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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Mar 03. 2021

남미에서 생긴 일 12. 이동하는 과정까지 여행으로

[볼리비아, 코파카바나]

텔레페리코에서 내린 후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 도착한 곳은 라파즈의 한 호스텔. 이곳에서 나는 미리 예약해둔 ‘볼리비아홉’ 버스를 타고 쿠스코로 향할 계획이었다.


라파즈에서 쿠스코로 가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볼리비아-페루 국경에 위치한 코파카바나에 들르고 싶은 욕심에 찾아낸 것이 바로 이 볼리비아홉이었다. 이 버스는 이동수단과 관광 패키지가 짬뽕된 서비스로, 구간을 정해 패스를 끊으면 원하는 만큼 중간에 내려서 머물다가 다시 올라탈 수 있다. 이동 틈틈이 유명한 관광지에 들르는 건 덤. 나는 라파즈에서 출발, 코파카바나를 경유하여 쿠스코에 도착하는 루트를 원했는데, 이때 코파카바나에 내려 5시간가량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 시간엔 태양의 섬까지 가는 일정도 포함돼 있다. 정확히 내가 원한 서비스로만 구성된 것을 보고 약 50달러를 흔쾌히 지불했다.


어디서든 눈에 쉽게 띄던 볼리비아홉 버스


오전 7시가 가까워지자 버스엔 생각보다 인원이 많이 타는지 온갖 국가의 배낭여행객들이 호스텔로 웅성웅성 모여들었다. 대다수는 미국이나 유럽권에서 친구들끼리 모여 온 청년들이었기에 나는 눈알만 굴리며 서 있다가 버스에 홀로 자리를 잡았다. 볼리비아홉은 코파카바나에 다다르기 전, 경치 좋은 몇몇 장소에 우릴 내려주었는데, 한 부둣가에 서서 구경을 하던 중 어떤 여자가 말을 걸었다.


“정말 너무 아름답지 않니?”


영국에서 온 앤은 나와 함께 그 버스에서 유일한 '혼자 여행객'이었다. 비슷한 나이라 그런지 쉽게 친해진 우리는 남은 볼리비아홉 일정 동안 좋은 동행이 되었다. 덕분에 서로 사진도 찍어 주고 심심하지 않게 말동무도 되어 주는.


전망대에서 사이 좋게 서로 찍어준 사진


코파카바나에 도착한 후, 태양의 섬까지 가는 보트를 타기까지 남는 시간에 우린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았다. 작고 아담한 시내였지만 하필 문 닫은 식당이 많아서 갈 곳을 고르는 건 또 어찌나 힘들던지. 성향이 비슷했던 우리는 서로를 한 번 찡긋 쳐다보고는 가장 처음으로 호객 행위를 하는 곳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그렇게 들어간 2층 발코니 음식점에서 우린 볼리비아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즐겼다. 나는 우유니에서 먹은 라마 고기가 아무래도 아쉬웠기에 라마 버거를 시켰고, 앤은 이곳 티티카카 호수에서 잡히기로 유명한 생선 요리를 먹었다. 그녀는 휴가 일정상 쿠스코가 아닌 리마까지 바로 버스를 타고 가서 영국으로 출국할 일정이었기에, 피스코 사워가 너무 그리울 것 같다며 연거푸 주문해 댔다.


라마 버거, 생선 요리, 그리고 피스코 사워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시내 구경을 하며 펍을 찾아 나섰다. 술 취향도 비슷했던 우린 야외석 하나를 잡고 볼리비아의 필스너를 마시며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의 아쉬움을 달랬다. 나 역시 이제 국경을 넘으면 페루에서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터이니.


코파카바나 시내에서 즐긴 필스너 맥주


보트를 타고 들어간 태양의 섬은 몇 년 전 한국인 여행객이 잔인하게 살해당해 떠들썩했던 곳이다. 그 여파로 섬의 북쪽은 여전히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고, 우린 트레킹 루트만 반드시 따라가라고 신신당부를 받았다. 이곳 부족 갈등으로 인해 위험이 있으나,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정해진 루트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그저 평온한 곳으로만 비치는 섬이었다. 볼리비아는 칠레와의 전쟁으로 해안가 영토를 빼앗겨 이젠 완전한 내륙국으로, 티티카카 호수와 같이 드넓은 물이 있는 광경을 보기가 흔치 않다. 이전까지 본 볼리비아와는 또 색다른 모습에 감탄하며, 그리고 고산지대 트레킹으로 숨이 차 헉헉거리며 계단식 지형을 따라 내려왔다.


트레킹 중 만난 예쁜 풍경과 알파카


코파카바나를 떠날 때는 새로운 볼리비아홉 버스가 와서 우릴 맞았다. 야간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인지 버스는 일반 관광버스에서 아늑한 침대버스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금세 국경을 넘어 날이 깜깜해질 때쯤 푸노에 도착했고, 볼리비아홉에서 지정한 레스토랑에 다 같이 가 저녁을 먹었다. 이 식당에서는 치킨 수프와 함께 알파카 고기를 팔길래 여태껏 라마만 먹어본 나는, 귀여운 알파카에겐 미안하지만 또다시 호기심에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식당 차이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라마보다 부드럽고 내 입맛에 맞아 감탄하던 즈음, 후식으로 치차(chicha)를 마셔보겠냐는 권유가 들어왔다. 처음 듣는 이름에 생소했으나 알고 보니 남미에서 옥수수를 발효해 만드는 음료라고. 포도주와 비슷한 색의 비주얼과는 다르게 차갑고 달달한 맛에 감동받았다. 이 모든 걸 합쳐서 낸 저녁값은 20솔(약 6600원). 볼리비아홉에서 연계한 관광화된 음식점이라는 걸 감안하더라도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다.


치킨 수프, 알파카 고기, 그리고 치차


버스는 밤새도록 달려 새벽 6시경 쿠스코에 도착했다. 각 여행자마다 택시에 태워서 묵을 숙소에 드롭 오프까지 해주는 서비스는 기대 이상이었으나, 카우치서핑이 잡혀있는 나로서는 이 과정이 호스텔을 찾아가는 것만큼 수월하지가 않았다. 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보여주고는 미로 같은 쿠스코의 골목길들을 한참 헤맨 후에야 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집 앞에 뻘쭘하게 서서 호스트 지미에게 연락을 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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