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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밤 Jul 06. 2022

바다를 품은

밤의 생각: 글을 쓰다가

울산회 많이 드셨겠네요울산이 고향이라고 하면 으레 듣는 소리였다. 울산에 살았던 건 15살 때까지였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줄곧 서울에 살았지만 누군가 고향을 물으면 울산이라 대답했다. 아버지는 울산에 바다가 있는 걸 큰 자랑으로 여겼다. 현무암이 퍼져 있는 검푸른 빛의 깊고 차가운 바다와 몽돌로 이루어진 회색빛의 모래사장. 울산의 해변은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다르다. 아버지는 내가 울산 집에 갈 때마다 바다를 보여주고 회 시장에서 회를 사줬다.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서울에서 먹는 회에는 누린내가 난다고, 회는 자고로 바다 냄새가 나야 싱싱하다며 아는 척을 하는 아버지였지만 정작 본인은 회를 입에도 안 가져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울산의 바다도, 회도 좋아하지 않았다. 하무요울산서 회 먹다가 서울 가면 못 먹십니더울산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히 너스레를 떨며 받아쳤다.     


울산에 도착한 건 토요일 밤이었다. 자고 내일 이야기하자일요일 정오가 다 되도록 아버지는 늑장을 부렸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아는 게 분명했다. 만나는 사람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왔다. 어머니가 귀띔해준 것이다. 곧 돌아가야 한다고 재촉하자 그제야 아버지는 주섬주섬 자동차 키를 챙겼다. 역시나 바닷가였다. 아버지는 한 시간을 운전해 주상절리가 내려다보이는 해안가에 도착했다. 비가 부슬거리는 10월의 바닷가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없었다. 적당한 데 들어가자한 집 건너 한 집이 죄다 카페였지만 아버지는 가격이 비싸다, 전망이 별로다, 사람이 너무 많다 등 갖갖은 이유를 대며 퇴짜를 놓았다.     


2000원짜리 커피 마셔볼래아버지는 벌써 몇 바퀴나 같은 블록을 돌고 있었다. 이런 데 2000원짜리 커피가 어딨어… 나는 조금 지쳐있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버지가 가리키는 곳에는 현수막이 하나 걸려있었다. ‘바다를 품은 호텔 무인운영 커피 2000원.’ 필요한 단어만 대충 던져놓은 듯한 문구에서는 문장을 만들 의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현수막의 왼쪽에는 바다 그림이, 오른쪽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조악해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했다. 때때로 너무 애쓰는 것보다 적당한 무관심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했던가. 심지어 저 현수막을 보고 혹하는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에게는 정보 전달의 효과도 확실한 듯했다. 바다를 품은 근사하고 세련된 카페를 마다하고 굳이 무인호텔 커피라니. 아버지는 내게 동의도 없이 이미 ‘바다를 품은 호텔’ 앞에 주차 중이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는 대학은 한국에서 다니는 게 낫다며 나를 설득했다. 창작하는 삶을 살겠다며 불안정한 프리랜서로 지내던 나에게 취직을 권한 것도 아버지였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는 어설프게 아버지의 뜻을 물었고 결국에는 아버지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정도(正道)의 삶을 살아왔다. 그럴싸하진 못해도 솔직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평생 저 조악한 현수막만큼도 솔직하지도, 용감하지도 못했다.     


90년대 이후로 인테리어를 바꾼 적이 없는 듯한 호텔 입구에서 국적 불명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들어가는 순간 나는 이미 그곳을 떠나고 싶어졌다. 애초에 아버지와 함께 무인호텔에 들어온 것 자체가 몹시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왜 이런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은 걸까. 무인호텔답게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흔한 소파도 테이블도 없었다. 하긴 무슨 로비람. 사람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객실로 직행하는 게 무인호텔의 최대 장점일 텐데.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통유리 엘리베이터 옆으로 ‘무인 커피숍은 6층’이라는 커다란 안내판과 함께 자동판매기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객실을 예약하는 자동판매기였다. 호기심 많은 아버지는 자동판매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28개의 객실 중 25개에 사용 중 표시가 떠 있었다. 아버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6층의 무인 커피숍이란 공간은 커피숍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기사식당처럼 테이블이 줄지어있고 중간에 커피 자판기가 놓여있었다. 역시 아무도 없었는데 이쯤 되니 정말 영업을 하는 게 맞는 건지 의심이 들었다.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아버지는 이미 바다가 잘 보이는 곳으로 의자 두 개를 끌고 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냥 나가자는 말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참기로 했다. 오늘은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신용카드 결제도 가능한 쓸데없이 신식인 자판기에서 아버지와 내 커피 두 잔을 뽑았다.


