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처음 걸었던 5년 전과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나 사랑으로 나를 품어주었던 순례길이 쌀쌀맞아 보였다. 알베르게 주인이나 봉사자들은 기쁨 없이 일에 치인 느낌이었고, 그날의 순례가 끝나면 둘러앉아 자신의 신화를 들려주던 순례자들은 침대에서 혼자 스마트폰만 들들거렸다. 순례자가 많아지면서 다양한 순례자들을 만났는데... 남자가 교수라는 한국인 부부는 자기 집이 건축비만 7억이 들었네, 우비 18만 원짜리를 집에 놓고 왔네, 우리 럭셔리한 집에 놀러 와라... 등의 말을 만날 때마다 했다. 또 알베르게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한국인 부부는 내가 밥을 차리는 게 당연하다는 듯 식탁에 앉아 턱을 괴고 밥을 기다렸다. 또 어떤 독일 여자는 만날 때마다 남자가 바뀌어 있었다. 바뀐 남자 품에서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걸 볼 때마다 '해변이나 가지 순례길은 왜 와서 민폐야, 진짜... 아오' 싶었다. 한두 번은 좋았던 브라질과 아일랜드 젊은 친구들도 매일 기타를 튕기고 노래를 부르고 웃고 떠들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데 이 중에는 침묵하고 묵상하고 싶은 순례자가 있다는 걸 모르나? 매일 시끄럽게 떠들면 어쩌자는 거야?'.... 마음에서 불평불만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걷는 속도가 비슷하니 만나는 사람도 비슷하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내가 그들을 앞지르는 것보다 천천히 가는 게 쉬울 것 같아 걸음 속도를 낮췄다. 이틀쯤 길 위에서 최대한 시간을 보내고 나자 그동안 봐왔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산타마르틴'이라는 동네. 마을에 레스토랑도 마트도 없고 성당과 알베르게와 집 몇 채뿐인 작은 마을. 지나가다 알베르게 마당을 흘끗 쳐다보니 온갖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몇 시간 걷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숙소에 머물기로 결정하고 일찍 짐을 풀었다. 가진 옷들을 죄다 빨래해 널어놓고 나도 햇볕을 쬤다. 마당에 떨어진 꽃 위를 맨발로 걷고 따뜻한 차를 마시고 책을 읽자 마음이 고슬고슬해지고 평온해졌다. 새벽에 온몸이 떨리게 추웠던 것만 빼면 산티아고 길에서 가장 좋았던 숙소 중 하나였다.
다음날, 숙소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니 10킬로 이상은 걸어야 커피라도 마실 수 있어 나는 새벽같이 출발했다. 다른 순례자들은 그 숙소에서 느지막이 아침식사까지 사 먹고 나오는 눈치였다. 그렇게... 길 위에 나 혼자였다. 앞뒤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평선으로 떠오르는 해와 밀밭 사이로 난 길 위에 혼자, 오직 혼자였다. 너무 행복했다. 행복해 미칠 지경이었다. 막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말도 안 되는 탭댄스 흉내를 내며 혼자 깔깔거려도 아무도 보지 못한다는 건 엄청난 희열이었다.
한 시간 정도 걸었을 때, 언덕 위에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남자가 서 있었다. 커피와 비스킷을 파는 것 같았다. 지나쳐 가려할 때, 그가 커피를 마시고 가라고 했고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 안의 어떤 힘이 나를 붙잡았다. 그는 모닥불에 물을 끓여 천천히 커피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순례길이 어떠냐고... 난 조금 망설이다 실망의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5년 만의 두 번째 순례. 그동안 알베르게는 민박집처럼 우후죽순 늘어났고, 바와 레스토랑 주인들은 순례자를 돈벌이로만 대하며, 순례자들은 진지하지 않다고, 왜 이렇게 순례자가 많은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때 내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그가 "넌 왜 바깥에 흔들리지? 길은 네 안에 있는데... 알베르게가 많이 생기든 순례자가 진지하지 않든 그런 건 다 바깥의 일이야. 넌 너의 길을 걸으면 돼!" 그 순간, 누군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기분이었다. '아... 맞네. 그동안 불평불만을 늘어놓느라 나야말로 진짜 순례를 못 하고 있었네...' 얼굴이 붉어진 나는 서둘러 도네이션을 하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가 등 뒤에서 축복의 종을 댕그렁... 댕그렁... 하염없이 울려주었다. 종소리 따라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 이후 순례는 달라졌다. 최대한 길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머물고 싶은 곳이 나타나면 자리를 잡고 앉아 아름다운 자연을 충분히 눈에 담았다. 다른 순례자들에게 신을 대하듯 "부엔 까미노" 인사했다. 몇 킬로 가야 한다는 압박을 버리고 걷는 것 자체를 즐겼다. 아픈 한국인을 만나자 먼저 나서 따뜻한 밥과 국을 끓여주었다. 마음을 바꾸자 풍경도 사람도 그냥 그대로 좋았다.
