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 다 같이 유럽 여행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 안식휴가라는 제도가 있었다. 3년을 근속하면 1개월 휴가를 쓸 수 있는, 나처럼 방랑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제도보다도 멋진 꿀 같은 제도였다. 그런 제도를 처음 고안한 사람에게 이 자리를 빌려 축복을!
그리고 나에게 두 번째 안식휴가의 기회가 왔다. 첫 번째에는 10개월이 갓 지난 첫째를 데리고 독일에 한 달 갔었는데, 이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가 둘이 됐다. 안식휴가를 쓸 수 있는 시기가 왔지만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여행을 갈 수 없기에 미루고 미뤄왔는데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는 상황이 됐고, 용감하게 저질렀다. 첫째는 만 5세가 조금 안 된 나이, 둘째는 7개월이 갓 지난 상황. 원래 무슨 일이든 처음이 가장 어렵다. 첫 여행보다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두 번째 결정은 예상보다 쉬웠다. 뭐 큰 일이야 있겠어.
용감한 새가 벌레를 낚는 법이니까.
딱 2주를 계획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들어가서 거기서 1주일, 이후 TGV를 타고 파리로 이동해서 파리에서 1주일, 파리에서 나와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계획은 딱 거기까지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면서 무언가 계획을 더 짜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냥 그때그때 상황에 맡기고, 아이들의 컨디션에 맡기는 게 마음 편하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뭐 할지 고민하고, 날씨가 너무 더우면 느지막이 숙소에서 나가 쇼핑몰 가서 장이나 잠깐 보고 오고, 미술관이나 유명 관광지를 많이 가기보다는 동네 놀이터와 공원에 많이 가고, 밥도 가급적이면 집에서 해 먹고. 이렇게 한국에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지만 모든 것이 즐거웠다. 그게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일상에서 떠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새롭고 매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좋았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집 앞 빵집에 가서 갓 나온 바게뜨를 사 와서 뜯어먹었던 순간
시차적 응이 안 돼서 새벽에 무작정 집을 나와 구엘공원에 갔는데 덕분에 공짜로 사람도 많이 없이 여유롭게 즐기던 순간
날씨가 너무 덥고 힘들어서 쇼핑몰 내 장난감 가게에 가서 이런저런 구경하며 아이들과 낄낄대던 순간
산꼭대기에 있는 놀이동산에 가서 예상외로 엄청난 풍경에 멍해졌던 순간
우연히 발견한 숙소 근처 놀이터에 매일 가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던 순간
아이들이 모두 일찍 잔 날은 조용히 창밖을 보던 순간
그 어떤 여행지보다 이 모든 사소한 순간들이 그립다.
첫째도 이 여행부터는 기억을 한다. 모든 건 아니지만 많이 기억에 남는지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한다. 둘째는 당연하게도 전혀 기억이 없다. 그래도 기억하든 안 하든 아이들 마음속에도 저런 순간들이 아름답게 남아있겠지. 그런 것들이 그래도 앞으로의 삶에 조금은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이때가 2019년 여름이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인 2020년 초에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
앞으로 언제 이런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있을까. 부부 모두는 물론 아이들도 시간이 가능하고, 실행하기에 금전적으로도 무리가 없는 그런 시간. 살다 보면 그런 딱 맞는 시기는 정말 드물다. 그래서 우리도 더 과감하게 도전했던 것 같다. 물론 결과가 좋기에 이렇게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코의 <Artist>라는 노래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가사가 나온다.
미루지 마 즐거움을, 그건 저축이 불가능
Somebody says 담에 커서, 그 커서가 바로 지금
용감해서 다행이야.
* 혹시 전체 유럽 여행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