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코 앞에 닥쳐와야 움직인다
대학 졸업이 눈앞에 다가오자, 내 눈앞도 캄캄해졌다. 주위에서는 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했고, 나도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예전에 딴 기술자격증 하나에 어학 점수, 낮은 학점 하나만 가지고서는 취업이 녹록지 않았을뿐더러 간신히 면접까지 가서는 압박면접과 인신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면접관들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도망쳤다.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로 한 것이다. 4학년에 올라가기 전부터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지만 시도였을 뿐 나는 늘 그렇듯이 책을 보다가 어느새 천장에 붙은 전등의 개수를 세고 있었다.
하려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나는 우울해졌다. 그래서 나는 1년의 절반 이상을 우울하게 지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는 뭔가를 해야만 했다. 가끔 그런 강박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는 한다.
1년에 한두 번, 어쩌면 서너 번, 며칠 동안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분노와 우울이 뒤섞여 모든 것이 정지되어 버린다. 밥 생각도 없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누워있다 분노에 휩싸이곤 한다. 그럴 때 영화감독의 꿈이 다시 떠올랐다.
원래부터 있었지만 실천은 엄두도 못 내던 꿈. 제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나는 어느새 봉준호, 코엔 형제, 구로사와 아키라, 라스 폰 트리에가 되어있었다. 눈 덮인 겨울산을 올라 새해의 여명을 바라보며 나는 이성과 광기 그 아슬아슬한 간극 사이에 줄을 매단 채로 영화감독의 꿈을 그렸다.
그렇게 나는 충동적으로 영화 학원을 등록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학원만 한 곳이 없다. 조증 삽화가 찾아올 때는 이렇게 막힘없이 일을 처리해 나간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나를 의심했다. 취업의 어려움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또 이렇게 도망치는 건가?
나는 뭐든지 코 앞에 닥쳐와야 뭔가를 시작했다. 영화를 찍어보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랬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허겁지겁하는 일들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기에 나는 도망쳤고, 나는 그런 나에게 좌절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도망치는 것이 맞았다. 영화 제작에 직접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했다. 나는 도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 영화 학원에서의 수업도 예전처럼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서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도 나는 뭔가를 하고 있었고 바뀌고 있었다. 때론 도망치는 게 내게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