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6

붙들고 싶은 소박한 믿음

by 스팅비 StinG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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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가정폭력, 신체적·정신적 학대, 노인 및 아동에 대한 폭력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부 독자에게 불편함이나 심리적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폭력을 자극적으로 소비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그 위험성과 현실을 알리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가정폭력이라고 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그림이 있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장면일 것이다. 물론 그건 현실이고, 실제로 가장 많이 벌어지는 형태이기도 하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으면 이미 절반은 놓치고 있는 거다.


내가 경찰이 된 뒤 여성이 직접 가정폭력을 가한 사건을 많이 본 건 아니다. 솔직히 숫자로 보면 남성 가해가 훨씬 많다. 하지만 적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니고, 드물다고 해서 가볍지도 않다. 오히려 몇몇 장면은 너무 강하게 남아서 시간이 지나도 머릿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날 현장에는 한눈에 봐도 부인보다 왜소한 체구의 남편 하나가 의자에 앉아 있었고, 신고는 여자가 먼저 했다. 남편이 술 마시고 술주정하며 난동을 부렸고, 자기는 무서워서 경찰을 불렀다고 했다. 말만 들으면 너무 흔한 그림이다. 그런데 현장에 들어가자마자 이건 너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어서, 신고한 여자 말만 곧이곧대로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여자는 계속 생명의 위협을 남편에게 받았다고, 무서웠다고 말이 많았는데 정작 몸에는 맞은 흔적을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붓기도 없고, 긁힌 자국도 없고, 방어흔도 없었다.


반대로 남자는 보는 순간 바로 여자의 진술과 앞뒤가 안 맞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손목과 팔에는 덕테이프와 전기코드에 묶여있었고, 머리에는 무언가로 맞은 흔적이 선명하게 보였다. 얼굴은 심하게 부어 있었고, 쌍코피가 터졌다가 굳은 흔적이 겹쳐 있었고, 양쪽눈은 심하게 부풀어 올라와 있었다. 이건 싸움이 아니라 묶어놓고 두들겨 팬 얼굴이었다. 더 알아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남편이 술주정했다는 거였다. 그 여자는 그걸 이유로 남편을 결박하고 때렸다. 결국 그날 잡혀간 건 여자였다.


현장 정리를 끝내고 나서 나를 포함해 같이 갔던 경찰들 사이에서 잠깐 헛웃음이 나왔다. 웃긴 일이어서 웃은 게 아니고, 피해자를 비웃을 의도는 당연히 아니었다. 너무 말이 안 돼서, 너무 황당해서, 아무리 만취 상태였고 왜소한 남자였고 여자의 체구가 컸다 해도 저렇게까지 묶여서 아내에게 터질 수가 있나 싶은 그 어이없음 때문이었다. 신고한 쪽은 멀쩡하고, 맞은 흔적 하나 없는 쪽이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고, 정작 덕테이프와 전기코드에 묶여 쌍코피 터지고 눈탱이 밤탱이 된 쪽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앉아 있는 그 장면. 그건 웃음이 아니라 욕에 가까운 헛웃음이었다.


현장을 오래 뛰다 보면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잠깐 웃음처럼 터지고, 바로 표정이 굳어버리는 순간을 그때 다시 느꼈다. 가정폭력은 성별 하나로 정리되는 문제가 아니다. 남자가 더 많으냐, 여자가 더 많으냐를 따질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누가 통제권을 쥐고 누구를 부수고 있느냐가 핵심이다. 미국은 워낙 여러 민족이 섞여 살다 보니 체구 차이도 크다. 키가 6피트를 넘는 여자도 있고, 몸무게가 200파운드, 300파운드를 훌쩍 넘는 여자들도 있다. 겉모양은 분명 여자이지만, 어떤 현장에서는 그걸 성별로 받아들이게 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건 그냥 폭력이다. 상대가 왜소한 남편이든, 늙은 부모든, 아이든, 한 번 통제권을 쥔 쪽이 마음먹고 휘두르기 시작하면 그건 충분히 재앙이 되고 사건이 된다.


