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원영이가 먼저였다면,

아마도 우리 여행은 많이 달랐을 거야

by 본격감성허세남

비록 코로나는 여전하지만 빨간펜 3단계를 다 하면 같이 여행을 가겠다고 약속을 했었는데 수인이가 정말로 빨간펜 3단계를 다 했다. 그것도 하나도 밀리지 않고! 우리 딸이지만 정말 대단하다. 나도 어렸을 때 학습지 같은 것을 저렇게 열심히 밀리지 않고 했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게다가 빨간펜과 함께 하는 도요새 잉글리시도 3단계까지 다 끝냈다! 대견하다! 그래서 약속한 대로 가볍게 천안을 거쳐 안면도로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한참 전부터 노래를 부르던 '아일랜드 리솜'에 직접 다녀왔으니 유수인이 엄청나게 신나 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원영이가 점점 커가면서 이제 단순 아기가 아니라 본인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물론 말은 못 해서 그 표현이 소리 지르기나 울음인 것이 문제긴 하지만) 아이가 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수인이와 원영이는 무척이나 다르다. 같은 남매인데 이렇게 다르다니 싶을 정도로 다르다. 수인이는 원영이 개월 정도 됐을 때도 아빠 엄마의 말에 상당히 수긍하는 편이었고, 어디 가자 하면 잘 따라다니고, 손도 잘 잡고 그랬는데 원영이는 완전 반대다. 일단 말은 잘 듣지 않고, 밖에 나가서도 손도 계속 뿌리친다. 오로지 마이웨이만을 외치며 본인이 가고 싶은 곳으로 도망간다. 그리고 수틀리면 눕거나 운다. 수인이는 그런 적이 거의 없어서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대체 왜 이러나 싶을 때가 많다. 아마 나중에 커도 수인이처럼 순순히 학습지 같은 것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벌써부터 걱정을 해서 뭐하나 싶긴 하지만 아무튼 괜스레 걱정이 된다.


원래 목적지는 안면도의 아일랜드 리솜이었지만 우연히 천안에 '상록랜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서 먼저 천안에 들렀다. 게다가 그곳은 공무원이라면 50% 할인도 된다! 공무원인 아내의 덕을 톡톡히 봐서 매우 저렴하게 놀이동산을 즐겼다. 상록랜드는 마치 옛날 나 어렸을 적 지금은 북서울 꿈의 숲 자리에 있었던 드림랜드를 생각나게 하는 오래되고 작은 놀이동산이었지만 덕분에 사람도 거의 없고 수인이처럼 아직 취학 전인 아이들에게는 딱 맞는 곳이었다. 마스크를 계속 쓰긴 했지만 코로나 걱정 많이 없이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처음으로 손목에 차본 놀이동산 자유이용권을 기념하는 수인이


"아빠 우리 다음엔 뭐 탈까?"

"나 혼자 탈 수 있어!"


수인이가 놀이동산에서 많이 했던 2마디이다. 역시 어린 아이라 겁도 없는지 모든 놀이기구를 빠짐없이 다 잘 타더라. 비록 키가 모자라서 어른 바이킹은 못 탔지만. 처음엔 내가 같이 타 주다가 나중에 몇몇 놀이기구는 혼자 타라고 뒀다. 이렇게 잘 타는 걸 보니 이제 조금 더 무서운 놀이기구가 많은 서울랜드나 에버랜드에 가도 돈 아깝지 않게 잘 놀 수 있을 것 같다. 여러모로 대견한 우리 딸. 어렸을 때부터 어딜 가나 이렇게 잘 즐겨주는 걸 보니 참 고맙기도 하다. 덕분에 아빠 엄마도 여기저기 열심히 놀러 다닐 수 있었어.


중간에 컨테이너 2개 정도를 연결한 듯한 허접해 보이는 유령의 집이 있었다. 거기 들어가는 건 결국 실패했다. 스릴은 즐기지만 어두운 곳은 무서워서 싫은가 보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사진에 잘 표현되진 않았지만 확실히 신난 것 맞다.


2020_0919_14203500-01.jpeg
2020_0919_15181000-01.jpeg
20200919_155603.jpg
2020_0919_15455200.jpg
2020_0919_14234900.jpg
여러 놀이기구를 다양하게 섭렵


반면에 원영이는 놀이동산에서 내내 울었다. 들어가서부터 정말 내내 울었다. 36개월은 무료라 손목에 팔찌를 채워줘 봤지만 어느 하나도 타지 못했고, 아빠랑 누나가 놀이기구를 타러 가면 그걸 보고 또 울었다.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원영이를 데리고 무언가를 먹여 가며 계속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똥강아지다. 왜 우는지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그렇다고 아빠랑 누나가 곁에 있다고 또 잘 노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아내의 말에 따르면 편의점에 가서 밥을 매우 잘 먹었다고 한다. 배가 고팠던 건가. 오기 전에 밥도 먹었고 이것저것 사주기도 했는데. 날씨도 좋고, 사람도 없어 즐거운 놀이공원에 크게 울려 퍼지던 원영이의 울음소리는 참 난감했다.


