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밖, 자디잘은 것.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의도 벚꽃축제. 하루 평균 100만 명의 인파.” 2019년 4월 9일에 올라온 기사 내용이었다. 1만 명도, 10만 명도 아닌, 100만 명이라니. 입이 떡 벌어졌다. 이제는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벚꽃 놀이가 설 자리를 잃었지만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랜선 벚꽃 놀이까지 등장할 정도니 그 인기만큼은 코로나19도 쉬이 꺾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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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월 중순쯤이면 대한민국의 번화가는 온통 연분홍색 판촉물로 물든다. 카페들은 앞다투어 벚꽃을 연상시키는 시즌 한정 메뉴를 출시하고 마치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도 되는 것 마냥 라디오에선 연신 벚꽃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즈음 마트나 편의점에선 익숙한 과자들이 어느새 포장지를 바꿔 입고 벚꽃 패키지로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진풍경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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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을 저격해 온 국민의 역적이 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아니, 어쩌면 열렬하다고 할 수 있는 한 명의 벚꽃 추종자이기에 뭇사람에 뒤지지 않게 잘 짜여진 소비에 매년 충실히 동참하곤 한다. 다만 특정 시기에만 우르르 몰리게 되는 편향된 관심에 조금 씁쓸함을 느낄 뿐. 2019년 단 하루, 여의도 벚꽃 축제를 찾았던 100만 명 중, 꽃잎이 다 떨어진 벚꽃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잎이 우거지고 가지는 어떻게 뻗치는지 기억해주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그렇다고 누군가를 나무랄 수도 없는 것이, 나만해도 7년이 넘도록 오가던 동네 어귀의 산책길이 이렇게 화사한 길이었는지 매년 벚꽃이 필 무렵에나 새삼 다시 깨닫게 되니 말이다. 벚꽃의 꽃내음과 화사함은 커녕 칼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한겨울에 글을 쓴 이유는 벚꽃의 인기에 몰래 무임승차하고 싶지는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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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따사로운 계절의 대표 아이돌 격이라면, 사시사철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식물도 있다. 예를 들어, 이끼나 민들레, 클로버, 쑥 같은 야생식물들. 그나마 민들레는 홀씨 덕분에, 클로버는 변종 네잎 클로버 덕분에, 쑥은 영양가와 효능 덕분에 종종 관심을 받기도 하지만 이끼는 어느 구석에 숨었는지 좀처럼 발견하기조차 힘들다. 그런데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의외로 여기저기 흔하게 퍼져있는 것이 또 이 이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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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중 처음 이끼를 발견한 건, 저녁 7시를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장 활기찬 시간. 잠시 땀을 식히기 위해 앉은 수변공원 벤치 아래에서 사람들의 관심이라고는 조금도 개의치 않은 듯 꿋꿋하게 그리고 초연하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이끼를 찾아냈다. 아스팔트와 경계석 사이, 공원 바위 아래 등 도시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올라오는 야생 식물을 보면 자연의 아름다움보다는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된다. 무심하기만 한 야생 식물을 구태여 끄집어내 기록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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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 1803의 대표적인 향 리켄 데코스를 선보인 조향사는 분명 누구나 놓치기 쉬운 사소한 것을 주의 깊게 포착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싱싱한 꽃을 한가득 채워놓은 플라워샵에 들어선 듯한, 싱그럽고 익숙하지만 또 독특하게 톡 쏘는 야누스 같은 향. 이슬을 그윽이 품은 야생 이끼와 우디한 느낌을 한층 살려주는 갈바늄, 흩날리는 꽃가루가 연상되는 제라늄, 괜스레 느껴지는 찝찔한 바닷바람. 리켄 데코스의 향은 야생 이끼로 뒤덮인 이국적인 섬을 떠오르게 한다. 평소에 이 자잘한 식물이 어떤 냄새를 품고 있는지 상기해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건만, 리켄 데코스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이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던 자디잘은 것을 찾아 기억의 저편에서 끄집어내 생명을 불어넣는 것들은 어딘가 엉뚱하고 묘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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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껍데기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다른 모습까지도 깊게 이해하려 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한철 흐드러지게 꽃잎을 떨구기 위해 1년 내내 부단히 애쓰는 벚꽃은 매년 헛물만 켜는 건 아닌가 싶어 어쩐지 짠해진다. 우리가 흔히 체리블라썸이라고 부르는 벚꽃향은 사실 체리, 피오니, 베르가못, 머스크, 장미, 바닐라 등의 향을 섞어 조향한 인공적인 향이었다니 말이다.
남들이 놓치기 쉬운 작은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섬세한 관찰력을 가진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무리카미 하루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비현실적인 하루키의 소설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오는 건, 마치 쥐고 있는 책을 뚫고 흘러나온 듯 세밀하게 묘사된 자디잘은 것들 덕분이 아닐까. ‘산만한 독자는 중심 스토리보다 작가가 묘사하는 사물이나 냄새, 촉감 등에 몰입해서 스토리 전개를 놓치는 경우도 왕왕 있겠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아주 가끔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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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그와 같은, 혹은 비슷한 눈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해질 수만 있다면, 일상은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 해질 테고 매일 똑같아보일 풍경 속에서도 반드시 오늘에만 발견할 수 있는 재밌는 차이를 포착하게 되진 않을까. 모두 똑같이 바라보는 시선의 끝자락이 아닌, 어느 한 구석쯤엔 아무도 모르게 나만 키득거릴 수 있는 그런 포인트. 이를테면, 러시아워에 갇힌 앞차의 라이트와 후면의 선들이 만들어낸 사뭇 엄격하거나 어딘지 모르게 익살스러운 표정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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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취향이 되고 지구라는 행성 속 고유한 존재의 개성이 자라나게 되는 거라고 여기는 사람으로서, 데이터나 알고리즘을 통해 수렴되는 유의미한 결과값보다 뜬금없고 어설프지만 별나기 때문에 호탕한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만드는 수많은 오차값이 쏟아져 나왔으면 한다. 이제는 고리타분하게 들리기까지 한 생물학적 종의 다양성에 대한 언급은 둘째 치고라도 말이다. 무료해 보이는 주변과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도 영감은 널려있고, 매 순간을 감사하고 집중해서 충분히 즐길 수 있다면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재밌어질 테니까.
오늘의 당신은 어떤 기분인가요? 나로 대변되는 우리의 일상에서 당신의 기분을 헤아려봅니다. 여러분의 지나간 사연이 누군가에겐 현재의 모습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밥을, 옷을, 공간을, 곡을 때로는 한숨을 가지고 당신의 글을 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