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_2

'단테신곡강의',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by 먼산

'단테신곡강의', '신곡', '금각사' 그리고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지난해 가을, 이 네 권의 책과 지냈다.

'신곡'은 늘 마치지 못한 숙제였다. 아니 제대로 시작도 못했다는 게 옳다. 온라인 서점으로 부터 온 메일을 지우려다가 이마미치 도모노부 교수가 쓴 '단테신곡강의' 개정판이 나온 걸 알게 되었다.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유럽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얕은 식견으로 대뜸 시작하기가 여려웠었기에, 길잡이가 될만한 책이 나왔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15번의 강의와 강의 후 질의응답을 기록한 책은, 처음 세 번의 강의를 '신곡'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 지식에 할애한 만큼, 1,000여 쪽에 걸쳐 유럽의 역사와 기독교 문명을 집대성한 '신곡'을 제대로 읽어 나가는 데 거의 절대적인 도움이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무거운 두 권의 책을 나란히 읽어가며 끝낸 후,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골라 잡은 소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였다. 실제 있었던 '금각사 방화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의 전개와 그 서술의 디테일은 이 작가를 왜 '전후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탐미주의 작가'라고 하는지 알게 해 주었다. 사실 미시마 유키오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 건 꽤 오래전이다.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선동적인 부제를 가진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이 번역되어 출판되었을 때다. 폐쇄된 동경대 강의실에서 있었던 한 극우 소설가와 극좌 운동권 학생들과의 '전설의 격론', 그리고 그 후 그의 국수주의적 행동과 그 와중의 할복자살은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책을 통해 알고 있던 논쟁이라는 행위와 죽음의 방식이 탐미주의 문학 '금각사' 작가의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꽂혀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논쟁의 주제와 내용이 그 시대에 대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리라는 기대와 달리, 너무 철학적이고 사변적이어서 흥미를 잃고 덮었던 기억이 다시 났다. 다시 읽어도 책 전반부의 논쟁에 대한 생각은 같았다. 책의 중후반부는 미시마 유키오와 직접 논쟁했던 당사자들이 당시의 주제들을 소환하여 논쟁 이후 30년 간 지식인으로서 살아온 경험에 녹여 확장한 대담의 기록이다. 예전에 읽을 때 논쟁에서 멈춰 버려 처음 읽게 된 부분으로, 그들이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토론의 구체성과 다양성 그리고 그 깊이에 대한 느낌은, '아뿔싸!..... 금각사가 나를 여기로 이끌었구나'였다.

네 권의 책과 지낸 짧지 않은 시간 후에 남은 깊은 인상은 단테의 위대함에 대한 경탄도 미시마 유키오의 탐미주의 문학이 주는 서정도 아니었다.

한 동양 철학자는 일생에 걸친 서양 고전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강의의 형식을 빌어 책으로 엮어 냈고, 그 고전이 동서양을 막론한 보편적인 인류대중의 자산으로 더 수월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매 강의마다 진행되었던 여러 참석자들의 토론은, 이 책이 이마미치 도모노부 교수 혼자의 탁월함으로 빚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 인문학의 넓고 견고한 토대가 있어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30년 전 자신들의 국가가 인류 사회에서 어때야 하는 가를 그리고 그런 국가를 만들기 위해 본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비록 대척점에 있기는 했지만, 실천적으로 고민한 한 작가와 학생들은 서로에 대한 존중 아래 자기들의 행동에 근거가 되는 철학을 치열하게 토론했다. 그리고, 한 사람은 세상에 없지만 당시의 그 생각을 삶의 바탕으로 삼아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살았을 남은 사람들의 깊은 토론의 기록 역시 현재의 일본(비록 그들이 바라는 모양은 아니지만)이 어떻게 가능했는 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공통의 관심에 대한 깊은 토론, 비록 입장은 다르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토론, 행동을 지탱해 주고 동력이 되는 철학이나 사상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찾아보기 힘든 이곳 이때에 아주 구체적이고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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