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서 자란 아이

ep1. 그때 우리 집은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다.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았고, 대단히 부유하지도 않았다.

아빠는 중소기업의 차장, 엄마는 전업주부였다.


엄마는 내가 무언가를 사달라고 할 때마다

“돈 없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언니와 나를 사자성어며, 논술, 수학, 영어, 사탐까지 학원에 보내던 우리 집은

그리 가난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어릴 땐 몰랐는데,

엄마의 “돈 없어”는 진짜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돌볼 여유조차 없던 사람의 말이었다는 걸

조금 커서야 알게 됐다.


그래도 나는

엄마가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다.

내 친구의 엄마처럼 웃어주고, 토닥여주고,

그냥 “고생했어” 한마디만 해줘도

나는 버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말을 듣지 못했던 어린 나는,

조금씩 결핍에 갇혀왔던 거 같다.


반면, 아빠는 아주 다정했다.

특히 나에게 아빠는 세상 그 자체 같은 존재였다.


언니와 엄마는 늘 안방에서 잤고,

아빠와 나는 거실에 이불을 깔고 함께 잠들곤 했다.

옛이야기 CD를 들으며 아빠 품에 안겨 잠이 들었고,

번개가 칠 땐 아빠가 꼭 안아주었다.


열 살이 넘었는데도 겁이 많던 나는

집에서도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 항상 아빠 손을 잡고 갔다.

“짜식, 하여간 겁이 많아서는.”

그러면서도 아빠는 언제나 나와 함께 가줬다.


그래, 언니와 나에게 아빠는

끔찍할 만큼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아빠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딸바보처럼 우리에게 잘해주다가도

무언가 심기를 건드리면,

어두운 방에 나를 가두고 벌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아빠는 엄마에게 그 누구보다 싸늘한 사람이었다.


엄마와 아빠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어렸던 나도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이가 좋지 않다’기보다는

아빠가 엄마를 무시한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아빠는 퇴근하면 늘 컴퓨터 게임과 티비를 봤고,

엄마는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엄마가 뭔가 표현하려고 해도,

아빠는 성가시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 장면이 아직도 난 선명하다.


부부 싸움도 잦았다.

어릴 때라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싸우면 아빠는 윽박지르고

물건을 던져 부수곤 했다.


어쩌면 이때까지만 해도

평범하지만 조금 어두운 그런 가정에서 자랐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러 어느덧 방학이 되고

우리는 인천에 사는 둘째 이모집에 놀러 갔다.


이모는 밥을 먹다가 내 심장이 조금 ‘쿵’ 내려앉는 이야기를 꺼냈다.

“지수, 지민이 엄마 아빠 이혼해도 괜찮아?”


놀라서 심장이 뛰었지만

이상하게도 티 내고 싶지 않았다.

난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응.”


그러고는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다가,

집에 돌아갔던 것 같다.


그리고 아빠는 자주 가던 중국 출장을 떠났다.

이모의 말이 자꾸 신경 쓰였던 나는

결국 엄마에게 말을 꺼냈다.


아직도 그 순간이 선명히 기억난다.

불이 켜진 안방, 티비 앞에 나는 서 있었고

엄마는 화장대 앞에 있었다.


나는 괜히 티비 선반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랑 이혼 안 하면 안 돼?”


내 말을 들은 엄마는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오늘 이혼하고 왔어.”


또 한 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혼 가정의 아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