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의 새 친구, 쿵쿵이

이제 혼자 아니야

by 스팅비 StinG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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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루는 또 떠오른 게 있었어.
학교 친구 봄이.

봄이는 늘 씩씩하고 귀엽게 웃는 애였어.
근데 가끔, 봄이가 웃는 얼굴이… 진짜 웃는 게 아니라 “웃는 척” 같을 때가 있었어.


하루는 쿵쿵이를 꼭 안고 속삭였어.

하루: “쿵쿵 아… 봄이도 이상해.”
하루: “근데 봄이네 집은… 우리랑 반대야.”
하루: “우리 집은 아빠가 엄마한테 그러는데… 봄이네는 엄마가 아빠한테 그래.”


하루: “쿵쿵 아… 도와줄래?”

쿵쿵이는 아주 짧게 대답했어.

쿵쿵이: “응. 근데 약속 하나. 하루는 아직 어리니까,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않기.”
하루: “응. 혼자 안 할게.”


그날 저녁, 봄이네 집에서도 문이 “딸깍” 닫히자 공기가 바뀌었어.
낮에 있던 집이 아닌 것처럼, 갑자기 숨이 답답해졌어.

엄마: “아… 진짜 또 늦었네?”
아빠: “미안… 회사 일이 좀—”
엄마: “회사? 또 그 소리.”
엄마: “맨날 회사, 회사… 그 말만 하면 다 끝나냐?”


엄마: “내가 너보다 네 살이나 더 먹었어. 근데 내가 더 힘들어.”
엄마: “내가 언제까지 너 뒷바라지까지 해야 돼?”
아빠: “그런 뜻이 아니라…”
엄마: “그럼 무슨 뜻인데?”

엄마: “야, 그리고 너만 나가서 일해?”


엄마: “네가 나보다 쥐꼬리만큼 더 번다고 그게 그렇게 생색낼 일이야?”
엄마: “나도 일해. 나도 밖에서 일한다고!”

엄마: “근데 집에 오면 뭐가 달라져?”
엄마: “난 퇴근해도 또 일해. 니들 뒤치다꺼리 나하고 있고.”
엄마: “밥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엄마: “내가 왜 퇴근하고도 부엌으로 출근해야 돼?”


엄마: “넌 들어오면 씻고, 밥 차려주면 먹고, 바로 누워서 폰만 쳐다보고 있잖아.”
엄마: “나는 들어오자마자 매일 밥 해야 하고, 애부터 챙기고, 집안일까지 다 도맡아 하고 있잖아!”

엄마: “그리고 늦게 들어오면 ‘미안’ 한마디면 끝이야?”
엄마: “미안하면 내일은 일찍 와. 내일은 좀 도와. 알았어?!”
엄마: “근데 내일도 똑같겠지. 맨날 그랬으니까.”

엄마: “지겹다… 진짜.”


엄마는 밥상에 그릇을 “탁” 내려놓았어.
젓가락이 바닥에 떨어지며 “짤랑” 소리가 났어.

아빠는 허리를 숙여 주우려 했고, 엄마는 바로 쏘아붙였어.


엄마: “이거 봐. 이런 게 무능력한 거야.”
엄마: “뭘 해도 느려 터져 가지고… 아휴 답답해.”

아빠: “… 내가 더 신경 쓸게.”
엄마: “신경?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이란 말이야!”


엄마가 벌떡 일어나더니 주방 쪽으로 가서 뭔가를 집었다가, 탁— 하고 내려놓았어.
던진 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봄이 귀에는 ‘던지는 소리’처럼 들렸어.
그 소리만 들으면, 봄이 목이 먼저 꽉 막혔어.


엄마: “밥? 나 오늘 밥 하기 싫어. 알아서들 먹든가.”
엄마: “진짜 지겨워. 매일 똑같아.”
엄마: “이놈의 집구석… 숨 막혀.”


봄이가 조심히 말했어.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자기 말이 자기 귀에도 안 들리는 것 같았어.

봄이: “엄마… 나 배고파…”

엄마는 얼굴을 돌리지도 않고 말했어.

엄마: “뭐? 넌 지금 그게 입에서 나와?”
엄마: “너만 안 낳았어도— 나 진작 여기서 나갔어.”


엄마: “나 진짜… 이 거지 같은 인생이 지겨워.”
엄마: “내가 미친년이지. 저런 인간한테 뭐가 좋다고 결혼을 해가지고…”
엄마: “이런 꼴을 보고 살고 있는 게…”
엄마: “난 너한테 속아서 결혼한 거라고!”


그 말은 원래 아빠에게 가던 불똥이었는데, 봄이에게도 튀어 버렸어.
봄이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었어.

맞은 건 아닌데—
맞은 것처럼 아팠어.
가슴 안쪽이 콱 눌린 것처럼, 숨이 잘 안 쉬어졌어.

