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인상주의

근대화 그림 속을 거닐다 :이택광

by 조 씨

라파엘전파
라파엘전파는 1948년 역사 화가의 상상력도 없고 인위로 가득 찬 젊은 영국화가들이 결성한 단체다.
이들은 도덕의 진지성과 성실성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이들의 그림은 주로 14세기와 15세기의 이탈리아 미술에서 영감을 제공받았다. 라파엘전파라는 명칭은 전성기 르네상스 이전, 그러니까 라파엘로 시대 이전의 이탈리아 미술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 붙인 것이다. 이들은 라파엘로 이전의 이탈리아 미술이야말로 솔직하고 단순한 자연 묘사가 돈보이는 가장 자연에 친숙한 예술형식이라고 주장했다. 기독교의 상상력과 중세의 신화를 주제로 다룬 이들의 그림은 15세기 르네상스 초기의 분위기를 근대에 맞게 되살려내는 작업이었다.
라파엘전파는 처음에 작가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모든 작품에 라파엘전파의 약자인 PRB로 서명을 해서 함께 전시회를 열었다. 이들의 작품은 소설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혹평을 받았다. 이른바 고전주의 계열의 이상미를 이들이 무시했고, 사실주의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다루는 것이 불경스럽다는 이유였다. 러스킨은 이런 비판에 대항해서 이들을 옹호했고 이들의 후원자가 되었다. 1854년에는 함께 작품을 전시하지 않고 각자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라파엘전파 경향으로 통칭되는 강력한 미술계의 흐름이 많은 사람이 이들의 화풍을 흉내 내었다.
라파엘전파의 지조를 끝까지 지킨이는 헌트 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이발소 그림을 싫어했다


(헌트: 깨어나는 양심)


한 처녀가 멍한 표정으로 막 일어서고 있다. 이 처녀의 뒤에서 비스듬히 누운 중년 남성이 당황한 듯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게 도대체 뭘 하는 장면일까? 처녀는 정부 이고 남성은 유부남인 '부적절한 관계' 를 보여주고 있는 (깨어나는 양심)이다.
무슨 양심이 깨어난단 말인가?
두 사람 저 편에 커다란 거울이 서 있는게 보이고, 그 거울에 비친 창문으로 햇살에 어리는 나뭇잎들과 정원의 모습이 언뜻 비친다. 고전주의식 공간 구성의 전형이며 거울을 사용해서 2차원의 공간을 3차원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동 카메라나 활동사진 같은 신매체의 출현으로 인해 그림 속에 거울 같은 것을 집어 넣어 3차원 경험을 억지로 관객에게 주입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근대의 등장은 이런 배려를 필요로 하지 않는 '똑똑한 관객' 들을 대량으로 양산 해냈고, 이로 인해 그림은 전례 없는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이했다. 헌트의 그림은 이런 기회와 위기에 대응한 태도를 잘 보여주는 작가이다.

