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을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겨울, 그러니까 한국 나이로 13살이 끝나고 14살이 막 되던 때, 전남 광양에서부터 서울까지 혼자서 놀러를 갔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하게 지내다가 분당으로 이사를 간 친구 2명을 만나러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아이를 낳아보니 13~14살이면 혼자서 여행을 보내기에 상당히 무서운 나이인데 지금 돌아보면 그걸 과감하게 허락해 줬던 우리 엄마 아빠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나는 못 할 것 같다.)
버스를 타고 동서울 터미널에 내린 후 성북구 석관동으로 이동해서 거기 살던 삼촌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삼촌이 분당까지 가는 지하철을 태워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는 분당선이 수서에서 끝나던 시절. 1호선을 타고 석계역에서 종로3가역까지 왔다가, 종로3가역에서 3호선을 타고 수서역까지 갔다가, 수서역부터는 혼자서 분당선을 타고 미금역까지 갔다. 그리고 친구 집에서 이틀 정도 보냈나? 신나게 놀다가 다시 거꾸로 타고 성북구의 작은 아빠 집으로 갔다. 중간에 어린 시절 나의 꿈의 장소였던 '용산 전자상가'도 들러서 혼자서 열심히 배회하기도 했다.
전혀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말 즐거웠다.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느낌, 자유로운 느낌, 내가 하고 싶은 걸 뭐든 다 할 수 있는 그런 느낌. 마치 내가 인디애나 존스가 된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 내 꿈이 인디애나 존스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전혀 몰랐으니 그렇게 용감했을 거다. 아마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세상이었을 텐데. 그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여행이란 참 좋은 것이구나!
아쉬운 건 남아있는 게 거의 없다는 거다. 지금처럼 디지털카메라나 휴대폰 카메라가 없던 시절이었고, 초등학생이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필름을 바꿔 끼우면서 사진을 찍었을 리도 없다. 그때 그 친구들과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그렇게 멀리서까지 와놓고선 나올 때는 싸우고 나왔으니. 참 어렸지. 지금이라도 연락이 된다면 그땐 미안했다고,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다고 말할 텐데. 보고 싶다 이규선, 김영신.
딱 하나 남은 것이 바로 그때 구입했던 앨범 <Space Jam OST>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노래가 전설적인 R&B 노래인 'I believe I can fly'다. 저 CD를 왜 샀을까? 우리 집에 CD 플레이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농구를 엄청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영화를 본 것도 아니고, 당연히 R&B가 뭔지도 몰랐고, R.Kelly는 더더욱 몰랐다. 근데 왜 샀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냥 어쩌다가 생전 처음으로 CD라는 것을 구입했고, 그걸 집에 와서 컴퓨터 CD롬에 넣어서 듣다가, '뭐지? 이 노래는 뭔데 왜 이렇게 좋지?'라고 느껴서 수도 없이 들었던 노래가 바로 'I believe I can fly'였다. 하도 듣고 따라 하다 보니 발음, 숨소리까지 다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인생 첫 여행, 인생 첫 CD 구입, 근데 제목은 날 수 있다! 운명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너는 평생 세계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며 살 것이라는 그런 계시랄까.
지금도 가끔씩 이 CD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그 여행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겠지. 여러모로 참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가족 모두가 답답해하고 있다. 특히 여행가가 꿈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우리 딸은 더욱 답답한가 보다. 오죽하면 방에 걸려있는 하고 싶은 말 나무판에 이렇게 적어놨을까. "여행 가고 싶어요." 우리 딸을 그렇게 키운 것이 나고,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 바로 이 첫 서울 여행이니, 작은 사건 하나의 나비효과가 이렇게나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