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바이크와 콩순이
코로나19 이후 새 시대의 첫 여행
코로나19는 모든 생활패턴을 바꿔놓았다. 공식적으로 종식된다 하더라도 해외여행을 몇 년 안에 갈 수는 있을까? 이전에는 국내외를 열심히 다녔다면, 앞으로는 국내만 열심히 다니는 새 시대가 올 것 같다. 완전 9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수인이 역시 여행이 고픈지 매번 공항 가는 놀이, 가짜로 파리 가는 놀이 등을 한다.
"공항 도착했으니까 나 먼저 짐 검사할게."
"내가 비행기 조종사니까 아빠가 손님 해. 안전벨트 매야지"
"바이러스 끝나면 우리 어디 갈까?"
옥토넛 탐험 보고 노래를 수인이 여행 버전으로 개사해서 부르기도 한다.
"수인이가 세부에 갔죠. (맞아 맞아 맞아) 수영장에서 수영도 했죠. (맞아 맞아 맞아) 수인이는 세부에 가서 (탐험 보고 탐험 보고)..."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상황이 안타깝기도 해서 오랜만에 가까운 곳으로 하루 여행을 다녀왔다. 가까운 양평에 가서 레일바이크를 타고, 밥을 먹고, 수인이가 좋아하는 바게트도 사 먹고, 콩순이 룸에 가서 신나게 놀고 오는 하루 코스. 블룸비스타 호텔에 있는 콩순이 룸은 옛날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늘 예약이 꽉 차 있어서 못 갔었는데 코로나19 덕분에 그래도 콩순이 룸도 갈 수 있었으니,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해본다.
오랜만에 네 가족 모두 여행을 가게 되니 신이 났다. 마침 날씨도 매우 쾌적하고 딱 좋았다. 많이 덥지도 않고, 많이 춥지도 않은 전형적인 봄 날씨랄까. 이런 날씨에 집에서만 있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고작해야 놀이터니.
양평 레일바이크는 평소에 사람이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 그 시간대에 우리 가족 한 팀만 탔다. 아무도 없으니 마스크고 뭐고 쓸 일도 없고 좋긴 하더라. 주변 풍경도 멋있고. 무엇보다 수인이랑 원영이가 한껏 신나서 그 시간을 즐겼으니 그걸로 된 거다. 물론 나 혼자서 거의 다 돌리느라 아빠는 꽤 힘들었지만 그 정도 고생쯤이야. 기분이 좋으니 금방 잊히더라.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콩순이 룸.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콩순이 룸에 있는 층에 도착할 때까지도 수인이에게는 비밀로 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수인이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콩순이!!!!!"
한 층에 콩순이, 시크릿 쥬쥬, 또봇 등 캐릭터룸이 모여있는데 우리가 선택한 건 콩순이. 사실 수인이랑 원영이가 콩순이 캐릭터를 그렇게 막 좋아하거나 그러진 않지만 방 안에 미끄럼틀이 있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다른 캐릭터룸에는 미끄럼틀이 없다. 우리 딸은 미끄럼틀 성애자라 모든 종류의 미끄럼틀을 가리지 않고 다 열심히 탄다. 그런데 집 안에 미끄럼틀이 있으니 얼마나 신났을까. 이 코로나 시국에. 다른 사람 신경 쓸 것도 없이 열심히, 정말 열심히 놀았다.
콩순이 룸은 캐릭터나 미끄럼틀을 제외하더라도 곳곳에 다 안전하게 가드가 되어있고, 방도 꽤 넓었고, 아이들이 바닥에서 잘 수 있는 곳들도 잘 되어있어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콩순이 룸의 침대와 미끄럼틀. 저 미끄럼틀이 핵심이다.
원영이는 이제 막 걷기 시작했다. 17개월을 지나 18개월이 다 돼서야 비로소 걷는다. 누나와 마찬가지로 모든 발달이 느린 아이. 심지어 걷는 것은 누나보다도 조금 더 느렸고, 그마저도 뒤뚱뒤뚱 넘어질 듯 말 듯 걷는다. 그런 녀석이 콩순이 룸에 와서는 정말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놀았다. 미끄럼틀도 못 타면서 미끄럼틀에 올라가고, 그 아래 구멍에도 계속해서 들어가고.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자주 웃기도 하고. 기특한 것.
집에 있을 때는 아무리 여러 가지를 한다 해도 결국엔 티비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여행을 오면 활동을 한다. 아이들의 표정도 확실히 다르다. 이래서 수인이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열심히 여행을 가고, 원영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열심히 다녔던 건데. 그래 여행은 이렇게나 즐거운 것이었는데. 그 즐거움을 한동안 많이 못 누리게 해 줘서 미안하다 아이들아. 이런 세상이어서.
콩순이 룸의 단점이라면, 아빠 엄마가 엄청나게 힘들다는 거? 수인이는 걱정이 없는데 원영이는 올라가기만 하면 둘 중에 한 명은 반드시 따라서 올라가야 했다. 몸은 안 따라주는 녀석이 어쩜 그렇게 활발하게 돌아다니니. 너무 힘들어서 만약에 또 가라고 하면 주저할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아이들이 즐거웠으니 그걸로 됐다.
이 날따라 양평을 지나는 한강이 참 아름다웠다. 반짝반짝 빛나기도 하고 물빛도 살짝 옥색인 것이 과장 조금 보태면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코로나는 싫지만 코로나 덕분에 더 쾌적한 자연을 만날 수 있게 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전에는 그렇게 깨끗한 공기와 자연을 바랐는데, 이제는 이전만큼 조금 덜 깨끗하더라도 걱정 없이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범한 일상이 이렇게나 소중한 것이었을 줄이야. 많은 것들을 새롭게 배우고 있다.
양평에 다녀온 후로 수인이는 갑자기 콩순이 노래도 듣더니, 콩순이 룸에 또 가자고 한다. 아빠 엄마도 몸은 힘들었지만 참 재미있었단다. 오랜만에 가족사진도 찍었고. 힘들더라고 기회가 될 때마다 열심히 여행 다니자 이전처럼. 얼른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콩순이 룸의 최대 수혜자 유수인 방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 콩순이도 함께 가족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