그림 속의 윤리적 메시지
건성으로 봐도 이 그림은 세부묘사의 정확성을 자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세부 묘사는 그냥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 상징의 의미를 감취두고 있다. 예를 들어, 처녀의 발치에 풀어헤쳐져 있는 실타래나 아무렇게나 나딩굴고 있는 악보는 '타락' 과 '혼돈' 을 상징한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악보는 이런 삶이 남길 것은 헛 된 눈물밖에 없다는 메시지다.
피아노 위에 놓인 꽃병의 꽃은 헛된 삶을 뜻하고, 그 옆에 놓인 유리병 안에 든 시계를 끌어안은 처녀상은 지금 정부의 무릎 위에서 일어서고 있는 처녀 자신을 상징한다. 이 처녀는 순결성을 잃고 타락해서 혼돈의 정지 상태에 빠져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타락한 처녀의 삶은 테이블 밑에서 고양이가 희롱하고 있는 죽은 새의 운명과 매한가지다.
그림에 나오는 처녀는 죽음 외에 다른 어떤 저항의 수단을 찾을 수 없는 처지에 같힌 존재인 것이다.
이 그림은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다. 타락한 존재도 얼마든지 구원을 받고 타락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구원 마저 거부하는 절망은 오히려 타락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 같은 메세지가 담계 있다.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그림의 제목이 기도한 (깨어나는 양심) 은 얼마든지 사회성을 어떤 의미로 확대 가능하며 다시 말해서, 이 그림에서 말하는 양심은 다름 아닌 계급의방식. 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림은 노동계급 교육의 최고 수단
헌트는 빅토리아 시대의 부르주아나 귀족의 문란한 생활을 비판하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 그 시대는 겉으로 보면 상당히 경건하고 규범에 매여 있는 듯 했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엽기적이고 난잡한 스캔들이 난무했다. 물질적인 면에서 본다면 발전의 시대였지만, 도덕성은 위선의 시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헌트는 이런 시대상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인데, 미술사가들 중에는 헌트가 아주 솔직하게 위선으로 가득 찬, 빅토리아 시대 화가의 실상을 폭로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기록에 따르면 돈 많은 유부남 화가들이 애인을 위해 이런 집을 마련해주고 갖가지 진귀한 물건을 선물 하는 게 일종의 유행이었던 시절이였다고 한다. 이른바 중년의 신사와 젊은 처녀들 사이의 로맨스가 창궐했던 것이다. 그림에 그려진 처녀는 매음녀이기도 하다. 물론 등장하는 인물이 실제의 삶이 이러했다고 보기는 어럽다.
헌트의 그림은 여성의 순결을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보수성이 짙은 주제지만, 달리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시대에 여성은 자신의 순결성을 주장함으로써 사회에서 인격체' 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자신의 순결성을 주장한다는 '보수성' 짙은 행위야말로 유일하게 여성이 남성에 대항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수단 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은 범죄자, 백치, 그리고 K 인종' 과 같이 취급당했다.
따라서 처녀성을 지킨다는 것은 여성을 '없는 존재' 취급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가치를 선언할 수 있는 의미심장한 정치 행위이기도 했던 것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성공한 화가는 곧 부유한 화가를 뜻했다. 이 당시 예술가는 오늘날 연예인과 유사했다. 한번 뜨면 부와 명성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 속 사실들이 말해주듯이, 당연히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유럽 국가 중에서 물질면에서 가장 풍요로웠다. 이런 물질의 풍요를 바탕으로 영국은 유럽의 화가들을 런던으로 속속 불러들일 수 있었다. 프랑스 화가도 이때 영국으로 건너온다.
이런 대륙의 화가들은 대개 런던에 터를 잡고 영국인들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렸다. 이런 그림은 일종의 장르화' 인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발소 그림이 여기에서 기원한 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구태의연하고 조잡한 전원 풍경을 담은 그림들이 대량 생산되었던 것이다.
라파엘전파에게는 배부르다고 해서 저절로 사람들이 예술을 찾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19세기 영국의 예술 부흥은 상당 부분 의식 있는 지식층과 상류층의 계몽운동 덕분이기도 했다.
노동계급을 교육해야만 더 나은 사회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사회주의는 거의 일반 상식에 가까웠다. 요즘이야 사회주의 어쩌고 하면 대개 마르크스를 떠올리지만, 이 시대 에는 글줄 읽은 사람은 거의 모두 사회주의자였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특이하게도 영국은 독특한 공동체 성격을 기독교 전통에 뿌리를 둔 토착 사회주의가 잘 발달해서, 초기 사회주의자들이 거의 기독교인들이었다.

동굴' 에서 '거리' 로 눈을 돌려라
헌트의 그림 속에 있는 거울과 창문이 열쇠다. , 19세기 영국을 풍미한 주류 화풍은 거울이다. 한마디로 가상을 비취주는 것이라는 뜻 이다. 유명한 플라톤의 동굴을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거울의 예술은 플라톤의 것으로, 예술을 기교로 간주하고 자연에 대한 모방으로 보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관과 대치된다.
헌트의 그림은 아리스토텔레스로 플라톤을 비꼬는 그림이기도 하다. 숱한 가상의 예술이 난무하지만, 결국 양심의 소리는 자연과 동일화 된 예술에서 울려나오는 것이라는 상징의 의미를 헌트의 그림은 내포하고 있다.

(헌트: 레이디 샬롯)


헌트의 그림은 처녀의 눈이 거울이 아니라 창문을 향하게 했다. 헌트의 그림에 등장하는 저 방이야말로 빅토리아풍으로 변주된 플라톤의 동굴인 셈이다. 헌트의 입장에서 본다면, 타락한 욕망으로 점철된 그림 속의 방이야 말로 빅토리아 시대의 축소판이기도 했을 건이다. 이 어둠침침한 동굴에서 처녀는 지금 뭔가 계시를 받고, 조금 전까지 탐욕에 희롱당하도록 내버려두었던 자신의 몸을 돌연 창문을 향해 일으켜 세웠다. 뭔가 각성이 일어난 것이다. 이 처녀는 중년의 사내가 하나씩 선물해 주었을 방안의 술한 귀중품들을 순간 까맣게 잊어버린 듯 하다. 저 거울에 비친 창문 밖의 세계다.