눈물이 올라왔는데, 봄이는 입술을 꽉 깨물었어.
울면 소리가 새어 나올까 봐, 그러면 엄마한테 또 혼날까 봐.


아빠가 조용히 봄이 옆으로 와서 말했어.

아빠: “봄아… 방에 잠깐 들어가 있을래?”

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어.
문을 닫고 나서도, 밖에서 또 “쿵” 하는 소리가 들렸어.
뭔가가 벽에 부딪힌 소리 같았어.


그리고—
아빠랑 엄마 목소리가 서로를 덮어버리듯 커지기 시작했어.
단어들이 칼처럼 겹쳐서, 봄이 귀에 꽂혔어.


다음 날 학교에서 봄이는 평소처럼 웃는 척했어.
입꼬리는 올라갔는데, 눈은 하나도 안 웃었어.
마치 얼굴에 ‘괜찮음’ 스티커를 붙여놓은 것처럼 보였어.


쉬는 시간에 하루가 조용히 봄이 옆에 앉았어.

하루: “봄아… 어제 집에서 또 엄마랑 아빠랑 싸웠어?”
봄이: “아니야. 별거 아니야.”

봄이 목소리는 웃는 목소리가 아니었어.


하루는 쿵쿵이가 알려준 대로, 길게 묻지 않았어. 대신 아주 짧게 말했어.

하루: “별거 아니라도… 네 얼굴이 좀 슬퍼 보여.”

하루: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하루: “근데… 네가 무서웠으면, 그건 중요한 거야.”
하루: “내 친구 쿵쿵이가… 이렇게 말하래.”


봄이는 손톱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봄이: “쿵쿵이? 쿵쿵이가 누구야? 너 그런 친구가 있었어?”
하루: “응. 내 친구야. 나중에 소개해 줄게.”

봄이는 더 작게,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봄이: “엄마가 아빠한테… 맨날 무능력하대.”
봄이: “물건도… 탁탁 내려놓고… 막 소리 지르고.”
봄이: “근데 제일 싫었던 건…”
봄이: “나한테 ‘너만 안 낳았어도’라고 했어.”


봄이는 울고 있었어.
근데 이상하게도, 울면서도 울지 않는 척했어.
눈물만 조용히 떨어지고, 입술은 꽉 다문 채였고, 어깨가 아주 조금씩만 떨렸어.
봄이는 손가락으로 손톱을 뜯다가 멈췄다가… 또 뜯었어.


그게 더 안쓰러웠어.
봄이는… 늘 그렇게 참고 버틴 애 같았어.
울음도, 말도, 숨도— 다 조용히 해버리는 애처럼 보였어.

하루는 숨을 한 번 삼켰어.
괜찮다는 말이 목구멍에서 걸렸어.


그리고 쿵쿵이가 알려준 첫 문장을, 그대로 꺼냈어.

하루: “그 말… 진짜 아픈 말이야.”
하루: “봄아, 너 이상한 거 아니야.”
하루: “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하루는 가방에서 쿵쿵이를 조심스럽게 꺼냈어.
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하루가 속삭였어.

하루: “여기… 쿵쿵이.”
하루: “나도 힘들 때 얘랑 얘기해.”
하루: “쿵쿵이가… 도와줄 거야.”


봄이는 흘리던 눈물을 손등으로 급하게 닦고, 훌쩍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

봄이: “곰인형이… 어떻게 도와줘…”
하루: “그냥… 우리끼리 비밀 목소리.”
하루: “말이 막힐 때, 그게 도움이 돼.”
하루: “내가 무서울 때, 쿵쿵이가 같이 있어줘.”


하루는 쿵쿵이를 두 손으로 들어, 봄이 앞에 조심스럽게 내밀었어.
마치 너무 약한 걸 건드리면 부서질까 봐, 숨까지 줄인 것처럼.

하루: “자… 여기.”
하루: “당분간은 쿵쿵이가 도와줄 거야.”
하루: “나보다… 네가 더 쿵쿵이가 필요할 것 같아.”
하루: “너랑 같이 있어줄 거야. 앞으로 계속.”


봄이는 대답을 못 했어.
목 안쪽이 뜨거워져서, 말이 나오려 하면 울음이 먼저 올라왔어.

봄이는 눈가를 한 번 문지르려다가… 멈췄어.


그리고 조심조심 쿵쿵이를 받아서, 두 팔로 꼭 끌어안았어.

눈물이 또 올라왔는데, 봄이는 이번엔 입술을 깨물지 못했어.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겁내던 애가,
그 순간만큼은 참는 걸 잊은 것처럼—

작게, 아주 작게 훌쩍였어.


봄이: “… 고마워…”

쿵쿵이 털이 봄이 볼에 닿았고, 봄이는 더 세게 안았어.
마치 쿵쿵이가 없으면, 자기 마음도 같이 떨어질 것처럼.
따뜻한 게 닿아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것처럼.


봄이가 쿵쿵이 배를 아주 살짝 눌렀어.

