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했던 믿음이 깨진 순간
※ 공지(표현주의): 본 글에는 범죄·권력 남용·부패에 대한 서술과 함께,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비속어 및 거친 표현(년/놈/새끼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편하실 경우 열람을 권하지 않습니다.
나쁜 놈은 멀리 있지 않다.
가끔은—명찰(배지) 바로 뒤에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나쁜 놈”, “나쁜 년”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는 편이 아니다.
세상은 복잡하고, 사람은 다 사정이 있고, 누구나 실수도 한다.
그런데도—가끔은 이 단어 말고는 설명이 안 되는 얼굴들이 있다.
내가 말하는 나쁜 놈들, 나쁜 년들은 성격이 좀 못된 사람들이 아니다.
한 번의 실수로 선을 넘은 사람도 아니다.
남의 삶을 망가뜨리고도 죄책감이 없는 년놈들이다.
혹은 더 교묘하게, 죄책감을 ‘표정’으로만 연기하는 나쁜 년놈.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이거다.
그들은 꼭 간첩처럼 우리 속에 스며들어 기생하고 있다.
선한 얼굴을 뒤집어쓰고, 좋은 말투를 걸치고, “정상”의 냄새를 풍기면서.
옆집의 자상한 아빠.
나이팅게일 같은 엄마.
든든한 오빠.
잘 챙겨 주는 언니.
시작하면 너무 많다. 끝도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 세상에 있는 모든 나쁜 놈 년들을 논하려는 게 아니다.
여태껏 내가 보고, 내가 느낀 것들만 추려서 적는다.
내 눈앞에서, 불공평한 판정 하나로 나쁜 놈들이 빠져나가던 순간들.
그 장면들이 내 안에 남아, 아직도 나를 움직이는 방식이 됐다.
연재 중인 소설 『너를 품에 안으면』 속 “다리 밑 사건”.
거기엔 둘 다 나온다. 나쁜 놈, 나쁜 년.
감옥행을 피하려고 “아빠”라는 가면을 쓰고,
어린 딸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며 인간 방패로 쓰려 했던 놈.
아빠가 아니라—아빠 흉내를 낸 범죄자.
운전석에서 발을 구르며 소리치던 나쁜 년.
알고 보니 애만 여섯.
애들을 이용해 정부 지원금을 타먹으려고,
심지어 애들을 이 집 저 집 돌아가며 “빌려서” 돈을 더 받아내던 수법까지
밝혀졌다.
요즘은 규제가 강화돼 그런 얄팍한 방식이 예전만큼 통하진 않는다.
그런데도 여전히 교묘한 수법으로 일어나곤 한다. 허술했던 당시엔,
그런 일들이 버젓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그리고 그걸 나는—직접 봤다.
나는 죽어라 일해서 세금을 무지막지하게 낸다.
근데 돌려받는 일은 거의 없고 오히려 더 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버러지 같은 것들이 만 불이 넘는 돈을 받아 처먹고,
그걸 자랑이라도 하듯 인스타에 올린다.
아이한테는 한 푼도 안 쓰면서, 그 돈으로 지들 치장거리만—
명품백, 물건, 이것저것—사서 걸어놓고.
그러고는 가게에 들어와 지들끼리 “누가 더 많이 받았네” 하며 떠들어댄다.
마치 게임에서 이긴 승자처럼 떠들어댈 때면—현실이 비틀린다.
뭔가가 잘못됐다. 심각하게 잘못됐다.
노력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고,
악착같이 버티는 사람이 맥 빠지고,
편법과 기생이 “요령”이 되는 순간.
그때 내가 느끼는 건 분노만이 아니다.
허탈이다.
“이 시스템이 나 같은 사람을 지켜주긴 하는 건가?”
그 질문 하나가 목에 걸려, 끝내 삼켜지지 않는다.
또 다른 나쁜 놈.
이놈은 아주 교활했다.
주위 사람들을 말로 웃기면서 살아남는 인간.
말재주가 얼마나 좋은지, 내가 태어나서 저런 놈은 처음 봤다.
그래서 평판도 좋고 유머감각도 뛰어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근데 그 인간, 해병대는 개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해병대 이름을 더럽히는 변태새끼다.
여자 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여직원들을 훔쳐보다가 결국 걸린—
딱 그런 변태 나쁜 놈이었다.
그 집엔 그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중학생 딸이 있었다.
한 단체에서 나름 위치가 있던지라,
그 딸 친구들, 딸을 가진 부모님들이
그 집에 딸을 보내 하룻밤 자고 오게 하는 일이 반복됐었다.
보통 이런 변태 성향의 나쁜 놈들은
자기 집에도 몰카를 설치한다.
심한 케이스는—
자기 딸이랑, 딸이 데려오는 친구들까지
그 나쁜 놈에게는 전부 놀잇감이 되곤 한다.
