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다쳐요… 가까이 오면 ㅜㅜ

by 스팅비 StinGBee


오늘은 고위층 인사들이 모이는 파티에 참석해 경호 업무를 맡았다. 공식적인 근무는 아니고 부업으로 뛰는 일이다. 시간당 수당도 나름 괜찮은 편이라 경찰관들이 늘 선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자리는 쉽게 얻을 수는 없다. 여기도 결국 인 줄이 있어야 하고, 얼마나 많은 경험이 있는지, 그동안 이런 경호 업무를 무사히 사고 없이 잘 해냈는지, 그 기록과 평판을 다 따져가며 그때그때 맞는 경찰관들을 골라 오퍼가 들어온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행사장에 서 있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자리도 결국 아무나 설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나는 정치 쪽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런데 주위에 정치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보니 이상하게도 이런 고위층 경호 업무를 자주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일을 맡을 때마다 늘 같은 생각이 든다. 참, 이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 유명 연예인부터 대기업 사장들과 자녀들, 정치인들까지.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세트장을 현실로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분위기가 있고, 고급스러운 파티장을 실제로 보게 된다. 조명은 부드럽고 음악은 세련됐고, 정장과 드레스는 힘을 뺀 것처럼 보여도 하나같이 값이 느껴졌다.


어떤 돈 많은 인간들은 자랑이라도 하듯 늘씬하고 예쁜 모델들을 여럿 데리고 나온다. 딱 봐도 평범한 사람이 흉내 낼 수 있는 종류의 과시는 아니다. 돈 많은 사람만이 부릴 수 있는 개성 넘치는 똘기가 있다. 그리고 어떤 여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어보니 몸에 걸친 가격만 해도 몇만 불, 몇십만 불도 아닌 백만 불이 훌쩍 넘는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최고급 에르메스 가방부터 시계, 장식, 팔찌, 목걸이, 구두까지. 내가 사는 세계에서는 집 계약서나 사업 자금, 혹은 몇 년치 생활비처럼 느껴질 금액이 그들에게는 그저 오늘 밤 몸에 걸친 장식이었다.


내가 사는 세계와는 너무도 다른 세계.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화려한 곳일수록 공기는 비슷하다. 돈 냄새, 술 냄새, 향수 냄새, 그리고 사고 직전의 공기가 늘 맞게 된다. 이런 고급스러운 파티장에도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결국 보디가드나 경찰이 투입돼 경호 업무를 맡는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이면 이런 장소에서도 꼭 몇몇 모지리들이 술에 취해 각자 방식대로 똘기를 부린다.


그리고 늘 이런 자리에는 꼭 술 취한 남자들 중에, 괜히 옆에 다가와 나를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친한 척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재력가인지, 무슨 일을 하는 놈인지 은근히 떠벌리는 인간들도 있다. 나는 전혀 관심도 없는데 이런 놈들은 꼭 어김없이 나타난다. 정말 사람을 짜증 나게 한다. 그러면서도 그런 놈들은 늘 똑같다. 나와 말은 섞고 있지만 눈깔은 예쁘게 하고 온 여자들 쪽을 훑고 있다. 마치 나와 친한 척하는 모습으로 여자들의 시선이라도 한 번 붙잡아 보려는 듯, 괜히 더 떠들고 더 아는 척하고 더 튀려 든다. 정말 졸라 개짜증이 올라온다.


