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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에 뜨는 별 Daystar Sep 02. 2022

안전을 위해

妟快定經(안쾌정경 : 편안할 안, 쾌할 쾌, 정할 정, 지날 경)

오늘의 목적지는 중국 길림성 연길. 출발지인 청주공항에서 북쪽으로 약 450nm(833km) 떨어진 곳이다. 순항 속도로 약 1시간 30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인데 우리는 북한 영공을 통과할 수 없으므로 서쪽으로 중국 대련, 북쪽으로 선양, 다시 동쪽으로 비행하여 약 3시간에 걸쳐 도달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시정이 좋으면 멀리 백두산과 개마고원까지 보일 정도로 북한과 가까운 곳이다.


연길 공항은 조종사들에게 매우 까다로운 곳이다.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운영하는 공항이어서 보안이 매우 삼엄하고, 항공기에 레이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뿐더러, 3.3도나 되는 깊은 강하각의 비정밀접근 방식과 QFE를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이 노선에 특별히 경력이 많은 기장과 부기장을 편성한다. 일주일 후면 기장 승격 훈련 과정에 입과 할 나 같은 부기장이야말로 이런 비행에 제격이다. 떨어진 낙엽도 조심하라는 선배 기장님들의 말씀이 오늘 유독 귓가에 맴돈다.



오늘의 항로. 청주 - 대련 - 선양 - 연길. 추가로 하얼빈까지.






“Voyager123. Descend to 1200m on QFE. Hold at present position(보이저123. 절대 고도 1200m로 하강하고, 현재 위치에서 공중 대기하라).”


지금 우리 항공기는 구름 안을 비행 중이고, 바깥공기는 차다. 이런 ‘Icing Condition(결빙 조건)’에서는 날개 등에 얼음이 형성되어 항공기의 비행 성능을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 구름 밖으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이 구름은 안개와 뒤섞여 지면까지 맞닿아 있으므로 활주로에 착륙할 때까지는 벗어날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구름 속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Yenji tower, Voyager123. Request EFC time(연길 타워, 123입니다. 언제쯤 접근을 시작할 수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No time. Continue hold(알 수 없다. 기다려라).”


중국은 역시나 중국이다. 배려심 없는 관제사들은 가끔 조종사들을 미치게 한다. 애초에 조종사는 관제사의 허가 없이 마음대로 비행할 수 없기에 관제사의 배려가 조종사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헤딩을 요청해도, 고도 변경을 요청해도 중국 관제사들은 잘 도와주지 않는다. 못 들은 척을 하거나, 다음 관제사에게 넘겨버리기 일쑤이다.






차가운 구름 속을 비행하는 것 말고도 우리에겐 고민거리가 하나 더 있다. 우리는 착륙을 위해 이미 ‘Flap(플랩 : 날개에 달린 고양력 장치)’을 내린 상태인데, 지금처럼 홀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플랩을 다시 올려야 한다. 매우 드문 경우이다. 괜한 연료를 낭비했다. 이런 시련을 주는 관제사가 밉다. ‘이럴 거면 왜 속도를 줄이라고 해가지고..’


“이거 참.. 우리 플랩 다시 올릴까?”


“네 기장님.”


“그럽시다. Flaps up.”


‘띵~~!!!’


‘응? 이게 뭐야?’


나의 왼쪽 손이 플랩 레버에 닿는 순간, ‘PFD(Primary Flight Display : 기본 비행 디스플레이)’에 노란색 경고 문구가 뜬다.


‘IAS DISAGREE(Indicated Airspeed Disagree : 지시 속도 불일치)’.


조종석의 계기에는 수많은 경고문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경고문이 있다면 바로 이 ‘IAS DISAGREE’이다. 기장 쪽의 속도계와 부기장 쪽의 속도계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종사에게 가장 중요한 계기가 ‘속도계’와 ‘고도계’라면 그 중 하나가 고장 난 것이다.






“Memory Item(암기 절차)!”


“Autopilot Disengage. Autothrottle Disengage. Flight Director switches Off. Pitch 10 degree. N1 80 percent(자동 비행 장치 해제. 자동 추력 조절 장치 해제. 비행 지시 스위치 끔. 자세 10도. 추력 80퍼센트).”


기장님이 재빠르게 반응한다. 제작사인 보잉에서 지시하는 비정상 상황 절차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PM(Pilot Monitoring : 감독하는 조종사)’인 나는 ‘PF(Pilot Flying : 비행하는 조종사, 지금 상황에서는 기장님)’인 기장님의 조작이나 절차가 틀리거나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한다.


‘QRH(Quick Reference Handbook : 비정상 상황 절차 책자)’를 보면, ‘IAS Disagree Check list(지시 속도 불일치 체크리스트)’는 곧바로 ‘Airspeed Unreliable Check list(신뢰할 수 없는 속도 체크리스트)’로 가도록 설계되어 있으니, 기장님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IAS Disagree Check list’를 생략하고 곧바로 ‘Airspeed Unreliable Check list’의 메모리 아이템을 수행하고 있다. 이것은 항공기 시스템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기에 가능한 액션이다. 한 수 배운다.






