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와 꼬리가 잘린 세상
주차장 한가운데
맥주병 하나가 서 있었다.
나는 순찰차에서 내려
그쪽으로 몇 걸음 다가갔다.
버릴까.
치울까.
근데 손이 가지 않았다.
잡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잠깐 서서
그 병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금 누군가가
내가 경찰 제복을 입고 맥주병을 들고 있는 장면을,
딱 그 장면만 찍어서—
그리고 인터넷에 올린다면—
순식간에 퍼지면서
뉴스에도 나올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보면서 판단할까.
쓰레기를 보고 치우려고 멈춘 경찰일까.
아니면
대낮에 맥주를 마시고 있는 경찰일까.
사람들은 보통
앞뒤 이야기를 보지 않는다.
단 한 장면을 보고
이미 결론을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한다.
진실이 중요한 세상인지,
아니면
보이는 장면이 더 중요한 세상인지.
요즘은 사건의 전체 맥락보다 몇 초짜리 영상이 먼저 퍼진다.
특히 경찰이 관련된 사건은
그 몇 초가 사람들의 분노와 판단을 만든다.
뉴스. 유튜브. 틱톡. 인스타.
사람들은 사건을 “보는” 게 아니라
편집된 장면을 소비한다.
그리고 그 장면만으로
정답을 안다고 믿는다.
문제는 ‘오해’만이 아니다.
이건 이제 의도적으로 악용되는 구조가 됐다.
짧게 자를수록 조회수가 잘 나온다.
극단적인 캡션을 붙일수록 공유가 빨라진다.
“이게 진짜다” “이게 증거다” 같은 말이 붙는 순간,
사람들은 확인을 멈추고 편을 고른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사건이 아니라 서사가 만들어진다.
한쪽은 “악마”가 되고,
한쪽은 “순교자”가 된다.
실제 사람은 사라지고
딱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역할만 남는다.
그다음부터는 너무 빠르다.
댓글이 판결을 내리고,
유튜브가 배심원이 되고,
틱톡이 증인이 된다.
그리고 뉴스는 그 흐름을 따라가고,
정치도 그 흐름을 탄다.
진실이 나오기 전에
이미 누군가는 사회적으로 사망한다.
그게 피의자든, 경찰이든, 목격자든—
한 번 “클립”으로 찍히면
그다음은 설명할 기회조차 잘린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경찰이 무조건 옳다는 것도 아니고,
시민이 무조건 틀렸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딱 하나다.
맥락이 잘리면,
진실은 언제든 조작된다.
그리고 그 조작은
누군가에겐 돈이 되고,
누군가에겐 권력이 되고,
누군가에겐 분노를 파는 장사가 된다.
2020년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이 “잘린 몇 초”가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편의점에서 위조지폐를 사용하려다 911에 신고된 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경찰에 의해 체포되는 과정이 한 시민이 촬영한 영상으로 퍼지면서, 전 세계가 그 장면을 보게 됐다.
공식 기록에는 사인이
“법 집행 과정의 제압·구속 및 목(경부) 압박을 동반한 심폐정지”로 적혀 있고,
사망 방식은 ‘타살(homicide)’로 분류됐다.
이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들은
주요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었고,
연방 민권 사건에서도 실형 선고를 받았다.
여기까지는 “확인 가능한 사실”이다.
그런데 사건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자꾸 다른 싸움으로 튄다.
“그럼 플로이드는 어떤 사람이었는데?”
“전과는?”
“약물은?”
냉정하게 말하면, 공개된 기록에 따르면 플로이드는 과거
여러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다.
그중 하나만 예로 들면, 임산부의 배에 총을 들이댈 정도로
매우 악질적인 흉악범이었다.
또한 사망 당시 기록에는 펜타닐 중독과 최근 메스암페타민 사용이
‘기타 유의미한 상태’로 포함돼 있다.
이놈은 그 후 한순간에 악질 전과자에서 순교자로 포장됐고, 장례식도 거하게 치러졌다.
이런 사례를 보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하지만 그의 흉악한 과거 전과 사실이 곧바로
“그럼 죽어도 된다”가 되진 않는다.
반대로
“영상 한 조각만 보고 모든 걸 단정해도 된다”도 아니다.
현장은 하나의 문장으로 안 끝난다.
법정은 더더욱 안 끝난다.
재판이 진행 중이던 당시, 내 느낌에는 담당 경찰서와 기관들이 여론 쪽으로 더 기우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인터넷은
항상 더 빠르고 더 단순하다.
사람들이 보고 싶은 장면을 잘라 올리고,
사람들은 그 장면에 자기 확신을 꽂는다.
그 확신은
정치가 타고, 여론이 타고, 알고리즘이 탄다.
그 흐름의 제일 무서운 점은 이거다.
진실이 아니라 ‘편집’이 승리할 때,
그다음 희생은 누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주차장에서
맥주병 하나를 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주차장에서 다시 생각에 잠긴다.
현장은 항상
앞과 뒤가 있다
진실은 길다.
하지만 세상은
잘린 몇 초로
사람을 판단한다.
여전히
맥주병은
주차장 한가운데
홀로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