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단골이 앞치마를 두른 이유

노동의 마지막 기회

by 다연

나에게 맥도날드는 30년 지기 친구 같은 공간이다.

중고등 학교 시절, 친구들과 좁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쟁반 가득 후렌치 후라이를 부어놓고 깔깔거리던 그 짭조름한 기억.


20대 시절, 낯선 미국 땅을 배낭 하나 메고 누비며

식비를 아끼기 위해 점심과 저녁을 모두 빅맥으로 해결하던

그 고단하고도 찬란했던 추억.


그리고 어느덧 엄마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다시 그 쟁반 위에 후렌치 후라이를 부어놓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 삶의 중요한 마디마다 노란색 M 로고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세상의 많은 식당이 유행처럼 생겼다 사라지고,

내가 경영하던 회사의 지표들이 롤러코스터처럼 춤을 출 때도 이곳만은 변하지 않았다.


내가 오늘 먹는 빅맥이 30년 후에도

이 자리에서 이 맛 그대로일 것 같다는 기분 좋은 확신.

그 변하지 않는 존재감은 나에게 단순한 음식을 넘어선 깊은 신뢰를 주었다.

하지만 그 견고한 공간조차 최근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키오스크와 자동화 기계들로 채워지는 매장을 보며

나는 묘한 궁금증과 서늘한 예감을 동시에 느꼈다.


'30년 후에도 나는 이 후렌치 후라이를 먹고 있겠지.

그런데 그때도 지금처럼 사람이 직접 종이 카툰에 감자를 담아줄까?'

모든 것이 기계로 대체되는 시대가 오면,

인간이 직접 몸을 부딪쳐 무언가를 일궈내는 '노동의 기회' 자체가 희귀한 유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머지않아 직접 경험해 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가치이자 자산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스타트업의 대표로서 성공 가도에 매달려 치열하게 살았지만,

그 시절이 나에게 남긴 것은 영광만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소중한 가족 여행조차 노트북이 꼭 함께여야 했던 강박적인 삶.

내 손은 핸들이 아닌 자판 위에 묶여 있었고,

내 마음은 늘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속에 저당 잡혀 있었다.

변하지 않는 빅맥의 평화로움과는 대조적으로, 나의 일상은 늘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기계가 완전히 대신하기 전에, 이 안식처의 일부가 되어야겠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맥도날드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지워져 가는 인간의 흔적을 내 몸으로 직접 새겨 넣고 싶다는 갈망,

그리고 이제는 저 무거운 노트북 대신 정직한 노동의 도구를 손에 쥐고 싶다는 본능적인 이끌림이었다.


성공의 관성을 끊어내고 지원 버튼을 누른 순간, 묘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이제 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관찰자가 아니라, 시스템 속에서 살아 숨 쉬는 '크루'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비장한 각오로 첫 출근을 했다.

노트북 대신 앞치마를 챙기며,

인류 노동의 마지막 영토를 사수하겠다는 숭고한 사명감까지 품고서 말이다.


하지만 매장 주방으로 들어선 지 단 5분 만에 나는 깨달았다.

나의 이 철학적이고 숭고한 결심은, 이곳의 치열한 실전 앞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하지만 이곳은 철학이 머물 틈을 주지 않는 속도의 전장이었다.

눈으로 인지하는 순간 이미 손은 움직이고 있어야 했다.

0.1초의 망설임은 곧바로 엉뚱한 메뉴로 이어졌고,

그 실수는 곧 시스템의 균열이 되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어린 크루들의 매서운 눈초리와 마주한 순간,

나는 전직 대표도, 집안일 베테랑도 아닌 그저 ‘느려 터진 신입 아줌마’일 뿐이었다.


영화 <타짜>의 대사처럼, 맥도날드는 눈보다 손이 빨라야 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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