또 남자든 여자든, 이런 자리에서 똘기를 부리는 인간들은 결코 평범한 술주정뱅이들만은 아니다. 돈이 많고, 늘 원하는 걸 가져봤고, 살면서 누구에게도 제대로 제지당해 본 적 없는 인간들만이 풍기는 특유의 자신감과 무감각이 있다. 거기에 정치적 목적이든, 개인적인 감정이든, 아니면 그보다 더 지저분한 이유든, 저마다의 속셈을 품고 이 파티장을 쑥대밭으로 만들려는 인간들도 반드시 섞여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돈 많다고 지랄 떨고 똘기 부리는 놈들이 남자든 여자든 결국 법을 어겨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모습을 볼 때 가끔은 통쾌할 때도 있다. 미국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법을 어기면 누구든 잡혀 간다. 상대가 돈 많은 일론 머스크 형님이든,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만 현재 대통령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걸린다 해도 그 순간만큼은 예외가 없다. 또 같은 정부 기관 사람이라고 다를 것도 없다. FBI(자막: 연방수사국)든, CIA(자막: 중앙정보국)든, Secret Service(자막: 미합중국 비밀경호국)든, 정치인이든, 현장에서 법을 어기고 경찰의 적법한 통제에 불응하면 결국 잡혀간다.


물론 나라고 해서 예외일 리는 없다. 나 또한 이 넓은 텍사스 안에서 법을 집행하는 사람일 뿐, 법 위에 서 있는 인간은 아니다. 요즘은 비디오와 바디캠이 거의 모든 순간을 기록한다.누군가 법을 어겨 체포되는 상황까지 갔다면, 그 순간부터는 유명인이든 정치인이든 경찰의 정당한 명령과 현장 통제에 따라야 한다. 괜히 끝까지 버티거나 자기 지위와 이름값으로 눌러 보려 들수록 남는 건 변명보다 영상이고, 기억보다 기록이다. 실제로 예전에도 연방 기관의 신분인 사람이 현장에서 불응하고 대들다가 결국 체포된 일은 있었다. 잡혀 간 것만큼은 확실했다. 나중에 그 혐의가 끝까지 어떻게 정리됐는지, 실제로 입증까지 됐는지는 나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도 수갑을 피하지 못했다.


그게 내가 현장에서 본 미국이다. 나는 연방 소속이 아니라 미 전역에서 법을 집행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이 넓은 텍사스 안에서는 법을 어긴 누구든 잡아넣을 권한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서류는 복잡해지고 리포트는 더 까다로워진다. 하지만 그 판단의 순간만큼은 단순하다. 내 눈앞에서 법을 어겼다면, 상대가 FBI(자막: 연방수사국)든 정치인이든 경찰서 서장이든 나는 잡아넣는다. 잡혀간 뒤에야 다들 자기 직함을 꺼내 든다. 하지만 수갑이 채워지는 순간만큼은 그 직함도 먼저 손목을 빼주지는 못하고, 나는 적어도 법 앞에서만큼은 누구도 자기 이름값이나 권력으로 쉽게 비켜나갈 수 없다는 믿음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


오늘 같은 자리에서 남들은 파티를 즐기러 오지만, 우리는 그 자리를 읽으러 들어간다. 다른 사람들은 웃고, 마시고, 어깨를 흔들고, 음악에 몸을 맡긴다. 하지만 우리는 출입하는 차들부터 출입구를 보고, 손의 각도를 보고, 표정을 보고, 시선이 머무는 방향을 본다. 누가 누구에게 집착하고 있는지, 누가 너무 취했는지, 누가 허세를 부리고 있는지, 누가 갑자기 말수가 줄었는지, 누가 아무렇지 않은 척 주머니를 만지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본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지나가는 장면일 뿐이지만, 우리는 사고가 늘 그런 아무것도 아닌 척하는 순간들 속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끔 영화 보디가드 마지막 장면 속 케빈 코스트너를 떠올린다. 물론 영화 속 인물이지만, 끝까지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은 채 묵묵히 서서 사람들을 읽고 있던 그 모습이 내게는 이상할 만큼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파티를 즐기러 온 사람들과는 다르게, 멋지고 분위기 좋은 공간 한가운데 서서 맛나게 생기고 깔끔하게 정리돼 나오는 음식들, 고가의 다양한 술들 앞에서 묵묵히 서 있기만 한다.


