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작에 나서다 - 2

모든 것이 처음이고 어지러웠지만

by 성수민

영화 학원에서 처음 배운 내용들은 전부 생소했다. 감상과 제작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내 생각 이상으로 차이가 컸다. 이야기 구조, 아이러니, 주제 선정, 사전조사 같은 것들을 배웠지만 솔직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원래 앉아서 듣는 강의에는 집중하지 못했고, 새로 배운 것을 익히는데 남들보다 훨씬 늦은 편이었다. 관련 도서를 읽으며 지식을 쌓아보려 했지만 실제 제작에 뛰어들어야 할 때는 너무나도 빠르게 다가왔다.


각종 장비를 다루는 법, 영화 연출이라는 것이 어떻게 운영되는 것인지 배웠지만 사실 그런 것은 머리에 들어와 있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점점 영화 제작이라는 건 사람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나와 나이대가 비슷했지만 영화 촬영 경험이 있거나, 글을 써본 경험이 오래됐거나, 영화 관련 회사에 근무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관련 대화를 나누는 것에 벽을 느꼈고 그만큼 제작하는데도 애를 먹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청한 것도 아니었다. 밖에서 맺는 인간관계에서 웃는 것 빼고는 어떻게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수강생들은 전부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전 작업을 혼자 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부담을 덜 수 있는 일이었고, 부탁하면 해줄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무엇이든 이마에 닿아야 하는 습관’ 덕분에 시간에 쫓기면서 꾸역꾸역 혼자 일을 했다.



그 탓에 나의 촬영은 몹시 힘들었다. 스태프로 참여한 다른 수강생들은 내 작품에 참여하면서도 어떤 작품인지 잘 몰랐다. 촬영감독은 앙각, 부감, 바스트 샷 어떤 구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실 나조차도 몰랐다. 나는 나의 최후의 최후까지 미루는 습관 때문에 애초에 어떤 이미지가 머리에 들어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른 수강생들은 불평은 했을지언정 머리를 맞대어 없는 이미지를 만들어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영화는 절대 혼자 만들 수 없고, 감독 및 작가의 사전 작업이 몹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게다가 사비를 털어서 제작하는 것이라 차질이 생길수록 돈이 더 깨질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들과 제대로 협력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 돈’ 또한 제대로 챙기지 못한 셈이 되었다.


그래도 촬영은 어떻게든 끝났다. 다른 스태프들이 70% 정도는 ‘현장에서 만든’ 값진 장면들 덕분에 편집할 재료를 얻을 수 있었다.


한동안내 작품 촬영에서 있었던 일을 성찰하며 생각해 보았다. 나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이 많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좋은 스태프들이 있었고 그 덕에 상황이 잘 마무리되어 감사했다.




반대로 다른 수강생의 영화를 만들 때는 내가 스태프로 참여해야 했다. 나는 보통 동시녹음을 붐맨을 맡았다. 어차피 그 밖의 스태프는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참조하여 쓸만한 다른 영화들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데도 다른 수강생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에 떠오른 것을 말해줬더라면 좀 더 깊이 참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두려움이 앞서 남들에게 쉽사리 연락하지 못하는 내 특성 때문에 뒤늦게라도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괴로웠던 건 다른 사람들의 시나리오를 읽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무엇이든 천천히 읽는 습관에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심상을 떠올려야 한다는 점까지 맞물려 나는 모든 수강생들의 제작 진도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내게 주어진 스태프 역할을 묵묵히 했다. 무엇보다 그 일이 즐거웠다. 힘들었지만 할 수 있었다. 나는 즐거운 일이라도 그것이 힘들다면 도망치는 편이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소망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나 나름대로 성장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끝까지 도망치지 않았다.




영화 학원에서 도망치지 않은 건 성장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기도 했다.


거창한 것이 아닌, 소위 메타 인지를 더 깊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의 각본을 읽지 못하는 나, 일을 일목요연하게 순서와 단계에 맞춰 처리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ADHD 증상을 깨닫는데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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