(워터 하우스 : 레이디 샬롯)


원래 샬롯 섬의 여인은 고대 영국의 전설이라고 할 아서왕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이야기가 영국 토속 전설과 기독교가 서로 섞이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전설에 따르면, 샬롯이라고 불리는 섬에 한 여인이 유폐되어 평생토록 아서왕에 대한 이야기를 베로 짜도록 저주를 받았다. 게다가 이 여인은 결코 창문 밖을 직접 내다볼 수 없고, 오직 거울을 통해서만 바깥의 사물을 볼 수 있었다. 만약 거울을 통하지 않고 바같의 사물을 직접 바라 본다면, 이 여인은 죽음을 맞이하리리는 것이 저주의 내용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여인은 창밖으로 들리는 말 울음 소리를 듣고, 거울을 통해 바같을 내다보는데, 원탁의 기사로 유명한 난봉꾼 랜슬롯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인은 미남 랜슬롯의 모습을 보고 참을 수 없어서, 저주의 금기를 어기고 그만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게 되었다. 여인에게 바깥 세계를 보여주었던 거울이 깨어지는 것으로 저주는 실현되고, 여인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으로 여인은 랜슬롯을 보기 위해 배를 타고 랜슬롯이 있는 카멜롯 성으로 강물에 떠내려가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뭐 이런 시시껄렁한 얘기가 다 있나 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 전설은 겉보기처럼 그렇게 단순한 얘기가 아니다. 이 전설에 내포되어 있는 철학은 훗날 영국의 시인 테니슨에 의해 시로 되살아나서 라파엘전파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헌트의 그림은 소재로 삼은 테니슨의 시에 나오는 장면을 묘사되고 있다

투구 아래에서 출렁거렸네
흑단처럼 검은 그의 곱슬머리 말을 달릴 때 카멜롯을 향해 말을 달릴 때 강둑에서 강에서 그 모습을 수정 거울이 비쳤네
"티라 리라" 강가에서 랜슬롯 경은 노래했네
그 여인 짜던 천을 놓았네,그 여인 베틀에서 일어섰네
방을 가로질러 세 발자국을 걸었네 그 여인 수련을 보았네 투구와 깃털 장식 카멜롯을 내려다보았네
천이 바람에 펄럭이며 넓게 퍼지고 갑자기 거울 한복판에 금이 갔네
'마침내 저주의 때가 왔구나,"
샬롯 섬의 여인은 놀라울부짓었네

원래 이런 이야기들은 판본이 여럿이게 마련이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하나의 판본이지만, 이게 시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애초 라파엘전파는 시의 이미지와 회화의 이미지를 같은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라파엘전파의 그림들은 이런 문학작품의 이미지를 그대로 회화의 이미지로 옮겨놓은 것 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샬롯 섬의 여인에 관한 전설은 손 안탄 원형 그대로라고 보기 어렵고,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재구성 된 것이 아닌가 한번 의심해 볼 수 있다
이 전설은 마치 손발을 척척 맞추면서 앞서 내가 언급한 고전주의식 '재현 공간' 의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거울을 통해서만 현실을 볼 수 있는 샬롯 섬의 여인이야말로 고전주의 예술가의 운명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 인물인 것이다.
이 소재를 다룬 헌트의 그림은 동일한 소재를 다룬 다른 작가들의 그림에 비해, 극적인 구성력에서 단연 돈보인다. 라파엘전파는 아니었지만, 이들의 동반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존 워터하우스의 그림과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워터하우스의 그림이 과도한 감상주의 같다면, 헌트의 그림은 샬롯 섬의 여인에게 걸려 있던 저주가 현실이 되는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창문을 통해 불어 닥친 거친 운명의 바람에 마치 라푼젤처럼 길게 길러온 자신의 머리를 속수무책으로 허공에 풀어놓을 수밖에 없는 여인의 모습은 어떤 강인한 의기마저 느끼게 하는 구석이 있다. 이런 모습은 분명 앞서 쓰여진 시에 그려진 여인의 이미지와 상당히 다르다. 오히려 헌트의 그림에 그려진 여인은 마침내 도달한 저주에 놀라 떠는 가날픈 영혼이 아니라, 비운에 결연히 맞서는 근대 영웅 자체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이 그림에서도 헌트는 (깨어나는 양심)처럼 거울과 창문을 통해 고전주의에 바탕을 둔 아카데미의 인습을 비판하고 있다.
게다가 더 노골적으로 헌트는 샬롯 섬의 여인.에서 아예 거울을 깨트려버린다. 전통 규범을 비판의 시각으로 봤다는 점에서 이런 헌트의 태도는 마네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나 마네가 이런 비판을 기법의 혁신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것과 달리, 헌트는 상징 관념을 통해 이렇게 하려고 했 다. 헌트에게 상징이란 것은 종교의 신비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무엇이었다. 내가 보기에, 마네와 헌트를 가르는 차이점은 욕망에 대한 태도에서 드러난다. 헌트가 욕망을 금기시했다면, 마네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태도의 차이는 근대 문명에 대한 태도의 차이를 유발했다. 헌트와 라파엘전파들이 대체로 근대 기술문명에 대해 부정의 태도를 보였던 것과 달리, 마네를 필두로 한 인상파들은 기술의 효과를 적극 자신들의 기법으로 발전시켰다.

