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가장 오랫동안 좋아했던 음식은? 아직도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
초등학교 때 학교가 끝나고 학교 앞 상가 지하에서 먹었던 떡볶이. 초록색 타원형 접시에 비닐을 한 겹 씌워 듬뿍 담아주시던 매콤 달콤했던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그 맛.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한 접시에 200원~300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백원어치만 주세요' 하면 딱 열개 세어서 한 접시 담아주시기도 했었다. 얇은 오뎅 두어 조각이 동동 떠 있던 오뎅 국물은 또 어찌나 짭쪼롬하고 맛있던지.
오로지 밀떡 이었다. 언젠가부터 새롭게 등장한 쌀떡은 내 용돈으로 사긴 좀 그렇고 엄마랑 같이 가야 먹을 수 있는 나름 비싼 떡볶이 였는데 그렇다고 밀떡 만큼 맛있지도 않았다. 떡볶이는 밀떡이지.
중학교 입학식 날. 한 치수 크게 사서 소매가 한참 남았던 초록색 교복을 입고 같은 중학교에 배정된 같은 반 친구와 엄마, 나와 우리 엄마 그렇게 넷이 어색하게 갔던 떡볶이 집. 우리는 떡볶이를 먹고 엄마들은 이야기를 나누시고. 그 시절은 그렇게 떡볶이 집에서 친분을 쌓았고 그 이후로 중학교 3년 내내 그 친구와 나는 매일 등하교를 같이 하는 단짝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 바로 앞이 집이었는데 집 앞 상가에 떡볶이 가게가 있었기에 자주 사먹게 되었던 떡볶이. 꼭 가려고 하지 않아도 친구들이 늘 그곳에 있었으니 본의 아니게 매일 들르게 되었다. 생각하고 보면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먹거리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또 그만큼 떡볶이 가게는 어디에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나의 모든 학창시절을 함께 했던 떡볶이. 그 시절 떡볶이는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
우선 배가 고팠기 때문일 것 같다. 중학생이 된 첫째군을 보니 정말이지 공룡처럼 먹어댄다. 지나간 자리가 초토화 될 정도로 사다 놓는 족족 먹어치운다. 아침밥도 점심밥도, 저녁밥도 한그릇씩(어쩌면 그 이상) 먹으면서 간식은 또 왜 그렇게 많이 먹는지. 하긴 나도 학교 갔다오면 그렇게 배가 고팠지. 하루종일 앉아서 수업 들어야 하고 친구들과 쉬지 않고 수다 떨어야 하고 재잘재잘 장난치며 집까지 걸어와야 하고.
그래. 친구들이랑 같이 먹어서 더 맛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시절 친구들이 모일 만한 곳은 떡볶이 집 뿐이었으니. 지금처럼 여기저기 맘스터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공차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 시절 우리에겐 오로지 동네 분식집 뿐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맛이 있어서. 매콤 달콤의 조합은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적당히 통통하게 불은 빨간 떡볶이는 언제나 참 맛있었다. 희한하게도 요즘은 그 맛을 찾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여전히 떡볶이는 맛있다. 집에서 떡볶이를 맛있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나라 음식 양념은 늘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설탕, 간장, 고춧가루.. 그리고 떡볶이 빠질 수 없는 고추장. 처음에 집에서 하는 떡볶이가 맛이 없었던 이유는 고추장 만으로 맛을 내려고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너무 듬뿍 넣으면 텁텁해지기 때문에 적당히 넣고 고춧가루로 빨간 색을 내야 한다.
설탕 : 고추장 : 간장 : 고춧가루 = 3 : 2 : 2 : 1.5 정도
외우기 어려우면 비슷한 비율로 하되 설탕은 '약간 더 많이', 고춧가루는 '약간 적게' 정도로 기억해도 된다.
육수가 있으면 더 맛있지만 없어도 그만. 오뎅이 있기 때문에. 물에 양념을 풀고 떡과 오뎅을 넣어서 보글보글 끓이다가 마지막에 파를 송송 썰어 넣어준다. 만두가 있으면 만두도 넣고, 삶은 계란이 있으면 삶은 계란도 넣고. 떡볶이 국물에 비벼 먹는 계란은 또 꿀맛이지. 집에서 만들면 사먹는것 보다 맛은 조금 덜 하더라도 이렇게 넣고 싶은 재료 다 넣어서 만들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커다랗고 네모난 냄비에서 하루종일 보글보글 끓던 떡볶이. 문득 그 맛이 그리워서 네모난 냄비를 사서 만들어보았다. 물론 나는 그 때만큼 배고프지도 않고, 함께 먹을 친구들도 없지만 떡볶이 냄새를 맡고 주방으로 슬금슬금 모여드는 아이들과 함께하니 또 다른 맛이구나.
떡볶이는 언제나 사랑이다. 그때나 지금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