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야구 선수반이란 이름으로 금토일을 야구학원을 다닌 지 어언 8개월이 흘렀다. 학원 선수반은 중학생들과 고학년 저학년 학생들이 한데 섞여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4학년이 된 우리 둘째는 그 틈에서 그저 병풍 같은 존재인 것 같았다. 공이 굴러올 리 만무한 외야 저 뒤에서 서 있기만 한 녀석을 보고 있자니 속이 답답해져 왔다. 애들은 본인이 못하는 이 순간을 재미와 야구사랑으로 버티지만 우리는 본디 그런 걸 견디지 못하는 인간이므로 안보는 게 맞다는 친구의 조언에따라 장장 여덟 달을 녀석의 연습경기를 안 보고 버텨보았다. 그러다 어느 날 마주친 여전한 녀석의 꿔다논 보릿자루 같은 수비위치와 한결같은 타격실력에 나는 그저 이 학원의 전기세를 대주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아이는 야구게임을 하고 싶어 했는데 지방에서 이뤄지는 게임을 우리가 매번 참여하기는 어려웠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이에게 어마어마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우리 집 기준 최고의 체격을 갖춘 요 녀석에게 믿는 구석이라면 근성이었다. 본인이 재미있다고 느낀 것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연습하는 자세. 큰아이는 해야 할 것을 규칙적으로 시간을 분배하여한다면 이 녀석은 하고 싶은 것을 몰입해서 했다. 큐브를 할 때도 그랬다. 숙제를 대충 끝내곤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큐브를 돌렸다. 놀랍게도 큐브대회에서 여러 번 일등을 하는 것을 보며 이 아이의 재능은 흥미 있는 일을 몰입해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인근 초등학교 야구부를 찾게 되었다. 네가 좋아하는 야구 원 없이 해봐라. 질리도록 해서 질리면 또 다른 걸 찾아보자. 정말 네 길이면 엄마가 도와줘야겠지.라는 모범적인(?) 부모의 마음으로 접근했더랬다.
인근초등학교 야구부는 줄어드는 학생수로 인한 만성적인 인원부족과 여기에내부의 말 못 할 풍파로 부족한 우리 아이의 실력에도 적극적으로 영입(?)을 시전 했으니 안 그래도 갈대 같은 내가 혹 했음을 말할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가 첫 연습경기에서 안타를 두 번이나 치면서 어쩌면 이 길이 정말 녀석에게 맞는 길일지도 모르겠다는 헛된(?) 기대가 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3월 초 나는 전학을 결정하며 초초초 인접한 인기 공립초를 떠나 도보 20분 거리의 학교로 향했다. 에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