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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만쥬 Dec 07. 2020

4일차 잘츠부르크의 첫인상

2020년 2월 17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새벽 네시에 체크인해준 고마운 호텔


새벽 4시 5분에 잘츠부르크 중앙역에 도착했다. 도착할 무렵 열차 칸으로 갖다 준 조식은 거의 먹지 못하고 부랴부랴 챙겨서 나왔는데, 잘츠부르크에 머무는 동안 두고두고 일용할 양식이 되어줬다. 계속 흔들리는 열차에서 자서 그런지 살짝 머리가 아팠는데,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맞으니까 괜찮아졌다. 생각보다 야간열차에서 잔다는 것은 엄청 피곤한 일이었다. 계속 흔들리는 침대에 잠에서 깨기도 하고, 내릴 때쯤이면 이 역이 맞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씻지도 못해 꼴이 말이 아니어서, 제발 얼리 체크인이 가능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호텔로 향했다. 기차역에서 가까운 호텔을 예약해두긴 했는데, 얼리체크인이 되는지는 미리 확인하지 못해서 불안했다. 캄캄한 새벽, 낯설고 조금은 걱정되는 마음에 캐리어를 꼭 쥐고 씩씩한 걸음으로 호텔로 향했다. 여기가 맞나..? 호텔은 잠겨 있었다. 초인종을 눌렀는데 아무 소식이 없고. 불안한 마음에 두 번 더 누르자 잠시 후 인상 좋은 할아버지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왔다. 초인종은 한 번만 눌러도 충분하다며 인사를 건네 조금 미안했다. 얼리 체크인이 가능하겠냐 물으니 세상에 추가 요금 없이 체크인을 해줬다! 정신없어서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이 정도면 거의 하루 숙박을 더 한 셈이 아닌가 싶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수동으로 문을 여닫는 오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니, 널찍하고 고풍스러운 방이 반겨주었다. 19세기부터 이어진 역사를 가진 오래된 호텔, 자부심을 갖고 3대째 이 호텔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른 새벽에도 싫은 내색 없이 체크인 해준 친절한 할아버지 사장님. 오래오래 남을 잘츠부르크의 첫인상은 이 호텔로 기억될 것 같다.




카페에서 브런치 즐기기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서 외출 준비를 했다. 잘츠부르크에 왔으니 모닝송은 모차르트의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으로 산뜻하게 시작! 야간열차에서 준 조식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오늘 하루 뭐할지 알아보았다. 첫 일정은 카페 Bazar에서 브런치 즐기기. 커피와 브런치를 즐기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로 카페가 매우 북적거렸다. 잘츠부르크 강변에 위치한 테라스에서 브런치를 즐기고 싶었는데, 점심 준비로 테라스 이용이 제한되어서 어쩔 수 없이 안에 앉았다. 한쪽에는 나무 철을 한 오늘의 신문들이 걸려있고,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신사들은 신문을 읽고 있었다.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눈이 마주치면 친절하게 웃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아직은 낯선 이곳도 왠지 따뜻한 곳일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약간 어색하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앉아있으려 노력하는, 그렇지만 어딘가 들떠 보이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영락없는 여행자로 보였겠지. 잘츠부르크 여행을 시작한다.



