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에서의 하룻밤
충청북도 보은에 집을 하루 빌려서 우리 대가족 18명이 함께 다녀왔다. 코로나로 인해 집이랑 근처에만 살다가 연휴가 생겼으니 모두 뜻을 모아 가족여행을 추진한 덕분이다. 나오자마자 일정 확정 짓고, 집 예약하고, 각자 나눠서 준비물 정하고... 이런 건 다들 참 잘한다. 충청북도 보은이라니, 보은으로 가족여행을 갈 줄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이게 다 코로나 덕분이다. 국내의 다양한 곳들을 가볼 수 있게 됐으니까. 서울에서 출발해서 보은까지 200킬로도 안 되는데 4시간이나 걸렸다. 그렇지만 그러려니 했다, 연휴니까 막히는 거지 뭐. 이것도 다 코로나 덕분이다. 그러려니 하고 여유를 가지게 됐으니까. 이렇게 놀러 가는 것만 해도 어딘지.
사실 하루 동안 딱히 한 건 없었다. 불안하니까 어디 가지는 않고, 그냥 독채에 우리 가족끼리만 모여서 거기서만 시간을 보낸 것뿐이다. 그래도 참 즐거웠다. 이야기도 하고, 여름 제철인 하모도 사 와서 샤브샤브로 해 먹고,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것을 보기도 하고. 충청북도 보은으로 가게 된 것도 결국 집 때문이다. 충북이 아니라 전혀 생뚱맞은 곳이어도 상관이 없었으리라.
일부러 마당이 넓고 조경도 잘 된 집을 빌렸는데 그 덕을 많이 봤다. 우리 가족의 아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초등학교 이상 4명: 1호집 2명, 3호집 2명
초등학교 미만 4명: 2호집 2명, 4호집 2명
큰 아이들 4명은 당연하게도(?) 자기들끼리 게임을 하면서 안에서 주로 놓고, 작은 아이들 4명은 밖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잘 펼쳐진 잔디밭에 본인들 몸만큼 큰 공들도 마침 있기에 더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재미있게 뛰어놀았는지! 저런 아이들도 좀 더 크면 큰 애들처럼 게임하고 자기들끼리 놀겠다고 하겠지? 뭐 기억을 더듬어보면 예전에 나도 그랬으니...
예전에도 가족여행을 몇 번 갔지만 언제나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디를 가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있을 때 모여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이 중요했다. 뭘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하루가 훌쩍 지나갔으니까. 가족이라 해도 요즘은 1년에 몇 번 못 보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여행 같은 기회가 더 소중하다. 코로나의 좋은 점이라면 덕분에 가족끼리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기회도 많아졌다는 점, 그리고 가족여행에서 중요한 점은 '여행'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는 점이다. 어릴 때는 늘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커가면서 점차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가족이 함께 모인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족여행의 가장 큰 의미인 것 같다. 기왕이면 좋은 곳, 새로운 곳에 가면 좋겠지만 어차피 그런 건 부차적인 거니까 크게 아쉬움을 두지는 않으리라.
모인 김에 가족사진도 찍고, 이번에는 아이들 8명끼리만도 사진을 따로 찍었다. 다들 어느새 이렇게 많이 컸니. 이번에 가장 뿌듯했던 사진이다. 가장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 신생아실 앞에서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 그 아이가 중학생이다. 나도 참 많이 늙었다는 소리지만 이런 걸 보면 나이 먹는 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리 엄마 아빠도 비슷한 생각을 하셨겠지. 어느새 나도 부모의 마음이 확실해졌나 보다.
수인이는 1살 어린 수현이만 만나면 정말 잘 논다. 수현이 동생 하율이까지 합세해서 3명이서 얼마나 즐겁게 놀던지. 이쁜이 삼총사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났다. 이제는 아빠 엄마를 찾지도 않는다. 언제나 껌딱지처럼 엄마한테만 붙어있는 녀석이 이제 인사도 잘하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도 거리낌 없이 부르고, 자기들끼리 나름 상황극도 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놀더라. 장롱에는 왜 자꾸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자기들끼리는 재미있는 놀이겠지. 덕분에 수인이는 전혀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아이고 이쁜 것.
하지만 제일 어린 원영이는 아주 극강의 엄마 껌딱지를 뽐냈다. 사람들을 보면 울기나 하고, 엄마에게 딱 붙어서 떨어지지도 않고, 즐겁게 놀다가도 찡찡대고. 24개월이 가까워지면서 아주 극단적으로 변했다. 해결책은 이 모든 것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수인이때 배워서 안다. 으이구 똥강아지 녀석. 언제 클래. 크는 건 아쉽지만 이럴 땐 빨리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결국 다음날 오전, 우리 가족 4명만 먼저 쫓기듯이 서울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양치질 후로 내내 기분이 안 좋던 원영이가 계속 울면서 찡찡대길래 살짝 혼냈더니 그때부터는 아주 수가 틀려서 계속 심하게 울더니 결국 토까지 해댔다. 덕분에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허겁지겁 집으로 올라왔다. 대신 차는 거의 안 막히고 2시간 조금 넘게만에 도착했으니 이걸 참 좋아해야 하는 건가. 휴, 얼른 커라 유원영. 아주 흑역사를 만드는구나. 잘했다 아주. 나중에 커서 보고 좀 부끄러워 하렴.
이렇게 즐거운 하루 동안의 여행을 다녀온 뒤로 코로나 시국이 더 심해져서 이제는 집 밖에조차 나가기 꺼려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미 8개월 이상을 스트레스받으며 살았는데 최악의 상황으로 다시 치닫고 있는 이 현상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언제나 끝나서 우리 가족이 더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악몽 같은 2020년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