포르노그래피의 원리

(헌트: 고용된 양치기)


이 그림은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오는 에드가라는 인물의 대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 그림은 순박한 처녀 총각의 사랑 타령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양치기처럼 보이는 총각이 처녀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고 양떼도 여유롭게 풀을 뜯는 것처럼 보인다. 한가한 시골의 오후 한때를 담고 있는 듯한 이 그림은 그러나 겉보기와 전혀 다른 의미를 감추고 있다. 양치기가 처녀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을 자세히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나방이다. 그 나방의 등에 있는 건 놀랍게도 해골무늬다.
말하자면, 이 해골무늬 나방 이야말로 죽음을 뜻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죽음과 사랑이라는 중세식 주제의식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중세의 표현양식을 통해 문학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라파엘전파의 모토임을 감안 한다면. 헌트의 그림은 상당히 라파엘전파의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것 이라고 볼 수 있다.
원래 셰익스피어의 대사는 상당한 교훈을 담고 있다. 양을 돌보는 주임무를 방기하고 엉뚱한 짓만 하는 양치기를 비꼬는 내용인데, 말 하자면 할 일은 하지 않고 한눈을 파는 사람을 놀리는 것이다. 에드가 는 "양치기야, 자고 있나? 깨어 있나? 네 양이 밀밭에 들어갔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한마디로 양치기에게 정신 차리라는 뜻이다. 헌트 는 이런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근대의 정서에 맞게 변주해서 표현한다. 말하자면, 교훈을 담은 내용을 결합한 것. 이게 포르노그래피의 원리다. 포르노그래피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교훈성과에 로티시즘을 결합한 것이다.
지루하게 성행위를 반복해 보여주는 것이 포르노그래피의 형식 논리라면, 이 형식 논리를 구성하는 내용은 지극히 교훈성이 짙은 권선징악의 이야기다. 흥미롭게도 여기에서 우리는 헌트나 다른 라파엘전파 화가들이 섹슈얼리티를 '여가' 와 결합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들은 먹고 노는 것 중 하나로서 섹슈얼리티를 간주하고 있다. 이것은 라파엘전파의 잘못이라기보다 성을 남성을 위한 휴식' 으로 본 근대의 코드이기도 하다.

못난 것' 을 그리는 것은 죄악

(포드 브라운 : 영국의 가을 오후)


