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예 Nov 03. 2020

1400만 원으로 14개월 세계일주,
후기 (1)

44개국의 44색 이야기

2016.12.07 ~ 2018.02.08 : 세계여행이 가르쳐 준 것


꿈만 많고 게으른 휴학생을 바꿔놓은 건 엄마의 잔소리가 아닌 세계여행이었다. 


14개월 내내 한 푼 한 푼 지출 내역을 꼼꼼히 기록하고, 속옷이 부족하지 않도록 틈날 때마다 손빨래를 하고, 부엌에 제 발로 들어가 이것저것 요리를 하는 그런 부지런한 모습은, 분명 예전의 이다예가 본다면 어리둥절해할 만한 것. 머리가 어깨 아래로 길어지고, 옷 색이 칙칙하게 바래고, 피부 톤이 점점 어두워지는 동안, 꾸준히 지켜온 여행 습관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1년 2개월 동안 1400만 원으로 44개국을 여행하며 느낀 점이라면 셀 수도 없이 많겠지만, 굳이 그 모든 것을 포괄할 단어를 찾는다면 '다양성' 아닐까. 나와는 다른 생각, 나와는 다른 문화, 나와는 다른 환경... 그로 인해 세계에 공존하는 수십억 가지 색깔의 삶. 그 다양한 이야기가 끝없이 샘솟아 나오기에 이 여행에 중독되었다.



14개월 세계일주 개요

총 기간 429일 (2016.12.07 ~ 2018.02.08)

총 비용 1400만 원

방문 국가 44개국

방문 도시 160개 도시

카우치서핑 82회

에어비엔비 15회

호스텔 57회

호텔 6회

노숙 7회

가방 무게 12kg


도시 간 이동

비행기 26회 (최장 23시간)

배 9회 (최장 40시간)

기차 32회 (최장 71시간)

버스 82회 (최장 32시간)

자동차 14회



1. 필리핀 - 홀로서기


“하하, 안녕, 아, 안녕.”


필리핀 현지인들만 빼곡히 들어찬 길거리에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어색하게 눈인사만 건네던 나는, 그곳이 무서웠다. 사실은 정말 무서웠다.


세계여행의 첫 도시 세부에서 나는 사람들이 전부 향하는 바다로 가지 않았다. 대신 세부시티의 비인기 관광지를 둘러보고 싶었다. 필리핀은 위험하다고 계속 겁을 주던 외삼촌을 뒤로하고 무작정 우버를 잡아 나왔는데, 다 왔다며 기사가 나를 덩그러니 내려준 곳은 흙먼지가 날리는, 외국인은 단 한 명도 없는 그런 거리였다.


그곳에 우두커니 서서, 피식피식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현지인들에게 어색한 미소만 날렸다. 간간이 들려오는 어린아이들의 헬로우에 애써 태연한 척 응답하면서. 횡단보도란 게 존재하지 않는 위험천만해 보이는 길을 눈치껏 건너는 현지인들을 보며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아, 물론 미친 더위에 진짜 땀도 함께.


혼자 여행은 이미 여러 번 해보았으나, 돌이켜 보면 미국이나 유럽 등 대부분 나에게 익숙했던 곳들만 다녔던 것 같다. 그런 내게 동남아의 낯선 분위기와 숨 막히는 시선은 상상 이상이었다. 자신감 넘치게 혼자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집을 박차고 나올 때와는 정반대로.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현지인마냥 자연스럽게 차를 무시하며 도로를 건넜다. 겉으로 보면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박물관에 발을 딛자, 매표소 직원이 새하얀 이를 환하게 드러내며 반겼다.


“어디서 왔어? 여기 방명록에 이름이랑 출신지 적고, 편하게 안에 둘러보면 돼! 아, 내가 사진도 찍어줄까?”


