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뮈를 좋아한다.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서 그가 쓴 서문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된 책에 대해 들었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펼쳐 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해 내 방까지 한걸음에 달려갔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진행자가 전한 서문의 한 대목은 이틀 후 그 책을 내손에 있게 했다. 책은 단출했다. 약간 진한 살색 바탕에 흰색과 파란색으로 제목을 형상화한 디자인도 무겁지 않았다. 제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던 그날 저녁, 공항 카페의 한편에서라도 읽기를 시작하려고 긴 여유를 두고 탑승 수속을 마쳤다. 해 질 녘 큰 창가 옆의 카페는 어두웠다. 비교적 조용하고 밝은 탑승구의 구석을 찾아 돋보기로 갈아 쓰고 책을 펼쳤다. 겉표지의 접힌 안쪽에서 나에게는 낯선 저자와 카뮈의 돈독한 관계에 대해 읽으며 카뮈에 대한 내 지식이 아주 적다는 걸 알았다. 카뮈의 서문을 읽어 나가고 이해하기는 첫 단락부터 쉽지 않았다. 그 어려움은 열한 쪽짜리 서문의 마지막 단락까지 이어졌다. 내 머리에는 라디오 진행자가 전한 대목만 외롭게 남았다. 나머지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읽기를 네 번이나 반복해도 똑같았다. 본문을 읽으면 다르려나? 그러나, 카뮈가 '읽다 말고' 달려갔다던 그 첫 글을 읽고도 상황은 같았다. 여러 번 있었던 낯설지 않은 일이다. 어느 책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특히 그 사람이나 채널이 믿을만하면, 여지없이 그 책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항상 같은 감동이나 의미를 느끼거나 찾지는 못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혹은 중간에 읽기를 포기하면서, 나의 지적 수준에 절망하거나 더 나아가 내가 난독증을 가진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 그 책은 다시 읽힐 가능성이 적은 채로 책장의 구석을 차지하거나, 이제는 많이 수월해진 중고 온라인 서점으로 보내지곤 했다. 책을 소개한 사람이나 채널의 문제인지, '시장'이나 '극장의 우상'을 좇는 나의 잘못인지, 모자란 나의 공부와 이해력 때문인지, 아니면 온전한 전달에 실패한 번역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반복되는 과정에서 혹할 만한 제목, 출판사나 온라인 서점의 광고 문구, 웬만한 서평에 덜 휘둘리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좋은 일은 책장에 살아 남아, 이전과 다른 나의 눈에 뜨이고 읽혀, 본래의 가치를 드러내는 책도 간혹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