내가 직접 접한 사건은 아니지만, 남편의 외도를 이유로 성기를 절단한 사건은 실제로 있었다. 다른 주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크게 뉴스에도 나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 그런데 진짜 무서운 건 그 한 건이 아니라는 거다. 비슷한 분노와 통제 방식으로 상대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겨누는 사건들은 텍사스에서도 종종 나온다. 덜 알려졌을 뿐이다. 뉴스에 나오는 건 터진 사건이고, 터지지 않은 사건들은 집 안에서 썩는다. 사람들은 크게 터진 사건만 보고 충격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더 많고 더 오래가고 더 지독한 폭력은 문 닫힌 집 안에서 조용히 반복된다.


혹시나 해서 한국에서 남성과 여성이 가하는 가정폭력 사례도 찾아봤다. 예전에도 뉴스로 몇몇 사건을 본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좀 더 의식적으로 들여다봤다. 그러고 나서 느낀 건 하나였다. 한국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거였다. 한국은 미국처럼 총기가 일상적으로 얽히는 사회는 아니다. 그런데 그걸 빼고 나면 사람을 망가뜨리는 폭력의 구조는 미국과 좀 다를 뿐, 전혀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더 조용하고, 더 오래 숨고, 더 쉽게 집안일이라는 말로 덮여버린다는 점에서 다른 종류의 공포가 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문 닫힌 집 안에서는 상상 이상으로 오래 썩어가는 일들이 분명히 넘쳐나고 있었다.


한 가지 예만 들어도 그렇다. 노인학대다. 사람들은 요양원을 먼저 떠올리지만, 미국이나 한국이나 실제로는 대부분 집 안에서 벌어진다. 문이 닫히면 끝이다. 아들이 늙은 엄마를 때리고 돈을 빼앗고 병원도 못 가게 막았다는 기사도 있었고, 그럼에도 노인은 입을 닫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내 자식이니까. 그 말 하나로 폭력은 계속 이어진다.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딸이 엄마를 밀치고 욕하고 통제하고 약까지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며느리가 휠체어 탄 시어머니를 돌보는 척하면서 밥과 약, 움직임 전체를 쥐고 흔드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보호자가 가해자가 되고, 돌봄이라는 말은 통제의 가면이 된다. 겉으로는 보호자지만 실제로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가장 잔인한 통제를 하는 사람인 거다.


더 소름 끼치는 경우는 노부모를 돌보는 척하면서 사실상 목숨만 겨우 붙어 있을 정도로만 살려두는 경우다. 밥은 제대로 주지도 않고, 약도 제때 챙기지 않으면서 죽지만 않게 최소한으로만 유지해 온다. 이유는 단순하다. 소셜 시큐리티와 연금 때문이다. 매달 돈은 계속 들어오니까 사람은 죽지 않을 정도로만 붙잡아 놓는 거다. 냉장고는 비어 있고 몸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가는데 통장만 살아 있다. 이건 돌봄이 아니라 계산이다. 사람 하나를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돈이 나오는 통로처럼 붙잡아 두는 방식이다. 죽이지도 않고 살리지도 않은 채, 돈이 끊기지 않을 정도로만 생명을 질질 끌고 가는 것. 그건 방임을 넘어선 약탈이고, 보호를 가장한 착취다.


엄마가 아이를 망가뜨리는 경우는 더 조용하다. 손보다 말이 먼저 들어간다. 넌 왜 그것밖에 못 하냐. 쓸모없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이런 말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아이 안에 남아서 구조가 된다. 나중에는 그 아이가 커서 자기 자신한테 똑같이 말한다. 그래서 어떤 집은 손을 많이 안 대고도 사람을 완전히 부순다. 눈에 보이는 멍이 없어도, 그 집 안의 공기와 아이의 표정과 몸의 긴장만 보면 이미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느껴질 때가 있다.


형태는 다 다르다. 아내가 남편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그런데 냄새는 같다. 통제, 무시, 그리고 어차피 말 못 한다는 확신. 가정폭력은 이 확신을 먹고 자란다. 상대가 약하다는 확신, 도망 못 간다는 확신, 신고 못 한다는 확신, 설마 남자가 맞았다고 말하겠냐는 확신, 설마 늙은 엄마가 자식 신고하겠냐는 확신, 설마 아이가 밖에 나가 다 말하겠냐는 확신. 그래서 더 잔인해진다.