이런 관점에서 라파엘전파는 농땡이 치는 삶을 비판하고 근면하고 성실한 노동' 을 찬양하기도 한다. 포드 브라운 이 그린 (영국의 가을 오후)라는 그림은 햄스테드에 있던 화가의 집에서 바라본 풍경을 그린 것인데, 브라운은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 "극도로 비참하고 구질구질한 느낌에 사로잡혀 거의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고 고백했다.
이 그림은 9기니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렸다. 9기니면 189실링 정도인데. 189실링은 2.268펜스, 즉 22파 운드 68펜스가 된다. 지금 한국 돈 시세로 환산하면 약 4만 5천 원 정도 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건 이 그림을 넣어 팔았던 액자 값이 4기니나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정작 그림은 84실링, 지금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2만 원 정도다. 절반 정도가 액자 값이었다는 말이다. 이런 가당찮은 상황에서 브라운은 "빛때문에 이렇게 못 난 걸 그렸나"라는 주변 비난을 듣는다. 이런 의문에 브라운은 '왜냐하면 그냥 저런 풍경이 뒤창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 그림에 잘 나타나듯이, 브라운은 다른 라파엘전파 화가들과 달리 풍경을 풍경 자체로 그리고 있다. 한마디로 19세기 런던 근교의 풍경을 가감 없이 그린 것이다. 브라운에게 "이렇게 못난 것"이 라고 한 것은 곧 이런 사실성' 이었다. 근대 산업사회의 풍경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야말로 '못난 행위' 였던 것. 브라운의 그림은 제목 그대로 오후의 햇살이 드리운 영국의 가을 풍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멀리 보이는 런던은 스모그로 뒤덮여 있는데, 이는 근대가 자연을 침식해 들어오는 광경을 상징한다. 시간은 약 오후 세시, 계절은 10월 말 쯤 된 듯한 풍경이다. 그림의 전경에 보이는 두 남녀는 연인이라기보 다 동네 친구들처럼 보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집으로 찾아드는 비둘기 는 오후가 이속해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햄스테드는 일찍이 키츠의 시에도 등장하는 아름다운 전원 지역이었다. 그러나 키츠가 알고 있던 그 햄스테드는 브라운의 그림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는 듯하다. 마치 인상파의 그림에 등장하는 아르장퇴유 처럼 시골도, 도시도 아닌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근대의 산업화는 화가들로부터 자연을 더욱 멀리 쫓아내는 원인이기도 했다. 이제 자연은 상상 속에나 존재할 수 있었다. 브라운에게 주문한 것은 이런 현실을 그리지 말고 상상 속의 유토피아를 그려내라는 것. 물론 브라운의 그림이 이런 상상력을 현실성에 추가하지 않은 건 아니다. 빨간 지붕과 파란 양산의 선명한 대비만을 놓고 봐도 그렇다. 브라운은 현실을 그리려고 했다기보다, 그 현실이 자신에게 부여하려는 인상' 을 그리려 했다고 보는게 옳다. 이런 현실은 분명 현실과 비숫하게 보이지만 현실 그 자 체는 아니다. 이미 낯선 현실이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먼곳을 바라보는 월턴이라는 그림에서 브라운은 다시 빨강과 파랑의 원색 대비를 통해 자연의 인상을 드러낸다. 이런 방식은 헌트의 그림 우리네 영국 해안에서도 보인다. 헌트는 이 그림에서 자연 자체를 그리기보다 이것이 화가에게 부여하는 인상을 그리고 있다. 이런 점은 확실히 주제의식을 기존의 문학의 서사에 담아 강력하게 표현하는 라파엘전파의 특색과 다소 거리가 있다.

노동' 이 아니라 일' 이라고 한 까닭

옥스퍼드 사전을 찾아보면 일의 뜻,은 "목적이나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쏟는 마음과 육체의 노력에 관련한 행동"으로 "임무를 달성"하거나 "수입을 버는 행위"라는 의미를 포함한다고 되어 있고 노동,은 "아주 힘든 육체 작업"으로 "손수 작업을 하는 육체 노동자"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고 되어 있다. 한마디로 일은 뭔가 지적인 것을 육체의 노력을 통해 현실화하는 것이라면 노동은 그냥 노가다'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의미의 차이는 두 단어가 영어로 유입된 경로가 서로 다르기 때 문이기도 하다.
work가 독일어 계통에서 온 것이라면, labour는 프랑스어 계통에서 왔다. work의 어원이 werk로서 뭔가 '작품' 같은 의미 를 함축하고 있는 데 반해, labour는 '고생' 이라는 어원의 의미를 갖고 있다.
영어에서 극작가를 뜻하는 단어가 playwriter가 아니라 play- wright인 건 이 때문이다. builder 또는 maker를 뜻하는 wright는 work와 어원상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영국은 노동자를 일컬어 labourer' 라고 하지 않고 worker 라고 부르는 경향이 강한데, 이런 전통이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아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현실을 잊은 그림은 슬프다

(브라운 : 영국의최후)


