 홍수 덕분에 충실히 답할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어쩌면 ADHD 진단 후에도 이어진 낙방 경험은 위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구나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모두 관에 누워 깨지 않는 휴식을 갖게 될 때까지 질문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ADHD 진단 후 내가 알게 된, 내가 느끼게 된 진짜 나의 문제는 나를 설명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 그 너머에 있었다.
콘서타 같은 ADHD 약을 먹기 이전과 이후 나의 삶은 단절되었다고 느낄 정도로 그 틈이 크다. 처음 ADHD를 진단받게 된 2024년 하반기 이전의 나는 기억 속에서 그저 움직이기만 하는 ’좀비’로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탓에 나는 지금까지도 커다란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질문에 질문이 덧붙여졌다.
왜 ‘나는 누구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할까?
오랜 고민 끝에 내린 답은 간단했다. 나는 내가 경험한 것들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느꼈는지, 결국 나는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나는 나를 구성한 수많은 요소를 구태여 남에게 설명할 이유도 찾지 못했고, 그것을 마주하는 것도 두려워했다. 더 나아가서는 내가 무슨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나 스스로조차 알 수 없는 부분도 존재했다.
복잡한 개인사, ADHD, 기타 정신질환, 타고난 나의 성격 등 어떤 요소가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는지 딱 꼬집어 얘기할 수는 없다. 나도 모르니까. 하지만 ADHD 증상 ‘개선’(나는 개인적으로 ADHD가 질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에 나선 덕분에 안 그래도 미약한 자존감이 고양이 눈곱만큼이라도 커졌고, ‘진짜 나’를 마주할 자신감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가슴 한쪽에 아픔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모두 아픔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나도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진짜 나’를 찾고 밖으로 꺼내봐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자신의 아픔에 관해 이야기하여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그 조언을 온전히 믿지 못한다. 지금도 언제, 어디서부터 쌓였는지 모를 사람에 대한 깊은 불신과 두려움이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만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보통의 삶’을 원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두려움을 품은 채 조금 늦은 나이에 알바를 시작했고, 아무런 경험도 없이 아마추어 영화 제작에 발을 담가보았으며, 증상을 느끼고 용기 내어 병원에 가서 ADHD 진단을 획득(?)했다. 이렇듯 그리 많지는 않게, 아주 조금 늦었지만 ‘보통의 삶’과 나 사이의 틈을 빠르게 좁혀나가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그러니까, 이 글은 성인 ADHD와 양극성 장애를 껴안은 채 ‘진짜 나’를 찾아가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며 쓰는 글이다. 스마트폰 연습장을 몇 번이나 켜고 끄면서 한숨을 내쉬고, 며칠 동안 잠까지 설쳐가면서 어렵게 마음을 다잡은 끝에 이리저리 흩어지는 정신을 붙잡고 꾹꾹 눌러쓰는 중이다. 아프고 쓰라리다. 그러나 나는 과거로써 현재의 나를 합리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고,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내가 쓴 글을 등불로 삼아 어두운 길을 걸어가는 것은 아직 나 혼자이지만, 누구든 나의 발자국만이라도 좇아 함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더없이 기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