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연습

상실감의 농도는 짙었지만

by 성수민

내게 이별의 농도는 유달리 짙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시간을 거쳐갔지만 상실감의 밀도가 크다고 해야 할까. 나는 아직도 가끔 다섯 살 때 한가득 쌓인 눈과 나 밖에 없는 텅 빈 놀이터에서 본 커다란 나무의 앙상한 가지, 그리고 엉덩이에 스며든 차가운 감각에 대한 꿈을 꾼다. 그리고 그건 내 생애 첫 번째 기억이다. 내가 느끼고 있는 상실감과 공허감이 머릿속을 스칠 때마다 그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외환위기로 경제에 거대한 한파가 몰아치고 그 여파가 가정이라는 작은 단위에까지 구석구석 미치고 있었을 때 나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의 부부도 무참히 박살 나던 엄혹한 시기에, 정식 부부도 아니었던 아버지와 친어머니는 나를 매개로 가족이라는 작은 집을 짓기에 어려움을 느꼈다. 게다가 친척들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몹쓸병’(이라고 쓰고 ADHD와 우울증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인해 사회와 거리를 두면서 은둔하고 있었다. 친어머니는 또렷하게 보았음이 틀림없다. 아버지의 눈빛에 서려있는 감정적 무기력감과 무책임감을. 결국 그녀는 친척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기가 눈도 제대로 떠보기 전‘에 내 곁을 떠났다.


이후 내 주 양육자는 할머니가 되었다. 할머니도 6살 때 세상을 등지게 되지만, 그전까지 나는 불안하게 흔들리던 아버지로부터 한 발짝 멀어질 수 있었다. 할머니의 장례식 동안 나는 먼 친척집에 맡겨졌는데 나는 펑펑 울기만 했다. 나는 남들과 다르구나, 조금 외롭구나 하는 고독감의 편린과 기댈 곳이 없다는 공포를 찰나의 순간 느꼈다. 그때 운 기억을 떠올리면 앙상한 가지와 바닥에 하얗게 쌓인 눈의 이미지가 모든 감각으로 선명히 되살아난다.


그 후 나의 성격은 두 가지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밝은 나와 어두운 나. 내 슬픔을 말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슬픔을 어두운 나에게 몰아넣고 집 밖으로 뛰쳐나오지 못하도록 꼼꼼히 막았다. 처음 들어간 낯선 학교에서는 누구나 밝은 아이를 좋아했기 때문에 나는 밝은 아이들의 모습을 따라 했다. 하지만 가끔 어두운 내가 새어 나오면, 나는 멀어지는 아이들을 상대로 또다시 작은 이별을 연습해야 했다.


잦은 이별 연습은 감정의 전선끼리 쇼트를 일으켰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할머니 때와 달리 어떤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다가 친척들을 따라갔고, 관을 매장하는 모습을 본 것이 전부다. 그저 장지로 가는 차 안에서 본 부드러운 산등성이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몇 년 뒤 아버지까지 잃었을 때도 나는 무덤덤했다. 장례식장 직원이 ‘씩씩하구나’하고 등을 두드려주었을 때 슬픔이 아니라 칭찬받았다는 기쁨의 감정만 기억 속에 남아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아팠기 때문에 나와 친밀한 가족으로 남기에는 어려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감정의 오작동 때문에 내가 무감각해진 이유는 이별로 인한 상실감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방어기제였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방어기제가 짧은 시간이나마 나를 지켜주었고, 내가 이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다만 그러기 전까지 나는 좀비처럼 감정 없이 부유했다.


사실 이별의 밀도가 높았던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죽음이 나를 부르는 듯한 아찔한 경험을 하기도 했고 어떨 때는 삶의 욕구가 아슬아슬하게 이어졌다. 나는 그저 외로웠기에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관심이 미쳐 영화나 소설에 깊이 빠져들 뿐이었다. 스물두살이 조금 넘어서, 나는 읽는데 거의 3개월은 걸린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중 몇 구절들을 떠올렸다. 마음속에 아픔을 갖고 있는 공학도 청년 한스 카스트로프(나와 똑같다!)가 스키를 타고 알프스 산맥을 내려오면서 고뇌한 끝에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죽음의 모험은 삶 속에 포함되어 있고 그러한 모험이 없으면 삶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은 삶에 종속시키기에는 고귀한 정신의 경건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삶보다 고귀하다.
그것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며, 선하게 살아갈 것이다.
나의 생각에 대한 지배권을 죽음에게 넘겨주지 않으련다!
<초속 5센티미터>,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

그 구절들을 곱씹으며, 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과 이별하기로 했다. 살고 싶은 이유, 죽고 싶은 이유가 모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씩 깨달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나의 아픔을 품고서 가슴 한편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자리를 하나 마련해 두는 일이라는 것을. 다만 그것을 준비하기 위한 아주 조그마한 실천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했고, 사실 지금도 필요하다.


이 생각에 닿자 나는 비로소 ‘어두운 나’와 화해하고 그를 집 밖으로 놓아줄 수 있었다. 그리고 ADHD 같은 나의 아픈 곳을 치료하기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단단하게 응어리진 바위를 조각하여 ‘진짜 나’를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얼마 남지 않은 나의 20대를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정성 들여 소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솔직히 그 걸음들이 내가 겪었던 이별 연습 때문에 여전히 아프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다. 나는 그것으로 현재를 합리화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속의 눈길을 묵묵하게 헤치며, 앞으로 향하여.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