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로 살며 나는 거의 매일 낯선 사람을 만난다. 한가하거나 손님이 마음을 열 때면 그들과 얘기 나누는 걸 즐기고 많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알게 됐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번아웃, 공황장애, 우울증... 등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정신적인 영역의 문제들이 그들 삶의 실질적인 부분을 통째로 흔들기도 한다는 것을...
어느 날 중년의 여자분이 가게로 들어왔다. 대부분 마음이 힘든 사람들 표정이 그렇듯, 안광은 마음의 어느 방으로 숨어 들어가 있고 안색은 어두웠다. 음식을 준비해 내드리고 그녀를 관찰하며 날씨 얘기 같은 소소한 말을 몇 마디 걸었다. 그녀는 시큰둥해했다. 나는 빠르게 마음을 접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 뒤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일주일 정도 쉬려고 이 지역에 왔던 건데 한 번 더 이 가게에 오고 싶었다며 조금 더 밝은 표정으로 주문을 했다. 음식이 나가고 나는 그녀가 왜 일주일 정도 쉬어야 했는지 물었다.
그녀는 말했다. 그동안 나름 열심히 집안 일과 회사 일을 병행해 왔고 책임을 다 했지만 번아웃이 왔다고... 아이들도 다 컸고 경제적 여유도 생겼지만 더 이상 태울 에너지가 없다고... 며칠 전화기도 꺼놓고 쉬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시인이 되고 싶어 남몰래 열심히 시를 쓰고 있지만 등단에 번번이 떨어지고 있다고. 꿈을 이야기하며 순간 타올랐지만 금방 푸시식 거리며 꺼지던 내면의 불꽃. 아직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아는 편이라 그녀와 오래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세 번째 방문 때 그녀는 아들과 함께 왔다. 군대에 입대 중인 아들인데 엄마를 데리러 휴가 차 나왔다고 했다. 아직 소녀이면서 다 큰 아들의 엄마인 그녀. 그 생활과 꿈 사이 어딘가가 깜깜해서 나도 함께 오래 더듬거렸다.
다른 어떤 날, 부녀로 보이는 남녀가 들어와 식사를 했다. 함께 여행하되 각자 시간을 보낸다며, 딸은 근처 문학관으로 구경 가고 아빠는 가게에 좀 더 앉아있겠다고 했다. 커피를 한 잔 내드리고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얼마 전 명예퇴직했다고, 말이 명예지 회사의 압박에 의해 퇴직했다고 말했다. 아직 대학도 졸업 안 한 딸이 둘 있으니 본인은 더 일하고 더 벌어야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내주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고 했다. 대학 졸업과 함께 30년을 보낸 회사, 임원까지 올라갔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겠냐며... 그런데 막상 그 회사에서 떨어져 나와 백수가 되고 보니 회사 일 말고 할 수 있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회사라는 그늘, 회사라는 이름이 지워지고 혼자라는 게 어색하다고 했다. 자신감도 없고 우울하다고 했다. 가족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지만 혼자 있으면 너무 우울하다고 했다. 아직 딸들을 위해 더 일해야 하는데 고민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어쨌든 아이들은 성인이지 않냐며 이제 그만 책임감을 놓으시라고 했다. 가족을 위해 그만큼 살았으면 됐다고,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보수는 좀 적더라도 온전한 기쁨이 있고 봉사가 되는 일자리를 찾아보면 어떻냐고 했다. 그는 장애인택시 같은 걸 해보면 어떨까... 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아직 힘이 있으니 안아다 태워줄 수도 있고 휠체어도 실어주고... 말을 이어가려 할 때, 딸이 돌아왔고 그들은 다음 목적지에 대해 몇 마디 나누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어느 날은... 부부가 들어와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을 내드리고 주방 일을 보고 있을 때 남편 분이 말을 걸어왔다. 시골에 사는 삶은 어떻냐고... 나는 대단히 만족한다며 하루하루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도로 건설 시 측량에 관계된 일을 하고 있어 현장에 자주 나간다고 했다. 선후배들과 관계도 좋고 사람 좋아해 술자리도 자주 갖고 늘 바깥으로 돌았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2년 전에 공황장애가 왔다고 했다. 숨이 안 쉬어지고 바닥이 꺼지고 너무 무서웠다고... 그게 반복돼 회사를 휴직하고 1년 반 동안 쉬었다고 했다. 혼자 있어 본 적이 없어 혼자라는 것도 무서웠지만 병이 악화돼 회사생활을 유지하기 힘들어 어쩔 수 없었다고... 그는 너무 많은 시간 앞에 당황했다고 했다. 일도 없고 친구도, 술도 없고 오직 시간과 자신뿐이어서 당황했다고 했다. 