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밥값

축알못의 축구보기

by 도리

저번 주 승강 플레이오프행이 걸린 경남과 인천 경기에서 해설원이 이런 말을 했다.


"이번 시즌에 활약이 많이 없었어도,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터져준다면 1년 밥값은 한다고 볼 수 있죠."


그 얘기를 듣자마자 생각난 게 수원의 딱 두 선수였다. 부진을 딛고 FA컵 결승전에서 2골이나 넣어 우승을 만 고승범, 리고 갈 곳 잃은 선수에서 수원의 미래로 거듭난 한석희.


고승범은 2016년 수원에 입단지만 갈수록 입지가 좁아져갔다. 디가서 축구 못 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수원에서는 계속 실수만 했다고. 한석희도 련을 겪었다. 강원FC로 입단하기로 되어있었는데 갑자기 강원에서 지명을 철회버렸다. 한 기사 인터뷰에 따르면 '선수로서는 끝이라고 생각할 만한' 일이었다 한다.


축구 선수 중에 소싯적 천재 소리 한 번 안 들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단 일반인보다 훨씬 잘 해야 프로구단에 발을 들일 수 있을 테니까. 한다는 칭찬을 많이도 들었을 것이다. 칭찬에 들뜨지 않고 겸손하기란 사실 참 어렵다. 만해도 뭐 하나 잘한다고 칭찬받으면 며칠은 곱씹고 둥둥 들떠버리는데, 무려 천재 소리라니.


그런가 하면, 힘든 시기에 눅들지 않고 견디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나는 조금만 힘든 일이 생기면 못 견딘다. 주변에서는 작은 실패에도 곧바로 '쟤 별거 아니네.'라고 단정짓고, 나는 단 며칠의 비난과 냉소도 디기 괴로워한다. 그런데 축구선수는 잘 할 땐 천재 소리를 듣다가 한두경기만 슬럼프에 빠져도 곧바로 '쟤 빼라!' 하는 소리를 듣게 니. 실로 극과 극을 오가는 인생이다.


누구에게나 부진은 주어지고 그 기간은 알려주지 않는다. (출처: 수원삼성 공식 유튜브 캡쳐)

사실 부진 없이 매번 잘 하는 게 제일 좋다. 그런데 항상 좋기만 하겠는가. 그러기가 더 어렵다. 결론은, 매번 잘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구에게나 부진은 주어지고 그 기간은 알려주지 않는다. 언제 끝날지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두 선수도 수년의 힘든 시간을 겪었다. 버티고 절치부심해서 결국 막바지에 '1년 밥값'을 제대로 해 낸 것이다. 올해 초만 해도 둘은 활발한 활약을 펼치거나 기대를 걸 만한 선수가 아니었다. 고승범은 활약을 못 한 지 오래됐고, 한석희는 그냥 수원에 입단한 신인 정도였다. 그런데 그게 올해 말까지 똑같았는가? 그들의 존재감은 완전히 달라졌다.


'최대한 빨리 데뷔전을 가지는' 게 목표였던 신인에서 매번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보이는 선수로.(출처: 수원삼성 공식 인스타그램, 인터풋볼)

현재는 다가 아니며 인생은 길다. 지금의 상태가 끝까지 똑같으리란 보장도 없다. 밥값은 무조건 365일 균등하게 해야만 밥값인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한방에 치러도 밥값이다! 연초엔 도무지 밥값을 못 하고 있었더라도 연말에에 1년 밥값을 한 방에 다 해버리면 오히려 그게 더 영웅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한의권과 바그닝요를 생각한다... 그들도 분명 잘 했던 선수들이다. 내년에 어느 순간 또 1년 밥값을 한 방에 안겨주는 활약을 할지도 모다. 원래 영웅에겐 시련의 스토리가 필수다.


또, 요즘 업무 부진에 허덕이고 있는 나를 생각한다. 매번 잘 하고만 싶지만 새로운 업무를 언제나 뚝딱 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못 하고 있다고 너무 자책하지 말자. 이건 그냥 '시련의 스토리'라고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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