눈앞에 있는데 내 것이 아닌 것들.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애초에 닿아선 안 되는 것들. 오늘도 그랬다. 반짝이는 잔들, 정갈하게 차려 나온 음식들, 기분 좋게 올라오는 고기 냄새와 버터 냄새, 예쁘게 장식된 각종 과일들, 잔을 들 때마다 번쩍이는 조명. 그런 것들 한가운데 서 있으면서도 나는 결국 속으로 입맛만 다시는 신세였다. 이상하게 이런 자리에서는 배고픔보다 허전함이 먼저 밀려온다. 나와 같이 있는 어린 파트너는 이런 자리가 아직 마냥 낯설고도 신기한가 보다. 눈치를 봐 가며 이것저것 집어 먹고, 음악 리듬에 맞춰 남들 모르게 몸을 조금씩 흔들어댄다.


누군가는 오늘 밤을 기억에 남을 파티로 가져가겠지만, 우리는 대체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그 자리를 지나간다. 음식도, 웃음도, 사진도, 추억도 대부분은 저 사람들의 몫이고, 우리는 그 장면이 망가지지 않게 가장자리에서 서 있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오늘 밤 누구와 춤을 췄는지를 기억하고, 누군가는 무슨 가방을 들었는지를 기억하고, 누군가는 어떤 정치인이 누구와 오래 이야기했는지를 기억하겠지만, 우리는 그 밤이 아무 일 없이 끝났다는 사실만 가지고 나온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아무 일 없음”이라는 결과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허전하다.


오늘도 자정이 되어 갈 즈음,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서 다들 분위기에 취해 몸을 흔들고 있었다. 내가 어느 정도 어린 파트너를 지켜보다가 눈짓을 한 번 주었더니, 그 어린 파트너는 순간 다시 긴장을 끌어올린 채 시선을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렇게 다들 웃고 흔들리는 순간이 오히려 제일 위험할 때가 많다. 사람이 긴장을 놓는 순간, 사고는 그 빈틈을 타고 들어온다.


그때였다.

중국계 여자 한 명이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예쁘다는 말보다
미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술에 취했는지
왼팔을 쭉 뻗은 채,
한 손에는 샴페인 잔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몸짓은 가볍고 자연스러웠지만,
그 안에는 망설임보다 확신이 더 많아 보였다.

나는 고목처럼
무표정하게 쳐다봤다.

속으로는 생각했다.

저거 또 똘기가 올라왔구나.


그 여자는 점점 가까워졌고, 누가 봐도 안아 주기를 바라는 식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안아 주기를 바라는 정도가 아니라 당연히 자기를 받아줄 거라고 믿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나는 여전히 고목처럼,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그제야 그녀는 내 무표정과 무관심을 읽었는지 얼굴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아주 잠깐, 웃는 얼굴 밑바닥에 어색함이 비쳤다. 아마 살면서 이런 식의 반응은 많이 겪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짧은 순간 그 여자의 얼굴에는 황당함과 자존심 상한 기색이 같이 스쳤다. 마치 이런 말이 그대로 지나가는 것 같았다.


뭐야?
나 같은 미모를 가진 여자를 무시한다고?
진짜 나를 피한다고?

그런데도 끝까지 다가왔다.
약간 어색해진 표정으로.

그녀의 손이
내 목 쪽에 닿을 즈음,

나는
옆으로 살짝 피했다.


그러자 그녀는 웃었다. 웃기는 했는데 그 웃음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는 얼굴 안에 황당함과 허탈함, 그리고 살짝 긁힌 자존심이 같이 들어 있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표정은 충분히 말하고 있었다.

이런 모질이는 또 뭐야.
진짜 나를 피했다고?


그 순간 참 묘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나라고 왜 그런 가벼운 인사식 포옹을 하고 싶지 않았겠나. 나도 사람이다. 나도 예쁜 사람이 웃으며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평범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웃긴 건, 나 혼자 착각일지는 몰라도, 이런 나인데도 영화에서나 볼듯한 여자가 다가와 안기고 싶을 정도로 내가 그 순간 꽤 그럴싸해 보였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치기도 했다는 거다.


