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가족여행 한 번 한 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했던 게임. 그 게임이 너무 좋았어... 아무튼 그랬다. 어려서부터 가족여행 한번 가보는 것이 작은 소원이었는데 그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와 엄마 아빠와 누나 셋과 나까지 총 7명. 그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 어디 쉬운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을뿐더러 설사 거금을 쓴다 하더라도 그것을 굳이 여행을 위해 쓴다는 것이 절대 쉽지 않았으리라. 물론 이런 것도 나이가 들고 돈을 벌게 된 후에 알게 된 것이지 그 전에는 그저 불만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가족여행이라는 것을 간 것이 2006년, 내가 대학생이었던 때였다. 누나 2명은 이미 결혼을 해서 집에서 나갔고, 할머니는 집에 계시고, 엄마 아빠와 둘째 누나와 나까지 총 4명이 함께 갔던 첫 가족여행이었다. 그리고 내 첫 자유여행이기도 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누나 하나 믿고 일본 규슈의 후쿠오카, 유후인, 구로카와 온천, 아소산 등으로 갔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처음인데 기차/버스 등 대중교통부터 숙소 예약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 오히려 의외였달까. 자유여행이다 보니 일정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엄마 아빠가 그렇게 순수하게 웃으면서 만족하시는 걸 정말 처음 봤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니 해외로 나와버리면 그야말로 한국에서의 모든 일상과 완전히 단절되었고, 덕분에 온전히 여행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상의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면 순수한 즐거움만 남게 되니까. 여행, 특히 해외여행의 매력이 바로 그것 아닐까. (물론 요즘은 스마트폰 때문에 그런 것이 거의 다 사라졌지만..)
즐거웠던 첫 경험 덕분에 그 뒤로 가족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다. 성장 과정에서 못했던 한을 풀기라도 하듯이 조금의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모조리 다 여행에 투자했던 것 같다. 남들은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가면 많이 싸운다고도 하던데 우리 엄마 아빠가 최대한 잘 맞춰주셔서 그런지 한 번도 그런 적 없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 했던 가족 해외여행은 내 아이들과 누나네 아이들까지 다 해서 18명이 함께 갔던 베트남 다낭 여행이었다. 아예 호스텔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그곳을 우리 가족이 다 썼고, 이동 한번 하려면 그랩으로 차를 4대씩 불러야 했다. 대가족이 가려면 이 정도 스케일은 돼야 한다. (다낭 여행 이야기는 여기에)
2006년 일본 아소산 / 2009년 대만 예류 / 2010년 제주도
2010년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 2014년 사이판 / 2017년 하와이 오아후섬
2018년 일본 기타큐슈 / 2018년 일본 도쿄 / 2019년 베트남 다낭
그리고 그 여행이 아마도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마지막 해외여행이지 않을까 싶다. 아빠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셔서 이제는 해외여행을 함께 가시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늙게 마련이라 이런 날이 언젠가 올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예상보다 더 빨리 왔다. 더 늦기 전에 여행을 한 번이라도 더 갈 걸. 남들은 그동안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많이 가서 좋겠다며 대부분 부러워하지만 아무리 과거에 많은 여행을 갔다 하더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아쉬움은 크다. 즐거움을 알기에 오히려 안타까움이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더 늦기 전에 딱 한 번만 더 다녀올 걸.
2010년에 함께 유럽여행을 갔을 때 마지막 날에 뮌헨의 호프브로이하우스에 들렀던 적이 있다. 마침 그날이 엄마 아빠와 누나가 먼저 귀국하는 날이라 과음을 하고 비행기를 타면 안 될 것 같기에 네 명이서 1리터 맥주를 2잔만 시켜서 먹었다. 그때 그 분위기와 맥주가 정말 좋으셨던지 그 뒤로 엄마 아빠는 가끔 이런 소리를 하셨다.
"뮌헨에서 맥주를 조금 더 사주지 딱 1잔만 사줘서 너무 아쉽더라."
"아니, 비행기를 타야 하니까 그렇지. 그리고 1리터 2잔이니 500 1잔씩 먹은 거구먼 뭐."
"그래도 1잔만 더 사주지 그랬냐."
"다시 가면 2잔이 아니라 3잔, 4잔 더 사드릴 테니 뮌헨 갑시다 그럼."
아마도 이 말은 지키기 어려울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뮌헨 한번 더 갈 걸. 그 후로 10년의 시간이 있었는데.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2011년 10월에 뉴질랜드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반대를 하셨다. 뭐가 싫으셨는지 아빠는 절대 못 간다고, 결국 아빠 대신에 난데없이 외삼촌과 이모가 함께 가게 되었다. 그때 할머니는 갑자기 왜 그러셨을까. (그리고 한 달 뒤에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건강하시던 분이 정말 갑자기. 뭔가 예감을 하셨다기엔 너무 건강하셨기 때문에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무튼 할머니가 왜 그러셨는지는 미스터리다.)
그렇게 해서 예상외의 멤버로 떠나서 마주했던 뉴질랜드는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낮에는 구경을 하고 저녁에는 슈퍼에서 먹거리를 사 와서 숙소에서 직접 조리를 해서 와인 또는 맥주와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나는 다 먹은 후 금방 옆으로 비켜서 다른 방에서 간혹 들리는 말들만 듣곤 했는데, 남편이나 아이들이 아닌 형제자매와 함께 하는 엄마의 모습이 새롭기도 했다. 그 여행이 얼마나 좋으셨는지 나중에 엄마에게 지금까지 다녔던 곳 중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여쭤보면 항상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곳이 뉴질랜드였다. 그러면서 아빠가 함께 못 간 것이 늘 아쉽다고도 하셨다.
그래서 언젠가 뉴질랜드를 아빠 모시고 꼭 다시 가려고 했는데. 아마도 이제는 어려울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다른 곳 말고 뉴질랜드에 갈 걸. 이것도 10년의 시간이 있었는데.
아빠 대신 엄마, 외삼촌, 이모와 함께 갔던 뉴질랜드
아빠 건강이 다시 좋아지셔서 미뤄놨던 여행을 모두 다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딱 1년만 기회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뮌헨과 뉴질랜드부터 갈 텐데. 억만금을 가지더라도 결코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시간이라는 당연한 말, 그건 수많은 당연한 말들이 그렇듯이 당장 맞닥뜨리기 전에는 절대 체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 뒤늦은 후회만 따라온다.
왜 더 늦기 전에 조금 더 많이 떠나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을 해도 바뀌는 건 없다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 생각이 자꾸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