2020_0919_14350500-01.jpeg
2020_0919_16031900-01.jpeg
슬픈 동생, 즐거운 누나


그래도 놀이기구를 다 타고 밖으로 나온 뒤부터는 기분이 좋아져서 원영이도 여기저기 열심히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내내 울던 아이가 갑자기 고추 먹은 것처럼 쉬지 않고 계속 뛰어다니니까 참 황당하기도 하고, 그 모습이 또 귀엽기도 하고 그러더라. 누나는 비눗방울을 들고 열심히 뛰고, 동생은 그 모습을 보고 또 따라가고.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즐겁게 뛰어놀았다. 또래보다 늦어서 많이 컸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열심히 잘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원영이가 참 많이 컸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아, 저렇게 키우기까지 아내의 고생이 특히 많았다.


2020_0919_16091700-02.jpeg
2020_0919_16064800-01.jpeg
2020_0919_16255700-01.jpeg
2020_0919_16240400-01.jpeg
2020_0919_16245600-01.jpeg
2020_0919_16371700-01.jpeg


원영이는 누나를 정말 좋아한다. 우리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누나가 하는 건 다 따라 한다. 심지어 누나가 화장실에 가면 쏜살같이 따라가서 누나가 용변 보는 것을 지켜볼 정도... 그럼 누나는 소리친다.


"원영아 저리 가! 불편해!"


하지만 원영이는 물론 가지는 않는다. 언제까지 저럴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누나를 엄청 좋아한다. 다행히 누나도 원영이를 굉장히 좋아한다. 자기가 먼저 원영이를 웃겨주기도 하고, "어이구 그랬어 어이구" 하면서 엄마 흉내를 내기도 한다. 보통 남매들은 많이 싸운다던데 가끔 수인이가 원영이 때문에 서운하거나 삐지긴 하지만 둘이서 싸우거나 그런 적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여러모로 다행이고 대견한 우리 딸. 고마워.


20200920_101020.jpg
2020_0920_18372300-01.jpeg
누나 덕분에 의좋은 남매


아일랜드 리솜에서도 양상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누나는 아빠와 함께 신나서 놀고, 동생은 엄마에게 안겨서 찡찡대면서 무서워하고. 대신 놀이동산과 다르게 금방 물에 적응한 원영이는 곧 즐겁게 놀기 시작했다. 활발하게 다니거나 하는 건 아직 무리지만 그래도 잘 안겨서 놀고, 심지어 아빠에게도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고 잘 안겨서 놀고 그랬다. 물이 마음에 드나 보다. 앞으로는 놀이동산 말고 물놀이만 가야 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물놀이는 불안한데 말이지.


천안과 안면도를 거치며 만약에 원영이가 수인이보다 먼저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수인이는 어려서부터 여기저기 잘 다니던 아이였고, 여러모로 참 순한 아이였다. 비록 엄마 껌딱지가 심해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엄청 우는 아이로 기억하지만 우리에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순한 아이였던 것 같다. 그런데 원영이는 확실히 수인이보다 고집도 더 세고 데리고 다니기 힘든 아이다. 돌이 지날 때까지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느낀 것 같다. 코로나가 완화되더라도 예전에 수인이 데리고 여기저기 도시를 다닌 것처럼 원영이 데리고 도시에 다닐 수 있을까? 섣불리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마 원영이가 먼저였다면 예전 독일 한 달 이후로 어딘가 많이 가지는 않았을 듯. 앞으로도 국내외 어디로 여행을 가든 휴양지에 자주 가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원영이가 말을 하기 전까지는.


2020_0919_16344400-01.jpeg


그래도 오랜만에 예쁜 가족사진도 찍고 완연한 가을 날씨를 만끽할 수 있었던 즐거운 여행이었다. 두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도 마음껏 지켜볼 수 있었고. 둘째 날 저녁 안면도의 꽃지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노을은 장관이었다. 감히 지금까지 태어나서 내가 본 노을 중에서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구름 없이 맑은 하늘과 수평선이 맞닿아있고, 빨갛고 둥그런 해가 바다로 그대로 떨어지는데 그 모습을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이런 장소와 날씨와 환상적인 조화가 어디 쉬운가. 역시 날씨 요정 유수인!

작가의 이전글가족여행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