하지만 나는 그러면 안 된다. 나는 여러 가지 상황을 읽고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 내 시선을 흐트러뜨린 그 몇 초 사이 다른 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내가 그 여자와 간단한 포옹을 하는 장면을 누군가 사진으로 찍어 나쁜 용도로 쓸 수도 있다. 이런 자리는 웃음도 거래가 되고, 사진도 무기가 되고, 스침 하나도 나중에는 다른 이야기가 되는 세계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 나를 안는 순간 그 사람은 생각보다 더 위험한 위치에 들어오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몸 전체가 사실상 무기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장 위에 재킷을 걸치고 서 있거나, 아니면 완전 무장 상태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깔끔한 경호 인력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안과 겉이 전혀 다르다.


내 몸에는 딱딱한 플라스틱과 차가운 쇠, 단단한 금속과 각진 장비들이 빈틈없이 붙어 있다. 허리에도 있고, 옆구리에도 있고, 가슴 쪽에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고 단정해 보여도, 누군가가 아무 생각 없이 몸을 기대거나 갑자기 안아버리는 순간 그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내 몸에 붙어 있는 장비들과 먼저 부딪히게 된다.


그래서 이런 자리에서는 반가움도, 장난도, 술기운에 나온 스킨십도 결코 가볍게 볼 수가 없다. 상대는 그저 친근함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우리 쪽에서는 그 짧은 접촉 하나가 순식간에 사고로 바뀔 수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가정폭력 현장에서 여자를 바닥에 눕혀 놓고 UFC 파이터처럼 올라타 파운딩하듯 폭행하는 놈을 말려 세울 때, 지금까지 내 곁을 지켜준 든든한 친구 삼단봉 역시 그냥 막대기가 아니다. 특수 열처리된 강철이다. 보기에는 접히는 장비 하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 뼈를 우습게 부러뜨릴 수 있고 웬만한 체구로는 버텨내기 힘든 물건이다. 그런 것들이 전부 내 몸 여기저기에 붙어 있다. 겉으로는 그냥 사람 같아 보여도, 가까이서 보면 사람 몸에 삐죽삐죽한 위험물들이 잔뜩 달려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늘 스스로를 고슴도치 같다고 느낀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가시를 두른 몸. 겉으로 보기엔 그저 조용히 서 있는 사람 같지만, 함부로 가까이 왔다가는 다칠 수도 있는 몸. 마치 헤지호그가 귀엽다고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뻗어 만졌다가 손끝에 가시가 박히는 것처럼, 사람들은 때때로 내가 입은 정장과 무표정한 침착함만 보고 가까이 오지만 실제로 내 몸은 그렇게 쉽게 기대도 되는 몸이 아니다.


함부로 사람을 안는 건 생각보다 훨씬 쉽게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내 키가 180이 조금 넘고 군화 굽높이까지 거의 3~4cm쯤 되다 보니, 여자들 키로 치면 보통 얼굴이 내 가슴팍 높이에 닿는다. 문제는 바로 그 높이에 장비가 몰려 있다는 점이다. 잘못 스치기만 해도 입술이 터질 수 있고, 얼굴이 찍히거나 긁힐 수도 있다. 상대는 그냥 가볍게 안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내 쪽에서는 전혀 가볍지 않다.


내 몸은 누군가가 기대기 좋은 몸이 아니라, 가까이 올수록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하는 몸이다. 게다가 긴 머리카락, 특히 파마한 머리나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은 내 장비 틈에 쉽게 걸릴 수 있고, 귀걸이나 장식품 같은 것들도 각진 장비나 돌출된 부분에 엉켜버릴 수 있다. 그러면 순간적으로 머리카락이 잡아당겨지거나 피부가 긁히고, 본인도 놀라고 나도 놀라는 식으로 순식간에 작은 접촉이 사고로 바뀌어 버릴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소설 속에도 나오는 다리 밑 사건. 그때 나는 어린 딸아이를 안고 뛰었다. 뛰면서도 머릿속에는 계속 같은 생각만 들었다.