필리핀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내 사진을 찍어주는 걸 참 좋아했다. 개인 사진작가마냥 쪼르르 따라다니며 온갖 포즈를 제안해주곤 했다. 낯선 벽을 허무는 그들만의 방식일까. 박물관에 이어 방문한 동상 앞의 할아버지도, 나중엔 너무 친해져서 온종일 세부를 관광시켜주던 우버 기사 아리스톤도. 덕분에 혼자 나온 거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휴대폰에 사진이 수북하게 남아버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속은 벌벌 떨며 시작했던 그 날 하루는, 아리스톤과 함박웃음을 머금고 셀카를 찍으며 마무리되었다. 첫 방문은 당연히 두렵고 어렵다. 하지만 조금의 교류가 생긴 후부터, 그곳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필리핀 - 세부시티 포트리스



2. 대만 - 카우치서핑의 매력 속으로


“네게 소개해 주고 싶은 대만의 전통 음식이 있어. 그건 바로 닭불알이야.”


생애 최초 카우치서핑 호스트 윌리네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의 사촌은 껄껄 웃으며 말하더니 바로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는 “대만 전통 음식” 닭불알을 사 왔다.


그러니까 카우치서핑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내가 혼자 떠돌아다녔더라면 전혀 몰랐을, 혹은 시도해볼 엄두도 못 냈을, 그런 그 나라만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단순히 무료 숙박을 제공받을 뿐만 아니라 현지 친구를 사귐으로써 네이버엔 아무리 검색해봐도 나오지 않는 그 나라의 진짜 매력에 흠뻑 취할 수 있다는 것.


대만에서 한, 내 생애 최초의 카우치서핑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첫 호스트 윌리에게 보낸 요청이 승인되고, 타이페이 외곽의 한 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서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긴장되는 마음을 한껏 안고 기다렸던 그날 저녁. 잘 답장이 오지 않아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윌리는 그의 사촌 군단을 이끌고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그의 친척들은 3층짜리 빌라에 한 집씩 들어가 살며 베프처럼 지내고 있었다. 우리는 저녁마다 시장과 노점에 떼로 몰려다니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들이 선물해 준 타이페이의 밤은 보석이었다. 인형뽑기 기계에서 뽑아준 잠만보. 밤새 원 없이 먹었던 대만의 전통 음식과 술. 눈 꼭 감고 한 입 씹자 입에서 톡 터졌던 닭불알.


그때부터였다. 앞으로 주욱 카우치서핑을 이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나는 이 매력 넘치는 여행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대만 - 예류



3. 중국 - 역사의 흔적과 반성


“너 정말 한국에서 왔다고? 여기 좀 봐요, 얘 한국에서 왔대!”


할아버지는 봉고차 안 모든 승객들에게 떠벌려 댔다. 너무 작은 공간이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나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제갈량이 죽은 곳 오장원으로 가는 길에 생긴 일이었다. 나의 서툰 중국어에 소수민족인 줄 알았는지 무슨 족이냐고 묻던 그 할아버지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답하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작은 마을에서 한국인을 보는 것은 처음일 테니. 


여기까지 뭐 하러 왔냐는 물음에, 삼국지를 좋아해서 그 유적을 보러 왔다고 답하니 연신 싱글벙글하시며 새로 타는 승객마다 붙잡고 내 소개를 대신 해대곤 하셨다. 


중국 여행은 세계일주 계획을 짜기 훨씬 전부터 나의 오랜 꿈이었다. 어릴 적부터 삼국지에 파묻혀 살던 나는 줄곧 삼국지 유적을 내 눈으로 보고 싶어 했으니. 하지만 덕분에 상해나 청도, 장가계 같은 유명 관광지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골 마을들만 전전해야 했다. 그곳에서 한국인임을 밝히면 매번 동물원에 갇힌 것마냥 구경거리가 되는 우스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가 꿈에만 그리던 역사 속 실제 현장에 발을 디딘다는 것은, 정말이지 가슴 벅차는 일이었다. 거의 2천 년 전 이곳에서 나의 영웅들이 생활하며 살아 숨 쉬었다는 상상을 하면 나도 모르는 새 미소가 빙그레 지어지곤 했다.