나는 재빠르게 ‘QRH’를 꺼내면서 속으로 심호흡을 한다. 비정상 상황에선 ‘민첩한 침착함, 침착한 민첩함’이 생명이다. Page 10-1. ‘Airspeed Unreliable’은 긴박한 상황인 만큼 조종사가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QRH’의 가장 앞 커버에 페이지가 소개되어 있다.


“Condition.. Objective.. Autopilot Disengage? Disengaged. Autothrottle Disengage? Disengaged. Flight Director switches Off? Off.. .. .. .. ..(조건.. 목적.. 자동비행장치 해제하였는가? 해제하였다. 자동추력조절장치 해제하였는가? 해제하였다. 비행지시스위치 껐나? 껐다..).”


‘QRH’를 복창하며 기장님과 함께 절차를 일일이 확인한다.


“4000ft. Pitch 5.5 degree. N1 58 percent(현재 4천 피트. 자세 5.5도. 추력 58퍼센트입니다).”


“Set(설정 완료).”



B737NG의 QRH P10-1. Airspeed Unreliable Checklist(신뢰할 수 없는 속도 체크리스트). 점선 윗 부분은 암기에 의해 수행한다.






플랩을 다시 올리고 상황을 천천히 살핀다. 우리는 여전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구름 속을 비행 중이다. 주변은 고도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가까운 남쪽으로 북한 영공 경계선이 있으며, 현재 공역에는 레이더가 없으므로 만약에 상황이 지금보다 심각해진다면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수단은 딱히 없다. 더군다나 언제 연길 공항에 착륙을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선택의 시간이다.


이곳에서 좀 더 체공을 하며 기다리다가 연길 공항에 착륙을 할 것인가. 아니면 속도계 한쪽이 고장 난 상태로 한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하얼빈 공항으로 ‘Divert(다이버트 : 회항)’할 것인가.


다행히 하얼빈 공항의 날씨 상태는 좋다. 구름도 없고, 바람도 잔잔하다. 기장님께 조언을 하기로 한다.


“기장님. 현재 하얼빈 공항은 기상 양호하고, 노탐도 특이사항 없습니다.”


“음.. 그래요. 여기는 언제 착륙허가가 날지 모르니 일단 하얼빈으로 갑시다. 그게 낫겠죠?”


“네 기장님.”






연길 타워에 하얼빈으로 ‘다이버트’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지시를 받아 상승 중이다.


‘띵~~!!!’


또 ‘PFD’에 경고문이 들어온다.


‘ALT DISAGREE(Altitude Disagree : 고도계 불일치)’


오 마이 갓. 올 것이 왔다. 이번엔 고도계가 문제다.


‘Shit(젠장)!’


속도계에 이은 고도계 이상. 이로써 조종사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계기가 모두 고장 났다. 하지만 다행히 ‘Back Up(백업)’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기에 아직 정상 비행은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항공기 시스템은 고장에 대비해 필수 장비가 2개 이상 설치되어 있다.


“ALT DISAGREE Check list(고도계 불일치 체크리스트).”


이 상황에서는 고도가 제한된다. ‘RVSM(Ruduced Vertical Seperation Minimums : 항공기 간 수직 분리 기준 축소)’공역에 진입하려면 정상 작동되는 고도계가 2개 이상 필요한데 우리에겐 한 개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항로 상 구름도 회피해야 하는 상황에 고도까지 제한되니, 계획보다 연료를 더 소모할 수밖에 없다. 하얼빈으로 가는 동안 또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띵동’


“네. 사무장입니다.”


“사무장님. 우리 하얼빈으로 다이버트 합니다. 계기에 문제가 있긴 한데 심각한 상황은 아니에요. 그리고 연길 공항에 무슨 일이 있는지 착륙을 계속 지연시키네요. 안내 방송 부탁드릴게요. 순항고도 도착하면 제가 기장 방송 따로 하겠습니다.”


“네. 기장님. 수고하십시오.”


기장과 객실사무장 사이의 간단한 대화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다. 기장이 무슨 단어를 선택하는지, 얼마나 큰 목소리와 어떤 억양으로 상황을 전달하는지에 따라 사태의 심각성이 결정되고 그것은 객실사무장의 목소리를 통해 그대로 승객들에게 전달된다. 비행 중인 항공기에서 승객들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유발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다.






순항 고도에 도달했다. 곧바로 하얼빈 공항 착륙을 준비한다. 정상 상황이 아닌 만큼 기장님께서 신중하게 접근 브리핑을 하신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Recall Check’를 하는데,


‘띵~~!!! ENG(엔진)’


Master Caution 창에 ‘ENG’ 경고등이 떴다. ‘Overhead Panel(오버헤드 패널 : 머리 위에 있는 계기 패널)’을 올려다보니 ‘No.2 Engine(2번 엔진)’의 ‘EEC(Electronic Engine Control : 전자식 엔진 통제 장비)’에 ‘ALTN(Alternate : 대체)’ 라이트가 들어와 있다. ‘이게 무슨 일이람?’ 기가 막힌다. 오늘 날 제대로 잡았다.


