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사람 사이에서
나는 현직 미국 경찰이다.
그리고 이 일을 꽤 오래 해 왔다.
그동안 운 좋게도 부서에서 Deputy of the Month상을 여러 번 받았다.
부서에서 남·여를 구분해서 시상하는 걸 통틀어, 나는 다섯 번 받았다.
경찰서 안에서 주는 상이라 익숙했고, 형식도 늘 단순했다.
이름을 불리고, 상장 한 장 받고, 악수 한 번 하고 끝.
솔직히 말하면, 그게 전부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조금 낯선 상을 하나 받게 됐다.
PVSA – President’s Volunteer Service Award.
백악관 이름이 적힌 배지와 상장이 함께 나오는 상이었다.
대통령 자원봉사상이라는 그 상이 내 책상 위에 놓였을 때, 솔직히 좀 생소했다.
나는 원래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고,
정치적으로도 공화당 쪽에 더 가깝다.
트럼프에게 직접 투표했던 사람이고,
내 가치관도 그쪽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 그 상장을 받을 때 마음이 묘했다.
‘누가 주는 상이냐’보다
‘내가 뭘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 마음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았다.
강당에 올라가 배지와 상장을 받아 들 때
나는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기쁜지, 어색한지, 솔직히 나도 잘 몰랐다.
그리고 그날, 더 잊히지 않는 장면을 보게 됐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한 동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방금 받은 배지와 상장을 손에 들고 잠깐 서 있더니—
나를 보면서 조용히 걸어가 쓰레기통에 그대로 던져 넣었다.
“바이든이 주는 건 필요 없어.”
그 한마디만 남기고.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이상하게 말이 막혔다.
정치 성향이 다를 수는 있다.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상은, 최소한 나에게는
정치적 상징이라기보다
내가 현장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인정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자주 흔들린다.
나는 무엇을 지지하는 사람인가.
정당인가, 가치인가, 아니면 그저 익숙함인가.
요즘 한인 사회에서 나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다.
“경찰로서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
“서류 미비 상태의 사람을 만나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거냐?”
“부서는 어떻게 대응하느냐?”
“ICE 단속은 솔직히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경찰이고, 동시에 한인이다.
법을 집행해야 하는 사람이고,
사람의 사정을 눈앞에서 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답이 늘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용기를 내어 내가 보고 겪은 것들을 그냥 ‘의견’으로만 남기지 않고 소설이라는 형태로 옮겨 적고 있다.
참고로 내가 지금 연재 중인 「너를 품에 안으면」은,
내가 어릴 때부터 직접 겪었거나 현직 경찰로서 현장에서 마주했던 사건과 감정들을 바탕으로 소설적으로 재현한 이야기다.
다만 진행 중인 사건은 다룰 수 없어서, 어떤 이야기를 옮길지 머리가 쥐가 날 정도로 엄선했고,
특정 개인이나 사건이 식별되지 않도록 시간·장소·관계·세부 사실은 일부 바꾸거나 여러 경험을 섞어 각색했다.
어떤 사건들은 너무 잔인하고 참혹해서… 아직은 글로 옮기기조차 힘들어, 아예 빼두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하나다.
요즘 현실에서 더 교묘해지는 사기 범죄로부터, 누군가가 “설마 내가?”라고 방심하는 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걸 경각심으로 남기고 싶어서다.
나는 현장에서 사기 피해로 상당한 액수를 잃고, 사람 하나가 눈에 띄게 무너지는 걸 직접 봤다.
그때의 표정과 눈빛—그 얼굴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소설 속 가해자들 중에는 불법으로 넘어와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도 나온다. 그건 누군가를 낙인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현장에서 본 현실의 단면을 서사 안에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소설의 장면들이 전부 ‘남의 일’이 아닌 이유를, 나는 오늘도 현장에서 본다.
아이들과 부모를 떼어놓는 장면을 보면, 나는 마음이 먼저 흔들린다.
목숨 걸고 넘어온 사람들이다. 위험한 나라, 위험한 현실에서 가족을 지키려고—한 가닥 희망을 품고 이 땅에 발을 디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불법은 불법이다. 그건 인정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또 다른 얼굴들이 떠오른다.
미국에 오기 위해 오랜 시간과 돈을 들여, 하루하루 정식 절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서류를 맞추고, 인터뷰를 준비하고, 몇 년을 버티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뭐가 되나.
법을 지키며 기다린 시간이, 성실함이, 인내가—결국 “바보 같은 선택”이 되어버리는 건가.
그리고 더 참기 힘든 건, 일부의 반복적인 재입국과 범죄다.
추방을 당하고도 다시 돌아오고, 그 뒤에 말로 담기 힘든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을 마주할 때, 내 속이 뒤집힌다.
법정에서조차 죄책감 대신 “또 돌아오면 된다”는 얼굴을 하고 피식 웃어 될 때—그 순간은 분노보다 먼저, 내가 매일 붙잡고 있는 질서와 공정이 조롱당하는 느낌이 든다.
그때 내 안의 파도는 앞으로 치지 않는다. 거꾸로 쏟아진다.
또한 나는 공산주의를 지지할 수 없는 사람이다. 군인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반공 교육을 받고 자랐고,
역사 속에서 공산주의가 남긴 비극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민주주의라고 해서 늘 정의롭다고만 믿지도 않는다.
어느 체제든 욕심과 이익 앞에서는 사람을 다치게 해 왔다.
나는 공화당을 지지해 왔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마음이 무겁다.
불법 이민 범죄자를 단속하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밀어붙이는 방식,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사람”이 아니라 “숫자”가 되는 순간을 볼 때,
나 역시 흔들린다.
그래서 요즘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부르고 싶다.
극단이 아니라 상식.
진영이 아니라 사람.
이념이 아니라 기본적인 존중.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좌파, 우파, 진보, 보수.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소리만 커지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적당히 하고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