그렇게 관우가 묻힌 ‘관릉’에 방문한 어느 날이었다. 관우의 묘 앞에서 한가로이 거닐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현실에 눈 뜰수록, 나 혼자만 바라보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 삼국지 영웅들의 의리를 본받겠다고 그렇게 다짐하던 스스로는 어느샌가 없어지고, 세계일주를 핑계로 내 사람들을 잘 챙기지 못했던 것 같다던 생각. 나는 나의 꿈에 취해버린 나머지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던 것이 아닐지. 그래서 그 날부턴 엽서를 사서 고마웠던 지인들에게 틈틈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마 바쁜 일상에 치여 지냈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중국 - 샹양 광장



4. 러시아 - 시간의 상대성


“우와- 저것 봐! 바다인가 봐.”


한동안 새하얀 설경만 끊임없이 보였던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창 밖으로, 뜬금없이 나타난 드넓은 바다. 그 말을 뱉고 3초 후 깨달았다. 아, 여기는 바다가 없지?


정말이지 바다라고 해도 믿어 의심치 않을 그것은 바이칼 호수였다. 두 눈으로 봐도 믿어지지 않는 스케일을 가진 대자연은 한동안 숨을 멎게 만든다.


기나긴 지루함과, 이런 간간한 경이로움이 반복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속 시간. 며칠을 끝없이 달리는 기차 안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부스스하게 멍을 때리는 내 모습은 분명 생각만큼 낭만적이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열차가 나의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이유는, 그 느-린 시간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서. 여행 중 최대한 빨리, 많이 보기 위해 다들 항공권을 끊지만, 나는 그럴 이유가 없었으므로. 비행기로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육로로 며칠씩 걸리며 그 길이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으므로. 빨리 이동하며 놓치는 많은 것들이 천천히 갈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니까. 


말 한마디 안 통하는데도 어찌어찌 카드게임 규칙을 가르쳐 주던 러시아인들, 우연히 일정의 상당 부분이 겹치던 한국인들, 해바라기씨를 같이 까먹자고 나눠주던 중국인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체취가 뒤섞인 이곳은, 매일매일 일정에 맞추어 움직이는 삶에서 벗어나 가장 온전히 시간의 속도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시베리아 횡단열차뿐만이 아니다. 세계여행 내내 항공 이동은 거의 택하지 않고, 힘들기로 악명 높은 루트도 전부 육로로 간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여행은 목적지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 과정 역시도 하나의 추억 조각이 되니까.

러시아 - 바이칼 호수



5. 우크라이나 - 분쟁지역 간 관점의 차이


“러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 오빠는 매번 TV를 보고선 나보고 괜찮은 거냐고 전화가 와.”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의 호스트 옥사나의 말이었다. 문득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만난 드미트리가 우크라이나는 위험하니 여행하다간 죽을 거라고 말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프로파간다는 정말 위험하다. 요즘과 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사회에서도 사람들의 눈을 쉽게 가려 놓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많은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굉장한 선입견을 갖고 있으며, 그게 사실이라고 굳건히 믿으며 살아간다. 실제로는 그 장소에 가보지도 못한 채. 여행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


실제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조지아와 러시아처럼 분쟁을 겪고 있는 지역에 가면 각자에게 상반된 주장을 듣게 되는 게 흥미롭다. 물론 제삼자로서 어느 쪽의 편도 적극적으로 들 순 없지만,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또는 북한과의 관계도 되돌아보게 된다. 크림 반도를 가지고 원래부터 러시아의 땅이었다고 굳게 믿는 러시아인과 그곳이 고향인데도 돌아가지 못하게 된 우크라이나인의 차이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보여진 정보만 너무 철석같이 믿고 있는 건 아닐지. 어쩌면 북한도 우리나라에서 얘기하는 것과 실상은 조금 다르지 않을지. 자국의 문제도 좀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겠지.


결론은 네이버보다 구글 씁시다(?)

우크라이나 - 케미아네츠-포딜스키 성



6. 몰도바 - 행복의 정의


“길 찾는 거 도와줄까?”