하루는 정말 예쁜 마을을 만났다. 짐을 내려놓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숲에는 방풍, 고사리, 미나리가 지천이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꺾지 않는 산나물들. 채집의 기쁨에 젖어 한참 동안 나물을 뜯었다. 한 다발 꽃이 된 나물들... 나물 꽃다발을 들고 가볍게 숲을 뛰어다니는 나 자신이 알프스 소녀 하이디라도 된 듯 귀여웠다. 숲에서 혼자 축제를 즐기다 돌아오는 길, 벚꽃이 우수수 떨어졌다. 어깨에 내려앉는 가벼운 벚꽃잎들... 전 생애의 축복이 내 어깨에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다시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진정한 축복임을... 사실은 어떤 문제도 없었음을...
'길은 네 안에 있어!' 어쩌면 흔한 말... 하지만 그 이후 이 말은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바깥 상황은 사실 내 마음과 다른 경우가 많다. 예상되거나 통제할 수 없으며, 관계에서도 곧잘 상처받는다. 물론 꼭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문제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문제들은 내가 그것을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고 상처 줄까?'에서 '그러든 말든 상처받고 말고는 내 선택이지!' 이 인식의 전환이 내게 큰 변화를 줬다.
우리는 복잡한 세상에 산다. 도로에 차가 많다고, 친구가 내 말을 오해했다고,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나라가 이 모양이라고, 전쟁으로 기름값이 올랐다고, 경기 침체로 장사가 안된다고, 이웃 간에 소음으로 스트레스받는다고, 내 집 앞에 누가 쓰레기를 버리고 갔다고, 심지어 비와 바람에 꽃이 빨리 떨어졌다고... 사람들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그 바깥 상황이 진짜 진짜 문제일까? 그 수많은 문, 제, 들 사이에 끼어 시간과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하며 사는 건 문제가 아니고? 바깥으로 향하던 지적과 불평불만을 안으로 들이면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걸 알게 되면 많은 것들이 가볍게 정리된다. 바깥에는 수없이 많은 상황들이 펼쳐지지만 상황은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이다. 나의 감정이나 기분이나 생각이 그것을 붙잡고 있지 않는 한.
어쩌면 아픈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우울한 기분이거나 우울증이라는 더 두꺼운 상태이거나, 번아웃이거나, 공황장애 거나. 강박증이거나 어떤 형태든... 아픈 마음이 많다. 아픈 마음일 때... 우리는 병원에 가거나. 운동을 하거나, 요가를 하거나, 취미활동을 하거나, 종교에 의지하거나, 무기력해지거나... 하며 계속 이 문제가 없어지기만을 바란다. 길은 안에 있다지만 그 길은 어둡고 비릿하고 축축하고 무섭기 때문에 자꾸 바깥에 나가 문제를 풀어보려고도 애쓴다. 안으로 가는 길은 나선원형으로 꼬여있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기에... 빼꼼 그 길을 들여다보면 낭떠러지에서 떨어질까 무섭고 그 끝에 아무것도 없을까 봐 두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인식시스템, 습관화된 생각의 패턴, 세뇌화된 반응, 결핍의 구조, 무의식의 감정들... 무엇이 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알고 이해하면 놓게 된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픈 마음도 사실은 내가 집착해서 붙잡고 있다는 걸 이해하면 좋아진다. 바깥에 일어났던 일들을 너무 크게 내 것으로 받아들여 휘둘리고 약해지고 상처받고 아프게 된 거라는 걸, 사실 나는 그 모든 걸 관조할 수 있는 등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면 자신을 믿게 되고 좋아지기 시작한다.
살면서 내게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문제라고 느낀 많은 감정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게 축복이라고 느낀다. 점점 늙어가고 아파지는 몸을 보며 생명체로 살아봐서 다행이라고 느낀다. 산책할 수 있고, 사색할 수 있고, 감동할 수 있고, 음식을 만들 수 있고, 타인을 두 손으로 안을 수 있고, 잘 죽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