다행히 와이프가 아무렇지 않게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어와 생활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며, 와이프는 집에 있을 때도 늘 혼자 잘 놀았는데 자신은 혼자가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어쨌든 공황장애는 심하고 시간은 많고 뭐라도 해야겠어서 그는 자연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고 했다. 차박도 많이 하고, 별도 보고, 걷고, 단순하게 먹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에 깃들어 살고 싶어 졌다고 했다. 시골에서 살고 싶어져 여기저기 구경 다니고 있는데 와이프는 완강하게 서울에 살겠다고 한다며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가 조금은 수다스럽게 여러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와이프 분, 여자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나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은 남편과 달리 등을 보이고 앉아 얼굴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자기는 혼자 있는 게 좋고 서울이 좋다고 했다. 관계를 깊게 갖지 않아도 되는 서울이 편하다고 했다. 저렇게 다른 데 부부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내 생각을 말했다. 서울은 각박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익명성이 주는 편함이 있다고, 옆 집 사람을 몰라도 된다고... 하지만 시골은 자연이 주는 큰 기쁨에 반해 사람들이 시시콜콜 들여다볼 수 있고 심하면 숟가락 개수까지 참견할 수 있다고... 바로 시골에 집을 짓지는 말고 전세를 얻어 한 번씩 지내러 온다든지, 땅을 조금 사서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주말에 농사도 짓고 그 농산물을 와이프에게 가져다주면 한 번쯤 와이프도 구경 올 수 있지 않겠냐며... 그렇게 시간을 들여 두 곳에서 살다 천천히 어디 살 지 정하면 어떻냐고. 막상 살아보면 시골 생활 힘들어하는 사람도 많다고...
그는 자연 덕분에 공황장애가 많이 좋아져 다시 복직했다고 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늘 사람들 속에 있지 않고 주말이면 혼자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술자리도 덜 갖고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자신이 못하는 게 혼자 있는 거였다면서 지금도 완전히 즐거운 건 아니지만 편해졌다고 말했다. 그들이 일어나 나갈 때야 겨우 와이프 분 얼굴을 봤다. 혼자 있는 게 제일 좋다는 그 여자분은 얼굴에 큰 특징이 없었다. 신기하게, 다시 봐도 절대 몰라 볼 얼굴이었다.
나의 경우는 우울증을 겪었다. 다른 건 직접 겪지 않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멀쩡한 육신을 놔두고 마음의 병에 힘들어할까? 왜 우리는 이렇게나 아름다운 손가락과 이렇게나 완벽한 발바닥을 놔두고 내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걸까? 우리는 왜 마음이 아플까? 왜 이렇게까지 마음의 일로 휘둘릴까? 도대체 이 '마음'이 뭐길래 '몸'까지 아플까?
나의 경우, 생각이 너무 많았다. 실제로 행동하기보다 생각으로 빠졌고 내 존재도 부정하고 세상을 탓했다. 벼랑을 달고 살았다. 나중에는 부정마저 희미해지자 아무것도 없는 공허 앞에 섰다. 그렇게 벼랑에서 뛰어내리다 다행히 여행을 만났고 내 손가락과 발바닥을 다시 보게 됐다. 이 손과 발로 타인을, 자연을, 건축물을. 흙을, 음식을 만질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실제 하는 몸 앞에 오래 울고 나자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나의 경우고 사람마다 수 천 가지 이유로 우울증, 번아웃, 공황장애가 온다는 걸 안다. 그들을 다 만날 수 없으니 다 물어볼 수는 없지만 정말 궁금하긴 하다.
어쩌면... 이런 마음의 병이라 일컫는 일들은 마음이 우리에게 거는 말 아닐까? '나 여기 있어. 나 들여다봐 줘. 세심하게, 부드럽게, 그러나 진지하게... 근데 진짜 진짜 안 보면 나 협박한다!' 물론 마음을 안 들여다보고 잘 사는 사람도 많지만 보통 마음은 끝없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거 같다. 무엇이 인생인지,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사람은 무엇으로 존재하며 사랑은 무엇인지, 지구는 왜 이렇게 푸르고 빛나는지...
나는 자영업자로 살며 많은 사람을 관찰한다. 결국 그 관찰은 나 자신을 이해하게 도와주고 세상을 더 이해하게 만든다. 이런 일들이 나 자신을 더 훌륭하게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나의 '마음'을 잘 여행하게 만들 거라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일을 하는 동안 음식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얘기를 잘 들어주고 싶다. 치유는 스스로 찾는 것이므로 그냥 들어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