정말이지 단비 같은 말이었다. 평화로우면서도 북적거리던, 생소한 도시 향이 물씬 풍기던 키시나우의 시내에서 뜻밖의 친절을 받았다.


그동안 그런 말이 굉장히 그리웠던 것일 테다. 별 것 아닐 수 있는 그 몇 초의 순간이 아직까지 깊게 각인된 것을 보면. 사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여행하며 무뚝뚝한 현지인들의 모습에 조금은 지쳐 있었다. 우크라이나에서 길을 잃었던 밤엔 여기저기 붙잡고 도움을 요청해 보았으나, 내가 영어를 쓰는 순간 기겁하며 두 손을 내젓고 달아나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거의 울음을 터뜨릴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몰도바에서는 내가 지도를 보며 두리번거리는 것만 보고도 사람들이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


유럽여행을 가는 많은 사람들은 이 작은 나라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위치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잘 알 수가 없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여행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곳이 몰도바였다. 이 사소한 순간들 덕분에.


길거리를 걸으며 서로에서 씩 웃음 지어 보이는 친근함부터, 한적한 공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뿜어내는 소박한 아름다움까지. 행복은 거창한 것에서 오는 게 아니다. 그런 작은 이유로 입가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올 때, 마음속 깊은 곳까지 따뜻함이 진하게 스며들 때, 나는 여행을 떠나길 참 잘했다고 되새겼다. 혼자 여행을 이어나가며 겪었던 지독한 외로움과 알 수 없는 혼란 속 정체가 눈 녹듯이 풀리며.

몰도바 - 키시너우



7. 루마니아 - 요리의 시작


“저녁에 친구들을 초대해 한국 음식을 요리해 먹는 슬립오버를 여는 거야! 어때? 네가 뭘 만들지 준비를 좀 해 줘.”


“어? 그… 그래.”


그렇게 자취 1년 동안 단 한 번도 요리란 걸 하지 않았던 나에게 고난이 찾아왔다. 카우치서핑 중 한식을 만들어 주기로 했는데, 호스트 아드리안의 딸 코코의 친구들까지 전부 부르는 바람에 7인분의 음식을 하게 되어버린 것. 가뜩이나 요리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는데, 엄청난 부담감이 몰려왔다.


여행을 하면서 점점 부지런한 인간이 되는 법을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었다. 요리는 물론이고 예산 관리와 손빨래까지. 학생 때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 조금씩 생겼다. 아드리안의 집에서 요리를 했던 경험은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구하기 쉬운 재료로 만들 수 있는 한국 음식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볶음밥과 파전, 감자전, 볶음라면으로 메뉴를 정했다. 물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생하다가 다 준비하는 데 거의 2시간은 걸렸지만… 밥을 싫어한다는 코코가 이 볶음밥은 참 맛있다며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고는 결심했다. 이제 카우치서핑을 할 땐 요리를 해줘야겠다고.


그 후로 볶음밥은 가는 곳마다 인기 메뉴가 되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호스트 게르하드는 나한테 레시피까지 받아가서 매일같이 해먹기도 했으니. (백종원 씨 감사합니다)

루마니아 - 시비우



8. 헝가리 - 다양한 삶의 방식


“음, 이렇게 산 건 몇 달 정도 됐어. 그냥 마음에 맞는 곳 찾아서 캠핑카 타고 가는 거지.”


부다페스트에 질려서 찾게 된 티하니.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지로, 끝내주는 옥빛 물 색깔 외에도 인상적이었던 건 숙소에서 만난 한 가족이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딸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산다고 말해주던 남편의 눈에는 행복이 어려 있었다. 그 와중에도 오로지 건강식만 취급한다며, 반드시 유기농 재료를 사다가 직접 매 끼를 만들어 먹는 사람들이었다.


부, 명예, 학벌 등에만 집중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보니, 세상에는 색다른 삶의 방식이 너무나도 많았다. 러시아에서 만난 프랑스인 가족은 이제 초등학생인 입양아를 데리고 온라인 수업을 듣게 하며 반년째 세계여행 중이었다. 아이가 중국어를 하는 걸 좋아한다며 중국까지 여행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모로코 쉐프샤우엔의 호스트 존은 일을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와 에어비엔비를 운영하며 소박한 삶을 사는 지금이 굉장히 행복하다고 했다.