브라운이 그린 (영국의 최후)는 이런 이상사회에 대한 염원이 어떤 의미를 감추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있 는 남자는 라파엘전파의 창립멤버 중 한 명인 조각가 토머스 울너다. 울너는 골드러시가 한창일 때 실패와 가난만을 남겨준 영국생활을 청산하고 호주로 건너간다. 브라운은 이 골드러시의 이주 상황을 화폭에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울너에게 호주는 영국생활의 실패를 만회할 기회의 땅이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는 불안과 결기 같은 것이 그와 부인의 얼굴에 절절하다.울너는 실패한 삶을 만회하기 위햐 호주라도 있지만, 호주에 살던 원주민들은 어땠을까? 이 문제는 서양 사회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는 '탈식민주의' 라는 이론을 만들어 냈고 영국을 신사로 만들어준 그 유산은 식민지에서 온 것이다.
브라운의 사회의식은 여기에 대해 무지하다. 이는 인상파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인상파에게 전통이 없는 것 처럼 보인 일본 그림은 사실 서양보다 더 유구한 '전통' 의 산물임을 그들은 몰랐다. 이런 서양의 무지가 '오리엔탈리즘' 을 만들었냈다는 말이 있다.
브라운이나 라파엘전파의 이상주의는 빅토리아 시대의 주류 정서에 어긋나는 것이었다.이들에게도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19세기는 괴로운 시대였을까? 라파엘전파가 상상한 순수 자연은 브라운이 표현했던 사회를 뿌리부터 개혁할 무엇이었지만, 이를 현실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화도 문학도 예술도 이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할 때 이들을 엄습하는 건 죽음이었다.
멜랑콜리는 확실히 낭만주의에 기반을 둔 것이지만, 이렇게 시대에 뒤쳐진 낭만주의가 빅토리아 시대에 라파엘전파에 비해 더 호황을 누린 것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감상주의가 기승을 부리도록 현실은 가만 놔두지 않았다.
라파엘전파는 그들에게 자연은 '영국스러운 것' 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역사의 현실은 이들에게 영국식 정원에서 티파티를 즐길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들은 정원에 핀 수선화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으로 전쟁을 추상할 수밖에 없는 관념의 멜랑콜리 속에 자신들의 정치의식을 고립시켜야만 했다.
라파엘전파는 도피 성격이 강했고, 인상하는 진취 성향이 짙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인상파 역시 서로 다른 흐름들이 하나로 모여서 형성된 유파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풍경을 다르게 그려낸 인상파들은 그 풍경만큼이나 다른 내면을 소유하고 있었다.

근대의 현실을 차갑게 직시한 마네

(마네: 아르장퇴유)


먼저 마네의 아르장퇴유 라는 그림을 보자. 아르장퇴유는 모네가 파리 코뮌 이후에 파리를 떠나 거처를 마련 한 곳이기도 하다. 한때 아르장퇴유는 한적한 도시의 근교 지역이었지 만, 1874년에 이 지역은 오스망의 도시 정비작업으로 인해 옛 모습을 많이 잃어가고 있었다. 라파엘 전파나 인상파의 시기는 그들의 그림처럼 그렇게 아름답지 못했다. 런던이나 파리는 콜레라 같은 전염병과 생활 오수의 악취 때문에 사람 살 곳이 아니었다. 이런 파리의 도심 정화를 위해서 공장을 외곽으로 내쫓고 하수도를 파서 오폐수를 되도록 도심에서 멀리 떨어 진 곳으로 보내려고 했다. 결국 이런 도시계획에 희생된 곳이 아르장퇴유 같은 도시 근교 지역이었다.
마네의 그림에서 배경으로 처리되어 있는 강물의 색깔이 쪽빛 인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마네가 일부러 물빛을 과장해서 그린게 아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아르장퇴유에 집결해 있던 염색공장은 인도나 중국 에서 들여온 쪽으로 천을 염색하는 일을 주로 했고, 이런 공장에서 배출한 폐수로 인해 강물이 쪽빛으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마네 :보트놀이)


