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화에 빠져든 이유
아동용 그림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부터 나는 글이 아닌 그림에 더 눈길이 갔다. 글이 싫어서라기보다 ‘읽는다’라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이든 읽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에서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었으니까.
학교 선생님과 주위 어른들은 내가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줄 알고 있었다. 나는 책을 손에서 거의 놓지 않았다. 물론 책 자체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책을 한 번 ‘보는 것‘ 만으로는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두 번 정도 읽으면 이해하는 내용을 나는 최소 다섯 번은 보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그림과 글을 연결시켜 내용을 이해했다. 글은 어차피 읽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니까, 나는 글의 내용을 최대한 많이 이미지로 바꿔서 머릿속에 저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덕분에 초등학교에서 나는 크게 뒤처지는 학생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학년이 오르고 학교가 바뀌면서 글은 점점 늘어났고, 그림은 점점 줄어들었다. 수식은 외계인의 언어였고 영어는 한국어 독해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두 배로 내게 부담을 안겨주었다. 나는 국가에서 정한 학습 커리큘럼에서 점점 밀려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중고등학교 문학의 내러티브라는 건 그림책 같은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견디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건 잔뜩 꼬여있어서 시험시간 안에 잘게 나눠 분석까지 해야 하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10대 중반 나는 과목으로서의 문학과 완전히 이별했다.
물론 문학 작품은 꾸준히 읽으려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노트가 필요했다. 나는 마치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그날 어느 부분을 읽었고, 주인공은 누구이며 무엇을 하려 하는지 적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이러한 독서 방식은 정신적인 힘을 너무 쏟았기 때문에 나는 내러티브가 있는 다른 매체로 도망쳐서 쉬고 싶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느끼던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소외와 곤경으로부터 위로받아야 할 곳이 필요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전야까지 혼자 남겨진 집에서 흘러나오던 그건, 영화였다.
영화. 지금은 기계가 없어 돌려볼 수도 없는 영화 VHS 테이프가 아버지 방에는 가득 쌓여있었다. 아버지는 빌려온 테이프를 늘 제때 반납하지 못했다. 집에 찾아온 낯선 남자에게 할머니가 테이프값을 치르고 나면 빌려온 테이프들은 우리 집의 것이 되었다.
그 덕분에 우리 집에는 테이프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어른들이 매달리는 그 테이프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 테이프를 기계에 살며시 넣어보았다. 6살, 그것이 나와 영화의 첫 만남이었다.
아버지는 주로 어두운 영화를 좋아했다. 홍콩 영화, 국적을 알 수 없는 언어로 된 영화 등. 전부 분위기를 한껏 잡고서 음습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폭력적 영화. 그러나 나는 그런 장르의 영화에 빠져들었다. 영화들에 짙게 깔린 우울한 정서가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어쩌면, 아버지도 그런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아버지와 따로 살게 된 이후, 영화는 아버지와 나의 유일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가끔 아버지와 만나게 되면 그곳은 영화관이었다. 우리는 조용히 영화를 감상했고 그 후에 말없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냉랭해 보였지만 그건 우리 가족만의 애정 표현이었다. 미성년자인 나의 쪽이 가족으로서의 애정을 더 요구해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아버지는 당시 내게 그 이상의 것을 해줄 수는 없었고 나는 그 점을 이해했다.
그런 어색한 만남이 이어지던 어느 날 아버지는 다음에 볼 영화를 약속하고서 며칠 뒤 하얀 뼛가루가 되었다. 유년기의 채워지지 않던 애정이 영화 이름 하나만을 남기고 스러져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때 나의 부족한 처지를 메우기 위함이었을까, 나는 아직 취미의 영역이던 영화 감상을 몰입의 영역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내게 영화는 ADHD로 인한 난독 증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충실한 도파민 공급기이자 미약한 가족애를 확인받을 수 있는 수단, 그리고 외로운 나를 달래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 순전히 운명이다. 아버지 방에 있던 것들이 소설이었다면, 아버지와 만남을 약속한 장소가 미술관이었다면 나는 영화감독이 아닌 다른 꿈을 꾸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명은 필연들이 조합되어 만들어진다. 아버지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는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ADHD 때문에 나와 같은 과정을 겪었고, 그 끝에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영화 테이프나 DVD를 모으는 취미까지. 이것들은 아버지가 행해온 필연이다.
ADHD는 유전자의 영향이 대부분. 영화 유전자가 있다면 내게 대를 이어 전해져 온 것이 아닐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나의 미래를 정한다면 그 자체를 운명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내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