나는 그 나쁜 놈이 쓰는 휴대폰, 노트북 전부
무조건 압수하길 원했었고,
어떻게든 검사 쪽에 연락해서
판사에게서 수색영장을 받아내자고
끝까지 밀어붙였었다.
영장 받아내는 시간은 길어지고,
그걸 예리하게 눈치챈 나쁜 놈은
결국 증거를 없애 버렸다.
그리고—
그가 잡혀가고, 판결이 났을 때…
나는 그냥 힘이 빠졌다.
그 나쁜 놈을 구속시킬 수 있는 증거라곤 딱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내가 어렵게 설득해서 겨우 입을 연 피해자의 증언.
그리고 다른 하나는—회사 화장실 입구에서 찍힌 영상이었다.
화장실 안에 몰래 설치한 카메라의 Wi-Fi에 자기 휴대폰을 연결해서,
안에 있는 걸 비디오로 들여다보는 장면.
그게 전부였다.
나쁜 놈이 어디서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했는지, 형이 고작 3년 보호관찰.
그것도 무사히 끝내면 기록까지 지워 주는 조건이었다.
더 참담했던 건,
그가 몸담고 있던 기관에서 평판이 나빠지는 걸 막겠다고
윗사람들만 알고 서로 쉬쉬하며 숨기려 했던 점이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박힌 문장이 하나 있다.
나쁜 놈은 죄로 숨지 않는다.
평판으로 숨는다.
그리고 그 평판을 지키려고
조직은 침묵을 선택한다.
침묵은 결국 다음 피해자를 만든다.
한국에 있었을 때, 나는 어렸다.
경찰관 아저씨들, 나라를 지키는 군인 아저씨들, 정치인들까지
너무 멋있어 보였고 고마워했었다.
미국에 와서 커가면서
그 순진했던 생각이 깨져 버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인종차별하는 경찰관들은 수도 없이 봤었고,
지금처럼 바디캠이 생기기 전까지는
경찰복 입고 근무하면서 술 마시던 경찰관들도 봤었다.
그때부터였다.
권한이라는 게 보호가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너무 빨리 알아버린 게.
경찰관이 처음 선서할 때,
그 말은 겉으로 보면 단단하고 멋있다.
경찰관 선서식 때 이런 식으로 맹세를 한다.
예를 들면,
I, StinGBee, do solemnly swear…
(자막: 본인 StinGBee는 엄숙히 선서합니다…)
I will not accept any money, gift, or other thing of value for personal gain.
(자막: 저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 어떠한 금전, 선물, 또는 기타 유가물도 받지 않겠습니다.)
근데 나는 봤다.
그 “뇌물”이 “기부금”으로 둔갑하는 장면을.
이름만 바꾸면 깨끗해지는 것처럼,
윗사람들끼리 돌려먹는 구조를.
그리고 청년기 시절—겁 없이 친구들이랑 클럽 죽돌이들처럼 드나들던 때,
동양계 경찰관 하나가 있었다.
아버지가 카운티 판사였다.
그 빽을 등에 업고 눈깔에 뵈는 게 없던 나쁜 놈.
당시 지역에서 규모가 꽤 큰 클럽이 있었고,
한국 애들부터 중국, 베트남계까지
온갖 덜 떨어진 양아치들이 모이던 곳이었다.
그때 클럽 입구를 지키던 그 경찰 이름을 편의상 ‘랜돌’이라 하겠다.
랜돌은 아버지 빽을 등에 업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굴었다.
처음엔 혼자였다.
근데 클럽이 커지고 돈이 된다는 걸 알자
주인에게 4명을 더 붙여 반협박식으로 요구했다.
바쁜 주말엔 4~5명이 늘어나 있던 적도 있었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불법 장기 영업, 그 뒤에서 벌어지는 불법 도박을 미끼로
쥐고 흔들었다.
그리고 그가 예쁜 동양계—한국 여자 포함—사람들이 들어오는 걸 보고
배알이 꼴리면, 여자와 같이 온 남자를 클럽 뒤쪽으로 끌고 가
경찰 셋 넷이서 몽둥이질을 해대는 걸 나는 봤다.
예뻐 보이는 여자랑 술 마시고 껴안고, 블루스까지 쳐대도
그때 당시엔 그를 막을 어떠한 것도 없었다.
이상하게 다른 사람에게 쌀쌀맞게 굴던 랜돌은
나에게는 그럭저럭 문제없이 굴었다.
그게 더 찝찝했다.
공평함이 아니라 “기분”으로 사람을 대하는 권한.
그러다 결국 그는 다른 곳에서도 마치 지가 신이라도 된 것처럼 굴다가
그에게 앙심을 품은 어린 베트남계의 손에 죽었다.
그리고 내가 경찰관이 돼서 더 알게 된 것도 있다.
