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前) 스타트업 대표의 맥도날드 출근기
삶은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을 공평하게 배달한다.
하지만 그 시간의 가치가 매겨지는 방식은 때로 잔인할 만큼 상대적이다.
시스템은 노동의 가치를 ‘시급’이라는 숫자로 가두고, 세상은 그가 가진 ‘권한’의 크기로 시간의 무게를 잰다. 나는 지금 그 극과 극의 시간표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한때 나의 시간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나를 쫓아왔다.
수십 명의 생계가 달린 스타트업을 운영하던 전직 대표로서,
나의 1분은 투자자의 신뢰를 증명하거나
회사의 운명이 걸린 계약을 성사시켜야 하는 치열한 전장이었다.
중압감 섞인 타인의 기대를 채우는 것이 나의 성공이라 착각하며,
내 영혼이 깎여 나가는 줄도 모르고 속도를 높였다.
그때의 5분은 일론 머스크의 시간처럼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지만,
정작 그 시간을 운전하는 손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성공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관성에 그저 끌려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내가 지금은 앞치마를 두르고 맥도날드 카운터 뒤에 서 있다.
시급 10,300원. 시스템이 정의한 나의 5분은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조각일지 모른다.
대표 시절, 메일 한 통이나 회의 한 번으로 결정되던 가치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숫자다.
하지만 참 웃기게도,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다.
전에는 수만 명의 데이터 뒤에 숨은 사람을 보려 애썼지만,
지금은 내 눈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의 배고픔에 집중한다.
나의 5분은 이제야 비로소 비대면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손끝에 닿는 실체로 돌아왔다. 갓 튀겨진 감자튀김의 온기를 확인하고 손님이 머물다 간 자리를 닦는 이 사소한 행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삶의 운전대를 온전히 쥐고 있음을 느낀다.
중요한 것은 시계바늘의 속도가 아니라, 그 시간을 채우는 내 영혼의 밀도였다.
일론 머스크의 5분이 세상을 바꾸는 방향을 향해 있다면,
나의 5분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을 향해 있다.
설령 그 시간이 대단한 성취 없이 의식적으로 흘려보내는 찰나일지라도,
내가 주체가 되어 선택한 시간이라면 그것은 이미 충분한 고결함을 갖는다.
가치에는 크고 작음이 있는 게 아니라,
오직 ‘나다운 방향’으로 흐르고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 안의 관성은 언제든 나를 다시 타인의 박수 소리가 들리는
폭풍 같은 밀도 속으로 끌려가길 소망하며 들어갈지 모른다.
혹은 이 유유자적한 안정을 영영 즐기게 될지도 모른다. 미래의 내가 어느 지점에 서 있을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선택과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타인의 기대를 채우는 치열함이 아니라,
나의 영혼을 채우는 정직한 몰입 끝에는
어떤 방향이든 후회 없는 ‘결’이 남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