이런 종류에 사람들은 말한다. 돈이 없어서 힘들었다. 우울증이 와서 그랬다. 병간호가 너무 버거웠다. 맞다. 쉽지 않다.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현장에서 보면 진짜 무너지는 사람들 많다. 지쳤다. 버겁다. 도망가고 싶다. 그 말 틀린 말 아니다. 근데 거기서 선이 있다. 그걸 이유로 때리기 시작하고, 묶어놓고, 굶기고, 욕하고, 사람을 통제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힘든 상황이 아니다. 그건 그냥 폭력이다. 스트레스 해소도 아니고, 감정 조절 실패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선택도 아니다. 그건 분명한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상대가 약하기 때문에 가능해진 선택이다. 도망 못 가니까. 말 못 하니까. 버틸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더 잔인해진다. 힘든 건 이해할 수 있다. 지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근데 폭력은 이해 대상이 아니다. 거기에는 정당화가 없다.


그럼 해결은 뭐냐. 거창한 건 없다. 폭력이 시작된 순간, 그건 이미 싸움이 아니라 사건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참고 넘어가고, 미안하다니까 봐주고, 한 번이니까 이해하고. 이게 반복을 만든다.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물리적으로든, 환경적으로든, 같은 공간에 있는 한 통제는 계속된다.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마라. 경찰이든, 상담이든, 보호기관이든, 외부 개입이 들어와야 흐름이 끊긴다. 집 안에서만 해결하려 하면 결국 다시 집 안에서 시작된다.


주변에서 이상함을 느꼈다면 그냥 넘기지 마라. 한 번의 개입이 사람 하나를 살린다. 그리고 가해자는 그대로 두면 절대 안 바뀐다. 미안하다. 다시 안 한다. 이 말, 현장에서 수도 없이 들었다. 그리고 대부분 다시 한다. 폭력은 감정이 아니라 패턴이고, 그 패턴은 끊어줘야 끝난다. 가정폭력은 참으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참으면 더 깊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어간다. 그래서 이건 그냥 잔인하고 무서운 이야기로 읽고 넘기면 아무 의미 없다. 이건 보라고 쓴 거다. 이상한 신호를 이상하다고 받아들이라고 쓴 거다.


혹시라도 주위에 눈을 피하는 노인, 소리에 움찔하는 아이, 말끝마다 상대 눈치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 그냥 성격이라고 넘기지 않았으면 한다. 이미 어디선가 시작된 폭력일 수도 있다. 그래서 주변에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면, 아주 작은 관심이라도 가져줬으면 한다. 익명 신고라도 좋고,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라도 필요하다. 그래야 그나마 더 깊어지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가정폭력을 막을 수 있다. 가정폭력은 싸움이 아니다. 관계 문제가 아니다. 그건 사건이다. 이미 시작된 상태다. 그리고 그 사건은 생각보다 훨씬 자주, 문 닫힌 집 안에서 조용히 계속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심각한 가정폭력 가해자들 중에서 정말 자기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은 놈들은, 내가 본 것보다 훨씬 적다. 오히려 거액의 돈을 쓰고, 느슨해진 법 시스템의 빈틈을 악용하고, 피해자는 지쳐 무너지는 동안 자기들만 얄팍한 계산을 굴리면서 끝내 제대로 된 처벌도 없이 빠져나가거나, 사람 하나 인생을 망가뜨려 놓고도 어처구니없이 가벼운 처벌만 받고 살아가는 인간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걸 보다 보면 솔직히 사람이 법만 믿고는 못 버틸 때가 있다. 정의가 있다고 배웠는데, 현실은 너무 자주 계산 빠른 놈들 편처럼 돌아가고, 정말 짓밟히고 망가진 쪽만 상처를 오래 끌고 가는 장면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의 마지막에 이 말을 빼고 싶지 않다. 나는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말은 내가 대단한 신앙인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나는 신앙심이 깊은 크리스천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성경적 기준으로 보면 나 역시 실수투성이고 죄를 짓고 사는 인간이다. 나도 부족하고, 나도 흔들리고, 나도 완전히 깨끗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도 적어도 하나는 안다. 내가 경찰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넘으면 안 되는 선이 있다는 것. 사람을 짓밟고, 약한 사람을 골라 괴롭히고, 자기 분노와 욕구와 스트레스를 남의 몸과 마음에 쏟아붓는 그 선은 넘지 않으려고 버텨야 한다는 것. 그건 신앙 이전에 인간으로서 끝까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라는 것이다.