불법 클럽이나 도박장에 Raid
(자막: 불법 단속 작전/급습 단속)
들어가기 전,
남녀 커플처럼 위장해 들어가는 팀들 중엔,
“진짜처럼 보여야 된다”는 말로 포장해 동료상사가
대놓고 여경들을 성추행한 일이 밝혀진 적도 있었다.
지역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모범 경찰관 또한
알고 보니 아동 성추행. 인신매매에 연루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적도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범죄자는 밖에만 있는 게 아니다.
권력을 입고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는 걸.
나는 모든 경찰이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걸 모르는 척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수”라는 말로 덮기엔
그 소수가 만드는 피해가 너무 크다.
거리의 나쁜 놈은 돈이나 몸을 노린다.
권력 안의 나쁜 놈은 사람들의 신뢰를 노린다.
그리고 신뢰가 무너지면
사람들은 신고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는다.
그 순간부터
나쁜 놈 나쁜 년들은 더 안전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문장을 다시 붙잡는다.
나쁜 놈은 멀리 있지 않다.
가끔은—명찰(배지) 바로 뒤에 있다.
무서운 건 범죄가 아니다.
무서운 건 범죄가 보호받는 구조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그 구조가 계속 굴러가게 만드는 게
총, 칼이나 몽둥이가 아니라
“쉬쉬”라는 한마디일 때다.
나는 그 쉬쉬에 서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적어도 내 자리에서는.
적어도 내가 보는 앞에서는.
나는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종종 생각에 잠긴다.
도시가 사람 몸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다.
하지만 안에서는
단 한순간도 조용한 적이 없다.
24시간, 쉬지 않고
무언가가 싸운다.
백혈구는 침입한 병균을 찾아내고
달려들고
부수고
삼킨다.
어딘가에선 암세포가 생기고
어딘가에선 그걸 억제하려는 신호가 튄다.
피는 흐르고
신경은 깨어 있고
몸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쉬지 않는다.
사람은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여도
속에서는 늘 전쟁 중이다.
그리고 그 전쟁이 균형을 잃는 순간—
사람은 무너진다.
백혈구가 몸을 지키는 건 맞다.
하지만 방향을 잃으면,
그 방어는 자가면역처럼 변한다.
지키던 힘이
어느 순간 자기 몸을
적이라고 착각하고
공격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 생각을
법으로 옮겨 놓았다.
법도 같다.
법은 사회를 지킨다.
범죄를 막고, 피해자를 보호하고, 질서를 세운다.
하지만 법이 남용되는 순간—
법은 보호가 아니라 공격이 된다.
권한이 정의가 아니라
무기가 된다.
그때부터 사회는
자기 자신을 물어뜯는다.
백혈구가 몸을 공격하듯,
권한이 시민을 공격한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불빛은 선명했고
빌딩들의 유리창은 차가운 별처럼 반짝였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더 간혹 무서워졌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쉬지 않고 무언가가 싸우는 세계.
나는 생각했다.
균형이 필요하다.
법이 너무 약하면
범죄가 도시를 먹는다.
반면 너무 강하면
법이 도시를 먹는다.
법은 면역이라고 생각한다.
없으면 죽고,
과하면 망가진다.
그 둘 사이 어딘가—
겨우 버티는 얇은 선 위에서
도시는 살아 있고, 사람이 살아 있고…
나는 아직까지는—
실망이 먼저 튀어나오려는 순간에도,
사람을 믿는 마음이 꺾이고,
사람을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중심을 붙든다.
최대한 좋은 경찰관이 되려고.
내가 보고도 외면하지 않기 위해.
내가 쉬쉬에 서명하지 않기 위해.
오후 늦게 콜이 들어왔다.
“며칠 전. 여직원 대상 스토커 의심 남성, 건물 진입.
직원 불안 호소. 확인 바람.”
내 몸이 먼저 움직였다.
숨이 차도록
계단을 뛰고,
복도를 훑고,
출입문을 밀고,
화장실을 열고,
비상구를 확인하고,
로비와 주차장까지 샅샅이 뒤졌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건
정상적인 얼굴들뿐이었다.
다행히—발견되지는 않았다.
나는 아직도 가슴이 들썩이는 상태로
무전을 올렸다.
“현장 이상 없음. 용의자 미발견. 주변 계속 순찰로 돌아감.”
그 순간,
이번엔 상황실에서 내 무전기가 나를 때렸다.
“근처에서 무장강도 발생.
여성을 폭행하고 재킷을 찢고, 걸치고 있던 금 목걸이를 가로챘다.
도주 방향 미상.”
나는 숨을 한 번 삼켰다.
그리고 대답했다.
“확인. 내 자리 이상 없다.
이동한다.”
짧게, 더는 말하지 않았다.
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또 다른 나쁜 놈을 잡으러
핸들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