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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월 whalemoon Nov 16. 2024

상담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전 국민 마음 투자 지원사업

두 달전쯤인가, 정신과에서 상담센터를 다니라고 권고했다. 최근 우울증 약의 처방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었고 스트레스로 잠을 너무 자거나 아예 못 자거나 하는 일이 반복됐다. 폭식을 하거나 아예 밥을 먹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무기력한 날이 지속됐다. 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한 행동을 하기도 하며 스스로에게 상처를 줬다.


 아무도 모르길 바랐고 삐끗했다는 핑계를 대며 붕대를 칭칭 감고 다녔다. 후회를 했다,라고 말하기에는 개운함도 있었다. 후회하지 않았다,라고 하기에는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우울함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울한 생각은 더 우울한 생각을 낳고 그 생각들은 모이고 모여서 내 뇌를, 내 마음을, 내 몸을 지배했다. 늘어나는 약으로는 날 치료할 수 없었다.


 처음 이 정신과를 다닐 때만 해도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서는 늘 꽉 찬 대기실을 마주했다. 1시간 정도 대기를 할 때도 있었고,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환자가 늘어났다. 꽤 오랜 대기를 한 뒤 선생님을 만났다. 최근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하고 약을 다시 처방받았다. 그리고 상담을 받아보라고 말했다. 국가에서 하는 ‘전 국민 마음 투자 지원 사업’이 있다며 올해 말까지 신청하면 상담비 지원이 된다고, 2급 말고 꼭 1급으로 신청을 하라고 했다. 해당 정신과에서도 그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원하는 병원이나 상담센터를 찾아가면 된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병원에서 받은 안내문을 읽었다. 나는 지금 상담이 필요한 상태구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 우울증이 다시 심각해진 원인은 아무래도 큰 강아지의 죽음이었다. 여러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이후로 상실감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했고 후회를 했다. 하지만 마음껏 슬퍼하지 못했다. 여전히 아직도 마음껏 슬퍼하지 못했다. 가까운 사람을 처음 잃은 할아버지의 죽음도 사실 난 아직도 마음껏 슬퍼하지 못했다. 그러한 슬픔들을 모아두고 있다가 강아지의 죽음으로 터져버린 것 같았다. 슬퍼하지 못하고 있을 뿐, 슬퍼하는 방법을 잊었을 뿐, 나도 슬퍼하고 싶다. 그리고 무너지고 있었다.


 그것 외에도 재취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 가족에게 금전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 무기력함을 핑계로 미뤄둔 공부나 독서, 글쓰기 등등 모든 것은 돌고 돌아 또다시 우울감을 흉포하게 만들었다.


 바로 지원 사업을 신청하지는 않았다. 무기력함에 그대로 지쳐 있었고 하루 정신을 차리고 신청을 했다. 카드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은행에 방문하고 싶지는 않았고, 신용카드의 경우 내 신용정보는 물론 직장정보 등을 필요로 했다. 한 곳은 거절이 되었고, 남편의 급여를 기준으로 다른 회사에서 카드 발급이 진행됐다. 며칠의 기간이 지난 후 지원이 확정됐다.


 무언가 내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말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왜 상담을 받게 되었는지도 말해야 하고, 우울증이나 불면증이 언제부터였는지, ADHD의 정도는 어느 정도 인지, 우울증이 심해진 이유는 무엇인지 등 다시 떠들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기존에 다니던 정신과의 경우 평일에 휴일이 있기도 했고, 워낙 대기가 많아서 50분의 상담이 가능한지 의문이 생겼다. 더군다나 내가 평일에 일을 다시 시작한다면 야간 진료가 있는 날이나 주말에만 상담이 가능했다. 사실 그런 상담자들을 위한 시간을 따로 두는지 물어볼까 했지만 왜인지 묻고 싶지 않았다. (지금 병원 블로그에서 확인하니 임상심리전문가 선생님을 따로 두었다고 한다. 그럼 처음부터 이야기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려나, 아님 내 진료기록을 보려나…)


 어쨌든 시간들을 고려하다가 결국 집 근처에 있는 상담센터를 다니기로 결정했다. 1급 상담을 하는 곳이 많지 않아서 선택지가 적기도 했으나, 평도 괜찮았고 평일에도 늦은 시간 상담이 가능한 것이 가장 큰 선택의 이유가 되었다. 상담자가 많은 탓에 기간이 조금 지연되고 11월 첫 금요일에 첫 상담을 시작했다.


 왜 상담을 받게 됐는지는 이미 상담 전 설문지 같은 것에 기재했기에 비교적 수월한 상담이 진행됐다. 중간에 울컥하기는 했지만 울지는 못했다. 오히려 나를 상담해 주시던 선생님이 울어버렸다. 나는 아무래도 남을 울리는 것에 재주가 있나 생각했다. 약 50분의 상담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다. 상담을 권유받기 시작한 궁극적인 이유인 자해를 비롯해 트리거가 된 이야기 등등. 거의 30분 이상을 말하다 보니 목이 말랐다. 그러고 보니 평소에 남편과의 대화를 제외하고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데, 어째서인지 그 대화도 그렇게 많지는 않다.


 상담을 끝내고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남편이 괜찮았냐고 연락이 왔다. 괜찮았는가 생각을 해보니 그래도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라, 그리고 오롯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난 것도 너무 오랜만이라, 남들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오랜만이라,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나온 것 같았다.


 첫 상담 이후, 나는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계속 거슬렸던 부엌의 하부장을 리폼하고, 포인트 벽지를 없애는 등등 부엌에 일주일을 고스란히 투자했다. 정말 남의 집 같은 부엌을 보자 기분이 조금 괜찮아졌다. 그리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두 번째 상담에서는 미술상담을 같이 했는데 사실 나무를 그리거나 집을 그리는 미술 심리 상담의 경우 나도 이미 여러 책에서 봤었기에 내 지식(이라고 해야 하나)이 어느 정도 반영된, 진실되지 못한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을 제외한 그림에서 ‘어떻게 알았지?’ 싶은 분석이 나와 신기하기도 했다.


 상담 이후 한 주 동안 어째서인지 다시 무기력해졌다. 그래서 정말 어디 아픈가 싶을 정도로 잠을 잤다. 보통 하루에 5시간 정도 자던 사람이 하루에 17시간씩은 잔 것 같다. 물론 날짜 마자 편차는 있었지만 계속해서 잠을 자고, 일어나서 밥을 먹은 뒤 또 잠을 잤다.


 세 번째 상담은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흐른 느낌이었고, 소울메이트 같은 친구가 보고 싶어서 그 친구 이야기를 하다가 하마터면 울 뻔했다. 그리고 오늘이 되었다.




 앞으로 5번 정도의 상담이 남았다. 한 번 상담을 받을 때 8만 원인 전문 심리상담은 아마 바우처 지원이 끝나고 나면 나에겐 부담스러운 금액이 될 거라고 본다. 2025년에도 지원을 한다면 꼭 신청하고 싶을 만큼, 지금의 나에게는 나름 도움이 되고 있다.


 지금 나의 우울괴물은 그림자에서 나와 나의 기운을 모두 빨아먹고 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서 괜찮다고 스스로를 자위하고 있지만, 빠르게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라고 있다. 언제쯤 다시 슬퍼하는 법을 찾을지 모르지만, 나는 곧 괜찮아질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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