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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 Hye In Oct 31. 2021

여성의 공부, 엄마의 공부

 

버지니아 울프의 모습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3291190055934





  17세기의 여류작가이자 철학자였던 마가렛 카벤디쉬(Margaret Cavendish)는 여성은 박쥐와 올빼미처럼 장님으로 살고짐승처럼 노동하며벌레처럼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에게,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남편에게 귀속되어 교육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골방이나 주방에서 스러져갔던 수많은 여성들의 삶의 모습을 동물과 벌레에 비유하며 그들의 소모되어버리는 삶에 대해 분개하였지요.


  20세기 위대한 소설가이자 비평가였던 버지니아 울프(1929) 역시 셰익스피어의 재능과 같은 천재성은... 힘들게 일하는교육받지 못한 노동계층 사람들에게는 나올 수 없었다그러니 어떻게 여성 사이에서 그런 천재가 나올 수 있겠는가?”라고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여성들이 교육받고, 글을 쓰고, 지식노동자로서 성장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환경이었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울프는 그렇게도 여성들이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외쳤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꾸준히 배우고 발전해왔습니다. 덕분에 21세기 오늘날 여성의 지위는 그녀들이 살던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나아진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는 또 다른 계급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생산성’을 바탕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여성들에 비해, ‘공부’하는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더 과소평가 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지요. 


“남들은 둘이 벌어 집도 사고, 차도 사는데... 너는 뭐 대단한 걸 하겠다고 박사란 걸 하고 앉아있니? OOO(남편) 혼자 벌면 힘들지 않겠니? 빨리 졸업하는게 좋겠다.”


  누군가로부터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일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여전히 ‘공부하는 여성’들에 대한 사회와 주변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박차고. 대문을 걷어차고. 많은 여성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합니다. 힘들어 파김치가 될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월급이라는 안정적인 수입을 포기하는 데에서 오는 기회비용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아뿔사. 꼬물거리는 아이가 근육으로 뭉친 어깨에 삶의 무게를 더함에도 불구하고. 각자 마음에 꿈을 품고 아카데미아로 나아옵니다. 매년 14천여명의 박사들이 쏟아져나오는데, 그 중 5천여 명이 여성동지들이지요. 그 5천명 중 1명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3-10년의 시간을 견뎌야 하며, 아이가 있는 경우엔.... 그 시간이 훨씬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아이의 유무 혹은 아이의 수와 졸업 연한 사이에 뚜렷하고 객관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싱글 여성이 ‘연구자’로서의 역할에 비교적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것에 비해, 기혼 여성은 ‘연구자’, ‘부인’. ‘며느리’와 같이 추가적인 역할들을 더 수행해야 하므로 아무래도 1/N을 하게 되면 연구자로서의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 수 있겠죠. 


  사실 부인이나 며느리라는 역할은 싱글여성의 삶에 약간의 무게를 더할 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매일 저녁 남자와 집 앞에서 헤어지느냐, 아니면 매일 저녁 남자와 집안으로 같이 들어가느냐의 차이 정도여서 어쩌면 막 결혼을 한 기혼여성의 행복지수로 인해 연구몰입도가 더 높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매우. 엄청나게.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이의 출생은 인생에 있어 매우 급격하고, 근원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엄마”라는 역할이 추가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비중있는 “부캐릭터”가 생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몇몇 가부장적인 국가들에서 ‘엄마’라는 정체성은 결코 ‘부캐(부캐릭터)’가 되어서는 안 되는 가장 최고의 우선순위로 가치 매겨지기도 하지요. 그리고 실제로 아이를 낳은 여성들에게 ‘엄마’라는 정체성이 최고우위의 본캐가 되기도 합니다.

 

  엄마가 되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시간부족에 시달릴텐데, 자아의 발전과 미래에 대한 꿈을 안고 대학원에 입성하는 많은 후배님들, 당신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미리 두 팔 벌려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드리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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