아주 잘 왔네엄청난 곳을 찾았어아버지는 자신의 즉흥적인 선택이 나쁘지 않았음을 끊임없이 자화자찬했다. 경치도 좋고 심지어 커피까지 맛있지 않냐는 대답 같은 질문을 했다. 자판기 커피가 다 거기서 거기지원두가 오래되어 꿉꿉한 냄새가 났지만 나는 별말 없이 홀짝홀짝 커피를 들이켰다. 창밖으로는 새까만 주상절리가 가로로, 세로로 펼쳐져 있었다. 뜨거운 용암이 빠르게 식으면서 만들어졌다는 돌기둥은 온갖 방향으로 퍼져 있었다. 자세히 보면 용암이 분출되던 모양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그것이 꽃 모양처럼 보인다고 생각해 화암(花岩)이라 이름 붙인 듯했다. 아버지는 말할 거리가 떨어졌는지 창문을 응시했다. 하늘에서 흩뿌리는 빗방울은 거대한 바다의 일부가 되기에는 너무 적어 보였다. 높은 파도가 철썩이는 무인호텔 밖 몽돌해변의 자갈들이 자그락거리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울산에 오기 전날 밤, Y와 나는 빈 종이에 왜 결혼이 아닌 동거를 해야만 하는지 나름의 이유를 빼곡히 적어 내려갔다. 같이 살아봐야지만 신중하게 결혼을 결정할 수 있다, 결혼은 가족 간의 결합이기 때문에 장기간 준비해야 한다, 당장 다음 달에 월세 계약이 끝나는데 그때까지 결혼을 결정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등… 이유는 끊임없이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아버지였다. 남들 다 하는 만큼만 정상적으로 살자는 아버지에게 동거는 비상식적 행위이자, 결혼이라는 제도적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하고 미성숙한 선택지로 비칠 수밖에 없단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뭐하러 이야기를 해어차피 검사하러 오시지도 않을 거 그냥 같이 살아주변의 사람들은 그냥 같이 살라고, 왜 굳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냐고 했다.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걸 왜 감춰야 한단 말인가. 마음 한구석에는 이제는 아버지도 내 선택을 믿고 지지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 친구... 벌이는 괜찮아?

 그냥저냥.

 날을 잡아.

 결혼은 아직 하고 싶지 않은데...

 날을 잡는 쪽으로 다시 이야기해봐.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Y와 준비했던 모범 답안들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툭하고 건드리면 우르르 쏟아져 나올 말들이 너무 많아 입술 아래서 찰랑거리는 게 느껴졌다. 내가 원하는 건 결혼이 아니고 동거라고, 그렇게 단정 짓지 말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달라고 아버지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분노할 수도 있었지만 어떤 말을 더해도 다른 결과는 나오지 않을 거다. 아버지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걸까. 비를 뿌려대는 구름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철썩- 철썩- 파도가 부서질 때마다 하얀 거품이 들끓었다. 파도는 매번 저렇게 치고 부서지는데 나는 왜 한 번 무너지기를 겁내는 걸까.      


우리는 남은 커피를 마시고 1층으로 내려왔다. 허무한 기분이었다. 무인호텔을 나오는데 아버지가 의외의 이야기를 했다.     


 그 자판기… 그거 다 상술이거든

 무슨 말이야?

 방 25개가 다 차지 않았을 거야.

 그래눈속임 같은 건가... ‘이렇게 좋은 곳인가하고 착각하게 되는?

 요지는... 무엇이든 보기와는 다르다고결혼도 마찬가지고.     


아버지는 늘 이런 식이었다. 딱 한 마디로 나를 흔들어 놓는다. 그러다가 실패할 거라고. 아버지는 내 가장 큰 두려움을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들먹였다. 유명하지도 않은 미국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느니 한국 대학을 다니는 게 낫다고 했던 아버지였다. 불안정한 수입은 궁핍한 생활로 이어져 창작은커녕 패배자처럼 살게 될 거라고도 했다. 틀린 말은 하나 없었지만 나는 아버지의 과보호 속에서 제대로 된 성공도 실패도 해보지 못한 어른이 되어있었다.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한국에서 대학도 다니고 취직도 했다. 딱 아버지가 말한 그대로였다.  

    

보기와는 다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아버지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과거의 아버지는 언제나 보기 좋은 답안, 그럴듯해 보이는 선택이 정답이라고 했다. 좋은 것과 나쁜 것,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성공과 실패. 이분법으로 나눠진 아버지의 세계에서 ‘보기와는 다르다’라는 대답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동거는 물론 결혼도 하지 말라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언젠간 실망할 거라는 신탁 같기도 했고 사랑과 결혼은 인간 지각 너머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고저가 있었지만 30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한 사람과 함께한 아버지의 소회였을지도 모른다.     


서울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는지 철도가 말라 있었다.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던 무인호텔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와 새까만 주상절리의 풍경이 마치 열차에서 잠시 꾼 꿈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서울역 인파 속에 섞여 걸어가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돌렸더니 Y가 서 있었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친구를 보자 나를 괴롭히던 질문이 내 안에서 소멸하는 듯했다. 나는 보이는 걸 믿기로 했다.     


Photo by gaspar zald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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