“EEC ALTERNATE MODE Check list(전자식 엔진 통제 장비 대체 모드 체크리스트).”


속도계, 고도계에 이어 이번엔 엔진 컴퓨터까지 말썽이다. 여전히 비행 안전에는 문제가 없지만 가능한 한 빨리 착륙하는 게 상책이다. 또 어떤 경고등이 켜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장 방송할게요. You have control(당신이 조종하세요).”


“I have control(제가 조종하겠습니다).”


“손님 여러분 기장입니다. 저희 항공기는 현재, 연길 공항의 착륙 지연 통보와 항공기 시스템 결함으로 인해 목적지 교체 공항인 하얼빈 공항으로 ‘안전하게’ 회항 중에 있습니다. 하얼빈 공항에 도착하면 연료 재보급과 시스템 점검을 마친 후에 다시 안내 방송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승객들에게 많은 정보를 전달하지 못했지만 현재로선 이게 최선이다. 비행에 신경 쓸 것들이 많아서 길게 방송할 여유도 없다. 하지만 ‘안전하게’를 강조한 명료한 방송이었다.



기장 방송에는 힘이 있다. 수많은 승객들이 이 목소리 하나에 모든 것을 의지한다.






하얼빈 공역에 도착했다. 다행히 예보대로 날씨가 좋다. 기어를 내리고 착륙 준비를 마쳤다.


‘드드드드드드!!!’


갑자기 부기장 쪽 속도계의 빨간 ‘Minimum Speed(최저 속도)’ 지시가 순식간에 상승하더니 조종간이 막 떨리기 시작한다. 조종간이 떨린다는 것은 항공기의 속도가 너무 적어서 ‘Stall(스톨 : 실속)’ 직전이니 지체 없이 속도를 증가시키라는 경고이다. 이것은 항공기 추락이 임박한 것으로 매우 심각한 경고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QRH’에도 나와 있었고, 부기장 쪽 속도계가 비정상적으로 낮게 지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Stick Shaker(조종간 떨림)’ 현상이 발생할 것임은 미리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도 덜덜 떨리는 조종간을 잡은 조종사는 이 순간이 매우 불편하고 불쾌할 수밖에 없다. 기장님의 뺨에 식은땀 한줄기가 흘러내린다.






“Pitch 1 degree. N1 54 percent(자세 1도. 추력 54퍼센트입니다).”


“Set(설정 완료).”


“Voyager123. Wind Calm. Runway23. Cleared to land(보이저123. 바람은 잔잔하다. 23번 활주로에 착륙을 허가한다).”


“Runway 23. Cleared to land. 123(23번 활주로에 착륙하겠다. 보이저123).”






착륙했다.


정비사가 점검을 마쳤다. 부기장 쪽 ‘Pitot Tube(피토 튜브 : 유속 측정장치)’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한다.


다시 결정의 시간이다. 목적지인 연길 공항으로 갈 것이냐 출발지인 청주 공항으로 돌아갈 것이냐. 연길 공항으로 가려면 이미 지나 온 그대로 차가운 구름 속을 통과해야 하고 그렇다면 아까와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청주 공항으로 가는 항로에는 구름이 없으니 안전한 비행이 보장되지만 승객들은 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회사는 모든 승객들의 체류를 보장해야 하기에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미안하지만 청주 공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안전을 위해.



부기장 쪽 Pilot Tube(피토관). 이 작은 장치 하나의 결함이 오늘 회항을 유발했다.






비행은 ‘선택의 과정’이다.


하지만 조종사는 어느 것 하나 쉽게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예를 들면, ‘Seat Belt Signal(안전벨트 시그널)’ 조작 하나에도 고민이 필요하다. 터뷸런스가 얼마나 심한지,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지, 심하다면 언제부터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승객들이 지금 식사를 하고 있는지, 식사를 마쳤다면 승객들의 화장실 대기줄이 얼마나 긴지, 지금 안전벨트 시그널을 켠다면 대기하던 승객들이 재빠르게 근처에 앉을 좌석들은 충분히 있는지, 객실승무원들은 서있는지 앉아있는지, 서있다면 카트를 밀고 있는지 아닌지..


이러한 사소한 선택들이 모이고, 결과를 만들어 내고, 그래야 비로소 안전한 한 레그의 비행이 완성된다.






선택이 힘들다면 이 순서를 기억하자.


‘안쾌정경(妟快定經 : 안전성, 쾌적성, 정시성, 경제성)’


해답은 이 안에 있더라.



해질녘 착륙하는 항공기의 모습. 안전한 착륙은 비행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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