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의 여러 기둥과 둥근 지붕은 서로 다른 여러 의견을 한데 모은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서로 의견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며, 사회적 윤리나 가치를 훼손시키거나 국가와 국민 공공의 이익에 심각하게 반하는 반사회적 주장이 아니라면 어떤 의견이든 존중받아 마땅하다. 국회는 '국민 회의'이다. 국회에 모이는 국회의원들은 국민이 뽑은 대표로서, 국민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 그들로부터 목소리를 대변하는, 국회의사당의 기둥에 해당한다. 국민의 손으로 뽑힌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무릇 정치인이라면 진영과 이념을 떠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목소리를 내고 그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 일신의 안위와 입지만을 생각하여 방관해 놓고, 사태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고서야 눈치를 살피며 ‘안’한 게 아니라 ‘못’했다는 둥,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둥, 비겁한 핑계를 대며 발을 빼거나 꼬리 자르기 등으로 책임을 전가해서도 안된다. 무엇보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 명의 민주 시민으로서 주어진 권리를 내버리거나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된다.
나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강하게 지지하지도 않으며, 진보가 무조건적인 선이고 보수는 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실은 민주당이 그렇게 민주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들의 모든 정치적 행보가 정당하다고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보수도 나름의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행정부의 수장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을 위해 전시나 사변이 아닌 상황에서, 헌법을 무시한 채 계엄령을 선포하여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정치적 중립을 위반하고 국가 경제를 돌이킬 수 없이 망치고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의 품위에 크나큰 훼손을 자행한 일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결코 정당화될 수도, 옹호될 수도 없다.
급하고 절박해서 저질렀다고 하면 죄가 아닌가?
미수에 그쳤다면 죄가 아닌가?
2시간짜리 범죄는 범죄가 아닌가?
예고하고 범죄를 저질렀다면 범죄가 아닌가?
법에 적힌 권리라고 해서 적법한 절차와 상황을 무시하고 마구 휘둘러도 되는가?
이렇게까지 될 줄 모르고 저질렀다고 하면 그 죄가 용서되는가?
이러한 파장까지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 무지 자체로 죄이고, 국가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개인적 무지를 만천하에 드러내 거대한 혼란을 초래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방식에 있어 국가적 혼란을 최소화하면서도 적법한, 최선의 절차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계엄 자체를 정당화하면서 민주 사회의 구성원으로 용인되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친일파나 매국노 등 반민족 행위자도 한 민족으로 취급해 달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물론 현 보수 정당의 모든 의원이 계엄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생각이 단순히 ‘내란동조당’이라는 오명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었는지, 다음 선거를 의식해서 국민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현 상황으로 보건대 당 내부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없지 않고,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세력은 국민의힘 내부에서 ‘중진’이라는 사람들을 주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당의 주축이라는 그들은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나서서 총대를 메고 상황을 타개하려 하기보다는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하고 ‘당론’이라는 이름하에 반기를 드는 이들을 겁박하고 호통치기 바쁜, 권위주의적이면서 비겁하기 짝이 없는 작태밖에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꼰대’라는 이름 한마디로 대변되는 수뇌부로 인해 그들은 여당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자정능력을 잃고 분열되며, 보수의 가치는 퇴색되고 국민은 돌아서고 있다.
나는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더 이상 침몰하는 배에서 시대착오적이고 의미 없는 편 가르기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정치의 본질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 좌든 우든, 정치는 정치 행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 보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진보와 보수는 끊임없이 반목하겠지만, 우리는 적어도 썩은 뿌리를 도려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바뀌고 시대가 변한다. 국민의 뜻에 따라 선출된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손에 잠시 양도된 국민의 주권을 한순간도 잊어버리지도, 가벼이 여기지도, 져버리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나라의 미래인 청년과 청소년은 그대들의 행태를 똑똑히 보고 기억하며 자라날 것이며, 이 나라의 역사는 당신들의 선택을 기억하고 기록할 것이다. 시대의 부끄러운 단면으로 회자되었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장될 것인지,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갈 것인지는 오늘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