저 테라스에 앉고 싶었는데





첫날은 그저 발 닿는 대로


잘츠부르크에는 특별히 가보고 싶은 곳이 없었다. 특별히 클래식이나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잘츠부르크라는 도시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많지 않아서 그저 있는 동안 유명한 곳 몇 군데만 둘러볼 생각이다. 마침 도보로 이동 가능한 곳에 유명한 명소들이 몰려있기에, 오늘은 발 닿는 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브런치를 먹고 걷다가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미라벨 정원. 여기가 정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겨울의 정원은 이렇게 황폐한 거구나. 걷다가 모차르트 생가도 보았는데, 슬쩍 구경만 해보았다.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구경하다가 모차르트 광장에서 잘츠부르크 카드를 구매하고 엄마랑 전화를 했다. 원래 점심은 패스하려고 했는데 '밥은 잘 먹고 다니냐'는 엄마의 걱정에 점심을 챙겨 먹기로 했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간판들이 가득한 게트라이데 거리에서 슈니첼 런치 할인이라는 입간판을 보고 한 식당에 들어갔다. 런치 할인 메뉴라길래 큰 기대 없이 시켰는데 정말 맛있었다! 슈니첼은 얇게 튀긴 돈가스 같은데 라즈베리 소스를 곁들이는 게 색달랐고, 직원이 추천해준 맥주도 아주 내 스타일이었다. 슈니첼 도전도 성공!




잘츠부르크 성에서 해가 질 때까지


밥 든든히 먹고 잘츠부르크 대성당과 성 페터 수도원 묘원까지 구경하면서 잘츠부르크 성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잘츠부르크 성에서 일몰을 보려고 했는데, 푸니쿨라를 타고 갔더니 세시 반. 너무 일찍 올라와버렸다. 해가 질 때까지 버티기 시작. 요새랑 성 안의 작은 마을도 구경하고, 사람들 사진도 찍어주고, 한국인 만나면 얘기도 나누고, 벤치에서 멍 때리기도 하면서 두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기다린 보람도 없이 흐린 날씨 탓에 멋진 일몰은 보지 못하고, 하늘이 천천히 어두워질 무렵 다시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왔다. 찬 바람맞으며 너무 오래 기다린 탓인지 몸이 으슬으슬하고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았다. 수도원 양조장에 가고 싶은데 감기 기운도 있고, 같이 갈 사람도 없어서 조금 고민이 되었다. 버스 타기 전까지 동행이 구해지면 양조장에 가고, 안 구해지면 숙소로 가야지 생각하고 유랑에 글을 올렸다. 잠시 후 쪽지가 왔다. 묀히산 현대미술관에서 야경을 보려고 기다리는 중인데, 야경을 보고 양조장에 갈 계획이라는 거다. 묀히산 현대미술관에서 보는 야경이 그렇게 멋지다던데, 오늘 월요일이라 못 가는 줄 알았더니 전망대는 갈 수 있는 모양이다. 잘츠부르크 카드가 있으면 전망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서, 잘됐다 싶어 나도 같이 야경을 보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른 한국인 친구를 만나 셋이서 함께 수도원 양조장에 갔다. 나보다 훨씬 어린 귀여운 친구들이었는데, 좋은 친구들을 만난 덕에 즐겁게 다녀왔다. 



묀히산 현대미술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잘츠부르크의 야경




아쉬웠던 하루의 완벽한 마무리

 

오늘 왠지 2% 아쉬웠던 점들이 이러려고 그랬나 싶을 정도로 마지막엔 모든 것이 완벽했던 하루다. 묀히산 미술관에서 야경 보는 건 포기했었는데, 동행 덕분에 멋진 야경도 보고 잘츠부르크 카드도 알차게 쓸 수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 비가 쏟아졌지만, 다행히도 우산을 챙겨 온 친구 덕분에 옹기종기 우산을 나눠 쓰고 비 오는 밤거리를 걸었다. 이 친구들 못 만났으면 근사한 야경이나 양조장 맥주는커녕 비까지 맞았을 뻔! 즐겁게 맥주 마시고 반신욕까지 하고 나니 감기 기운도 싹 가셨다. 노곤 노곤하게 푹 쉬면서 잘츠부르크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한다. 야간열차 타고 와서도 참 알차게 다녔다~




2020. 2. 14 ~ 3. 11 

퇴사 후 떠난 27일간의 유럽여행 일기를 꺼내 읽어본다. 

복잡한 마음을 가득 품고 간 '퇴사 후' 여행이었는데, 다시 꺼내 읽어보니 다신 없을 '코로나 이전' 여행기로 다가오는 27일간의 유럽 여행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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