삶의 방식은, 그 삶을 사는 주인이 정하는 것.

헝가리 - 티하니 발라톤 호수



9. 폴란드 - 잊히면 안 될 비극


“옆에 있던 갓난아기가 크게 울기 시작했어. 그러자 나치 군인이 그 아이를 집어 들어 기차 밖으로 던져버렸지. 더 이상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어.”


충격적인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를 천천히 돌아보고 있던 와중이었다. 기차 모형 앞에 모여있던 유대인 그룹 중앙에 한 가이드(랍비)가 높게 휴대폰을 높이 든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아우슈비츠 생존자와 실제 통화 중이었다.


근처에 서서 생존자의 증언을 한참 들었다. 통화를 마치고 투어를 계속하려던 유대인 그룹은 나더러 함께 설명을 듣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가이드와 붙어 다니는 게 싫어서 자유여행을 택했지만, 유대인들의 이야기는 또 다를 것 같아서 그들 무리에 끼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영국 런던에서 온 유대인 모임이었다. 인솔자 랍비는 단순한 아우슈비츠 설명뿐만이 아닌, 당시의 모든 실화들을 종합하여 종교적으로 풀어내 열변을 토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프랑스인인데, 유대인을 지켜주는 레지스탕스였어. 비밀 지하실에 숨어서 버티다가 강제수용소로 끌려와서 돌아가셨어.”


옆에 있던 유대인 남자가 툭 던진 말에 내내 참고 있던 눈물이 떨어졌다. 그동안 충분히 침울한 심정으로 아우슈비츠를 둘러보고 있었지만, 경험자들의 이야기 한 마디 한 마디는 훨씬 더 강렬하게 심장으로 박혔다.


뭐든 100일쯤 되면 정체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공부든 연애든 여행이든. 세계일주를 시작한 지 100일이 조금 넘었을 때 방문한 아우슈비츠는 그렇게 익숙해진 여행에 새로운 감정을 불어넣어 주었다. 잔혹한 역사라는 것은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제 현장에서 보존되어 있는 자료들을 돌아보며 느끼는 참담함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것.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온 직후라 아마 감정이 더 극대화됐을 것이다.


“이젠 아우슈비츠를 나갈 시간이 되었네요. 다 같이 팔짱을 꼭 끼고, 유대인들의 더 밝은 앞날을 위해 당당하게 이곳에서 걸어 나가는 겁니다.”


랍비의 마지막 말과 함께 유대인들은 서로 팔을 연결하고 그들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기찻길을 따라 비르케나우 출구로 걸어 나갔다. 누구보다도 밝고 힘차게.


단순히 예쁜 사진을 찍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신나는 액티비티를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역사의 어두운 면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경험. 도시 구석구석에 역사적 아픔이 배어있는 폴란드의 크라쿠프는 그런 점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폴란드 - 아우슈비츠 수용소



10. 노르웨이 - 날씨의 중요성


“음… 이곳이 원래 훨씬 예쁜데 말이지.”


몇 시간씩 걸려 베르겐의 뷰를 보러 올라간 산꼭대기. 그 위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욱한 안개가 그사이 몰려와버리는 바람에.


대자연을 자랑하는 노르웨이에선 꽤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매일같이 비가 오기 일쑤였다. 여름이나 겨울에 와야 정말 아름답다는데, 굳이 4월에 무리해서 들른 탓일까.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成事在天).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인데,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 제갈량이 한 말이 여기서 생각날 줄은 몰랐다. 그만큼 여행에서 날씨는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한다. 노르웨이에 닿기까지 4개월 간 단 한 번도 비를 맞지 않았던 나의 날씨 운은 수명을 다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굳센 의지를 가지고 밀고 나가도, 모든 일이 다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장기여행에서는 특히나 더.

노르웨이 - 크리스티안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