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너무 무겁지만

나의 밖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by 성수민

ADHD나 양극성 장애 때문일지는 몰라도 나는 늘 만성적인 우울감과 공허감에 시달리고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처럼 심할 때와 덜 심할 때가 있을 뿐.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은 덜 심할 때의 상태를 계속 유지시키는 역할만 해주는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남들 앞에 나서는 ‘가짜 나’와 ‘진짜 나’ 두 명의 성격을 동시의 무겁게 짊어지고 스스로 정신건강관리를 해줘야 한다. 그 둘의 차이는 아직도 커서, 정말 무겁다. 하지만 무겁다고 정체되지는 않는다. 나는 무거운 나 스스로를 들어 올리면서 감정의 근육을 조금씩 키워왔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나는 대학을 다니며 조별과제 같은 이유 때문에 어떻게든 사람을 만나야 했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갈등은 그 수위를 떠나 나를 몹시 힘들게 만들어서, 항상 그것으로부터 피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혼자가 되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괴롭다. 친해지고 싶지만 실제로 친해지는 것은 두렵다. 내가 어디에 있든 즐거움과 괴로움의 패러미터는 들쭉날쭉 마구 요동치며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고 모순적인 감정들은 계속해서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가까워진 인간관계를 단숨에 끊어버리면 불이익이 컸기 때문에 나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해결책을 내놓았다. 나의 인간관계를 철저한 비즈니스적 관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친척은 가족의 구성원임을 보여주면 여러 지원을 주는 관계, 동기는 같이 공부하는 관계로 철저하게 제한시켰다.


나는 나의 이익을 위해 연기를 했다. 나의 진짜 감정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친한 척을 했고, 웃었고, 공감하는 척을 했다. 어릴 때부터 주위 사람들을 면밀하게 관찰하던 습관 덕분이었지만 그 행동 속에 ‘진짜 나’는 없었다.


나는 사람을 이해타산에 맞게 이용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그들도 나를 모종의 용도로 이용할 테니 괜찮지 않을까 하고 합리화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속의 공허함과 나 자신의 무거움은 결코 덜어내지지 않았다. 나는 친해질 사람을 끊임없이 찾아다녔지만 결말은 같았다.



나는 모든 인간을 비즈니스적으로 대하면서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해야 했다. ‘진짜 나’가 새어 나올 틈을 가능하면 만들지 않아야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말을 많이 하는 식으로 상황을 주도하려고 했다. 그래놓고서 자기 전 후회하며 끙끙 앓는 짓을 계속했다.


그런 일이 반복될 즈음 친해질 사람을 구하기 위한 취미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 중 하나가 한 소리를 해주었다.

너는 너무 너 얘기만 해. 다른 사람 얘기도 들어보지 않을래?

사실 이런 얘기를 나에게 해준 사람들은 그전에도 많았다. 친척들이 그랬고, 영화나 소설에서도 그랬고, 나조차도 머리로는, 이성으로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사람이 달랐던 점은 무심코 나와버린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단 둘이 대화를 나누면서 난생처음으로 이해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나도 잘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 달 반 정도, 나는 그 사람에게 매달리다시피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갈 정도로. 그 사람은 그런 나를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늘 반겨주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면서도 그만큼 두려움이 몰려왔다.


또다시 난 거기서 멈춰버렸다. 나는 감정적 여유가 없었다. 그 사람을 이용하는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견고한 마음의 벽을 허물기보다는 또다시 거짓말을 하며 회피하기를 택했다. 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관계를 끊고 피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잘해주는 사람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망상회로에 다시 사로잡혔다. 그렇게 연락처를 ‘차단’시켜 버리면서 그 사람으로 향하는 창문을 닫아버렸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 사람의 연락처도 지우고, 잊으려 애썼다.


좋은 인연을 내 손으로, 나쁜 방법으로 끊어버렸지만 장기적으로 그 사람은 나에게 좋은 영향을 남겼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죄송하고, 감사하다.



나는 과거를 돌아보면서 인간관계의 파탄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노력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조별과제를 할 때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것은 내 기준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가짜 나‘를 위한 일이었음에도 성실하게 참여하려 노력했다.


끝끝내 신뢰감이나 친밀감은 누구에게도 느끼지 못했지만 두려움과 강박을 통해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는 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 스스로가 무겁다’는 건 관점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남을 이용하기 위해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욕망이 결과적으로는 남에게 자그마한 이익을 주었던 것이다. 무거운 나를 감당하는 것이 남에게 이익이라니 놀라웠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비로소 눈길이 바깥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관점과 생각을 바꾸었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잘해주고 싶다‘라고.


솔직히 나는 여전히 무겁다. 그러나 무거운 나를 짊어지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다 보니 피할 수 있는 관계라고 해도 피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피하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피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살다 보면 좋은 인연들이 계속 쌓이고 무거운 나도 언젠가 잠깐 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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