“쿵—”

쿵쿵이: “안녕, 봄아.”
봄이: “… 안녕.”
쿵쿵이: “봄아, 너 무서웠겠다.”


봄이는 고개를 끄덕였어.
고개만 끄덕였는데도, 눈물이 뚝 떨어졌어.

봄이: “응… 근데 엄마는 맨날 나 때문이래.”

쿵쿵이: “그건 사실이 아니라, 봄이를 붙잡는 말이야.”
쿵쿵이: “봄아, 먼저 이거부터.”
쿵쿵이: “너 잘못 아니야.”


봄이가 눈을 깜빡였어.
눈물이 고였는데, 꾹 참는 얼굴이었어.
울면 안 된다고 배운 애처럼, 눈물만 안으로 삼켰어.

봄이: “그럼… 나 뭐 해야 돼?”


쿵쿵이는 이번엔 확실하게, 딱 필요한 말만 해줬어.

쿵쿵이: “봄아, 제일 먼저는 안전이야.”
쿵쿵이: “소리가 커지고, 물건 소리가 나고, 무섭다고 느껴지면…”
쿵쿵이: “설명하지 말고, 먼저 자리를 피해.”


봄이: “근데… 그러면 엄마가 더 화낼까 봐… 더 무서워져…”
쿵쿵이: “봄아. 그래도 안전이 먼저야.”

쿵쿵이: “그리고 봄아, 말은 짧게. 딱 하나만 해.”
쿵쿵이: “길게 말하면 너만 더 힘들어져.”


쿵쿵이: “이것만 해.”

봄이: “그게 뭐야?”

쿵쿵이: “‘저 방에 있을게요.’”
쿵쿵이: “이 말만 하고, 바로 이동하기.”

봄이: “… 저 방에 있을게요.”
하루: “응. 그거면 돼.”


잠깐 조용해졌어.
봄이는 여전히 쿵쿵이를 놓지 못했어.
손가락 끝에 힘이 풀릴까 봐, 놓치는 순간 다시 무너질까 봐—
품 안에서 더 꼭 끌어안았어.


그리고 쿵쿵이는 마지막을 가장 단단하게 말했어.

쿵쿵이: “그리고 봄아. 너 아직 어리잖아.”
쿵쿵이: “절대 혼자 해결하려고 하면 안 돼.”
쿵쿵이: “선생님이나 상담 선생님, 이모, 할머니…”
쿵쿵이: “믿을 수 있는 어른한테 말해야 해.”


봄이: “근데 선생님한테 말하면… 엄마가 더 무서워질 것 같고…”
봄이: “우리 집이 망가질까 봐 무서워…”

쿵쿵이: “봄아.”
쿵쿵이: “이미 봄이는 엄마가 무섭잖아.”

쿵쿵이: “그리고 네 마음도… 지금 아프고 힘들잖아.”

쿵쿵이: “그러니까 목표는 집을 ‘그대로’ 두는 게 아니야.”


쿵쿵이: “목표는 봄이랑 아빠가 안전해지는 거야.”

쿵쿵이: “그리고… 엄마도 더 무섭게 되기 전에, 멈추게 하는 거야.”

쿵쿵이: “무서울 수도 있어.”

쿵쿵이: “근데 가끔은…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어.”


하루가 봄이 손을 살짝 잡았어.
봄이 손이 차가웠어. 너무 차가워서, 하루가 더 꼭 잡았어.

하루: “나랑 같이 선생님한테 가자.”
하루: “혼자 말 안 해도 돼. 내가 옆에 있을게.”

봄이: “진짜… 같이?”
하루: “응. 같이.”


그 말에 봄이는 한 번 더 쿵쿵이를 꼭 끌어안았어.
이번엔 숨이 조금 새어 나왔어.
참는 숨이 아니라— 겨우 살아 있는 숨처럼 느껴졌어.

봄이가 쿵쿵이 배를 다시 살짝 눌렀어.

“쿵—”

쿵쿵이: “봄아.”
쿵쿵이: “여기서는… 참지 말고 울어도 돼.”


그 말이 떨어지자, 봄이 어깨가 한 번 크게 들썩였어.
참으려고 숨을 삼켰는데도, 눈물은 더 빨리 흘러내렸어.

봄이는 얼굴을 쿵쿵이 가슴에 파묻었어.
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배운 애가,
소리를 내면 혼난다고 믿던 애가—

이번엔 아주 작게, 아주 길게 울었어.
마치 그동안 숨겨두던 마음이, 이제야 밖으로 나오는 것처럼.


하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냥 봄이 옆에 앉아서, 손만 살짝 얹어줬어.
도망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둘은 쉬는 시간 끝나기 전에, 상담 선생님 방으로 갔어.


문 앞에서 봄이는 손이 떨렸어.
문 손잡이가 너무 커 보였어.

하루: “짧게 말해도 돼. 어제 했던 것만.”

봄이가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가…
아주 작게 문을 두드렸어.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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