힘들어도, 가난해도, 우울해도, 세상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아도 그렇다고 사람답게 살려는 마음까지 같이 버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루하루를 견디고, 포기하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버텨내는 것. 나는 그게 생각보다 훨씬 큰 용기이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라고 믿는다. 나는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 러시안룰렛 목숨을 걸고 장난 삼아 미친 짓을 하다가 결국 자기 머리가 날아간 사례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든 생각은 하나였다. 나 역시 너무 괴롭고 힘들었을 때는 내 목숨 따위 우습게 여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묻게 된다. 왜 사람은 힘들다고, 괴롭다고, 자기 목숨을 그렇게 우습게 거는 걸까.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왜 그렇게 귀한 목숨을 막 써버리려 드는 걸까.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어떤 사람들은 자기 인생만이 아니라 남의 인생까지 같이 걸고 산다는 거다. 폭력을 쓰는 사람들, 정신적으로 사람을 짓밟는 사람들, 사기를 치는 사람들, 자기 욕구를 풀겠다고 남을 망가뜨리는 사람들. 나는 그런 걸 볼 때마다 묻고 싶다. 정말 그렇게까지 해서 살 가치가 있나. 그렇게 해서 잠깐 이기면 뭐가 남나. 혹시 정말 사후가 있다면 어쩌려고. 혹시 정말 영생이 있다면 어쩌려고. 천국과 지옥이 진짜라면, 당신은 지금 영원이 이어질 영생을 두고 러시안룰렛을 하고 있는 셈 아닌가.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죄짓지 말고 살라고. 특히 남 해치면서 살지 말라고.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돈으로든, 거짓말로든 사람을 무너뜨리면서 살지 말라고. 짧은 인생이라도 조금은 값지게, 조금은 인간답게, 조금은 떳떳하게 살라고. 그게 결국 자기 자신을 살리는 길일 수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마지막으로 내가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가해자들, 특히 약한 사람을 골라 폭력을 휘두르고도 끝내 책임지지 않고 회개도 속죄도 없이 살아가는 자들은 이미 자기 손으로 지옥행 티켓을 끊어놓고 그날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나는 믿는다. 설령 그들이 얄팍한 계산으로 법망을 빠져나가고, 고질적으로 약한 처벌 속에서 현실의 죗값을 끝내 다 치르지 않고 살아간다 해도, 나는 그걸 운이 좋았다든가 면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자들일수록 자기 손으로 지옥행 직행표를 더 깊이 쥐고 사는 거라고 믿는다. 나는 그걸 단순한 비유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의 눈을 속이고, 법의 빈틈을 비웃고, 현실의 심판을 잠시 피할 수는 있어도 끝까지 사후에 받을 심판을 피할 수 없고 그 앞에서 속일 수는 없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믿음 하나라도 붙들고 있어야, 하루 끝에 뒤뜰에 앉아 맥주 한 잔과 시가를 곁에 두고, 그날 본 것들과 끝내 다 해결하지 못한 것들을 조금은 내려놓은 채 겨우 잠들 수 있는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내가 올린 사건들은 극히 일부다. 그리고 그나마 내가 써놓은 사건과 이야기 속 피해자들은, 깊은 상처를 안고 있어도 아직 살아 있다. 안타깝게도 현실에는 가정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 이야기들까지 꺼내기 시작하면, 이 글은 여기서 절대로 끝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시간이 되고 내가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때 차차 올리기로 하겠다. 가정폭력 이야기는 우선 여기서 마무리하려 한다. 나도 내 머리에 과부하가 걸리기 전에, 시원한 맥주 한 잔과 시가로 과거에 보고 들은 것들 때문에 달아오르는 감정을 조금 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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