(보트놀이)에 나오는 강물 또한 이런 빛깔로 그려져 있다. 물론 (보트놀이)에 사용 된 기법은 다분히 모네를 연상하게 하는 것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마네가 모네에게 보인 호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아르장퇴유를 바라 보는 관점에서 이 둘은 상당히 다른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고요하고 한적한 광경을 그린 듯한 (아르장퇴유)는 이런 첫인상과 무관하다. 오히려 이 그림은 근대화의 어두운 면을 묘사에 근거하지 않고 표현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네의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려한 모자를 쓴 여인의 뒤편으로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공장 굴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네에게 아르 장퇴유는 인간의 욕망을 벗어난 자연' 이었다기보다, 근대의 모순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오목거울이었다. 이처럼 마네는 근대화의 모순성 을 외면하지 않고, 그 모순성 위에 자신의 예술을 올려놓고자 했다 이와 달리 동일한 아르장퇴유를 그린 모네의 그림은 전혀 다른 표정 을 하고 있다. 아르장퇴유의 요트경주 에 그려진 아르장퇴유의 풍경은 마네의 것과 사뭇 다르다. 마네에게 아르장퇴유는 여가를 즐기기 위한 곳이면서 동시에 근대의 산업화가 자연을 침범해오는 모순의 공간이다. 말이 다소 복잡한 듯하지만, 돈을 벌 면 놀 시간이 없고, 놀 시간이 나면 돈이 없는 노동자의 삶을 마네가 이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사진기술 발달이 인상파를 돕다

모네는 대중문화의 차원에서 거래의 대상이었던 회화를 진리 탐구의 텍스트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그림의 내용을 고상하게 만드는게 아니라 기법을 전통에서 이탈 시키면서
이뤄졌다. 모네는 마네에 비해 이런 기법의 실험을 더 강화했고, 오히려 이 실험과 혁신에 대한 '자의식' 을 색채에 기탁해 표현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예술이 난해해진게 이런 외부 요인의 영향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기계적인 토대-상부구조 개념에 근거한게 아니라고 할지라도, 에밀졸라의 작품 같은 현대소설이 사진기술과 경쟁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는데, 이런 주장은 기술을 진리와 아무 상관없는 것으로 본 신칸트주의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이런 주장은 스탈린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비평적 견제이기도 했지만, 전제는 알게 모르게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앞서 말한 사진기술의 발달로 인해 미술이 내면을 표현하는 쪽으로 나아갔다는 주장이다.
진중권은 20세기 추상미술의 등장과 카메라의 보급을 서로 관련된 것으로 보면서 그 이유로 인간의 손이 카메라보다 자연을 더 완벽하게 모방 할 수 없기 때문이 라고 말한다. 사진기술의 발달이 인상파의 출현을 도운면이 있음은 분명하다. 사진기술의 출현으로 피해를 입은 쪽은 인상파가 아니라 오히려 관습처럼 만들어진 장르화 였다. 특히 초상화가 여기에 해당했는데, 마네가 막 화가로서 첫발을 내디딜 무렵에 이미 이 고전 장르의 몰락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마네가 (올랭피아) 같은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 었던 조건이 그때 조성되어 있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네와 달리, 영국에서 이런 대세를 제대로 읽지 못해 신세를 망친 사람이 있었으니, 사진기술의 출현으로 초상화 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 무럽, 무모하게도 초상화가로 개업을 했다가 결국 알코올 중독에 빠져 세상을 등졌다.

순수-참여논쟁의 허구성

중요한 건, 근대예술과 기술의 관계가 아니라, 예술성과 상업화의 긴장이다. 근대예술이 문제로 삼은 건 기술이 아니라 상업화가 가속시킨 가치의 세속화였다. 인상파에게 심각했던 것은, 자신의 예술행위를 분리하는 것이었다.
말장난 같지만, 작은 모더니즘은 `근대성을 탐구하는, 또는 그것에 저항하는 예술의 경향 이고 큰 모더니즘은 예술의 자율성 자체를 신비한 것으로 믿는 예술 의 경향' 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냥 편하게 작은 모더니즘을 아방가르드 예술' 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독일의 비평가는 아방가르드의 지경을 넘어서 일종의 제도로 안착되어버린 큰 모더니즘은 "예술은 사회로부터 완 전하게 독립된 것"이라는 환상을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말하자면, 부르주아 사회에서 자신의 예술행위를 분리하고자 한 초기 모더니스트의 행위들은 망각되고, 그들의 예술행위가 낳은 현상만을 강조함으로써 또다른 미학 관습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요지다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개념을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보는 것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어쨌든 인상파의 그림을 분석해보는 것 만으로도, 예술이 사회와 무관한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으므로, 나름대로 그의 주장이 타당함을 알 수 있을 듯하다.
한때 한국에서 기승을 부린 순수-참여논쟁 같은 건 아예 논쟁거리가 되지 못하는 거짓 문제인 것이다. 말도 되지 않는 논쟁이 한동안 한국사회에 서 무슨 대단한 비평 담론처럼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식민지 통치와 냉전시대를 거쳐온 한국 근대성의 형성 과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 이다. 서정주의 시인의 친일행위를 용서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 것 처럼 그의 시를 규정하는 아름다움은 친일행위를 통해 탄생한 '이데올로기' 인 것이다. 그의 시에서 마네나 모네가 평생을 걸쳐 대결한 그 치열한 현실 탐구를 찾아보기 힘들다. 예술은 단지 정치의 관점에서 올바르다고 하여 항상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반대로 정치의 관점에서 올바르지 않더라도 특정 예술작품은 아름다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간계급의 무표정한 얼굴

어떻게 생각하면 이들에게 중요했던 건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매개로 드러나는 리얼리티의 다른 면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들 그림을 이렇게 볼 수 있는 까닭은. 먼저 이들은 한국의 순수 문학과 달리 '미의 영원성' 같은 것을 신봉하지 않았다. 이들의 그림에 난무하는 변화무쌍한 색채의 군무는 미의 영원성을 표현하고 있다기보다, 미의 순간성, 또는 그 심미 체험의 과정 자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들의 그림은 기법의 혁신과 실험에 대한 자의식을 기반으로 근대성에 개입했다. 앞에서 모네가 빈번하게 공화 국기와 포플러를 그려서 공화파에 대한 암묵의 지지를 표명했다고 했지만, 이번에 거론한 아르장퇴유 그림들 또한 이런 정치성과 무관한 게 아니다. 놀랍게도 이 그림들은 부르주아가 아닌 중간계급의 쾌락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마네나 모네의 그림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요트들이 바로 증거다. 당시 중간계급은 도시 근교에서 요트나 보트를 타면서 여가생활을 즐긴 반면, 부르주아는 증기선을 타고 장거리로 초호화판 휴가를 떠나곤 했다. 게다가 마네는 파리지앵 중간계급의 전형을 중심인물로 설정하고, 모네의 기법을 흉내 내어 이들이 화면의 전면을 차지하도록 해놓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린시절을 보낸 그 아르장퇴유는 이제 사라지고 친지들이나 친구들과 먹을 감거나 피크닉을 나오곤 했던 센 강은 염색공장에서 돌려보내는 폐수에 오염되어 있으며 파란 하늘은 공장에서 뿜어내는 연기로 퇴색했다.
이곳에서 바쁜 도시의 일상을 떠나 잠시 여유를 즐기는 중간계급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다시 말해서 이들의 무표정이야말로, 근대성이라는 모순의 현실에 대처하는 중간계급 다운 처세술이었던 것이다. 이런 무표정, 또는 현실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야말로, 그토록 안쓰럽게 한국에서 요란 했던 순수 문학론이 닮아 가려고 한 그 무엇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대 도시의 풍경이 들려주는 이야기

(피사로 :퐁투아즈의 외딴집)


런던의 내셔널갤러리는 피사로의 영국 그림만을 따로 모아 특별 전시회를 열었는데, 피사로의 그림에 포착된 풍경과 현재의 풍경이 서로 흡사하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워낙 변화를 싫어하는 영국인의 천성으로 인하여 이런 유사성이 발생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약간 각도를 달리해서 보자면 피사로의 그림이 정확하게 근대도시, 또는 '근대의 도시성' 자체를 제대로 그리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피사로에게 도시는 사라져야 하거나, 우리가 없애야 할 만악의 근원이 아니었다. 이 지점에서 피사로는 모네의 유토피아주의나 드가의 경험주의와 결별한다
피사로에게 중요한 건, 도시 속에 구현될 수 있는, 또는 도시와 여전히 공존하고 있는 자연이다. (퐁투아즈의 외딴집) 은 우리에게 이런 공 존의 양상을 보여준다. 화가, 또는 관객은 그림 밖에서 흰색 구름이 떠가는 퐁투아즈의 변두리를 본다. 그 명멸하는 순간에 대한 묘사가 얼마나 극진한지, 관객은 자기 피부에 19세기 프랑스의 햇살과 바람이 와 닿는 듯 느낀다. 그러나 이런 풍경은 관객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그림의 대상에 대한 피사로의 태도가 달랐던 피사로는 모네의 경우와 달리, 근대성의 재현이라는 난해한 문제를 정면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정치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