이 아이가
내가 걸친 장비 때문에
다치면 어떡하지.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무엇보다 먼저 아이를 살려야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동시에 내 장비가 이 작은 몸에 남길 흔적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정말로 아이의 팔과 얼굴 쪽에 장비에 눌린 자국과 까진 상처가 보였다. 아주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그 자국을 보는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때 마음이 너무 미안했고, 아팠다. 내가 지키려고 안은 아이한테, 내가 두른 것들 때문에 자국이 남았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다.


그래서 행사장에 가면 가끔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을 데리고 와서, 내가 아이를 안고 같이 사진 찍어 달라고 할 때가 있다. 아니면 아이들이 나를 보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안아 달라고 달려들 때도 있다.

난 아빠가 된 적이 없는 사람이라

그럴 때면
나도 기쁘게 안아주고 싶다.
정말 안아주고 싶다.

그런데 결국 피하게 된다.

몸을 빼거나,
거리를 조절하거나,
최대한 손만 가볍게 얹는 쪽으로
바꾸게 된다.


혹시라도 내가 걸치고 있는 이 장비들 때문에 아이의 얼굴이나 팔이 어디에 찍히고 눌릴지 모르니까. 내가 다치게 할 수도 있으니까 피하게 된다. 사람들은 종종 경찰을 차갑다고 말한다. 표정이 없다고 하고, 거리감이 있다고 하고, 왜 저렇게 딱딱하냐고 한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점점 무표정해지고, 점점 말을 아끼고, 점점 거리 조절을 먼저 배우게 된다. 그런데 꼭 차가워서만은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내가 가진 것들이 너무 단단하고 위험해서, 오히려 다치게 할까 봐 물러서는 순간들도 있다.


이 일에는 그런 허전함이 있다. 누군가는 파티가 끝난 뒤 샴페인과 고가의 양주 향, 그리고 웃음소리를 기억하겠지만, 우리는 대체로 출입구 위치와 사람들의 동선, 위험했던 표정 몇 개, 혹시 놓친 것은 없는지에 대한 점검만 남긴 채 돌아간다. 다들 화려한 밤을 지나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몸 여기저기에 단단한 것들을 찬 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빠져나온다.


남들은 술기운과 음악을 몸에 묻혀 가지만, 우리는 긴장과 냄새와 피곤함만 묻혀 간다. 누군가는 오늘 밤을 추억이라 부르겠지만, 우리에게는 대체로 하나의 근무 기록으로 남는다. 오늘따라 저 인간들은 우리가 떠난 뒤로도 밤새 놀 판이었다. 각자 개인적으로 데리고 있던 보디가드 몇몇이 더 안으로 들어왔고, 우리는 계약대로 밤 12시 30분까지만 자리를 지킨 뒤 조용히 빠져나왔다. 우리가 돌아선 뒤 그 안에서 또 어떤 엽기적인 행각들이 벌어졌는지는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고, 그 이후의 밤은 차라리 각자의 상상에 맡겨 두는 편이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군화를 벗고, 몸 여기저기에 달라붙어 있던 단단한 것들을 하나씩 풀어냈다. 그제야 비로소 오늘 밤 내 몸을 감싸고 있던 가시들이 조금씩 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맥주를 따랐다. 잔 위로 여전히 날 반겨주는 하얀 거품이 꼭 맛난 토핑처럼 올라왔다. 한 모금 넘기고, 시가에 불을 붙였다. 천천히 마시고, 천천히 태우면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다시 머릿속에 꺼내본다.


내가 놓친 시선은 없었는지, 조금 더 빨리 읽을 수 있었던 움직임은 없었는지, 조금 더 나은 위치, 조금 더 나은 판단, 조금 더 나은 거리 조절은 없었는지. 남들은 오늘 밤을 화려한 파티로 기억하겠지만, 나는 결국 이렇게 끝낸다. 맥주 거품이 조금씩 꺼지고, 시가 끝이 조용히 타들어가는 걸 보면서 오늘을 다시 리뷰한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나는 오늘 어떤 점에서 괜찮았고 어떤 점에서 더 나아질 수 있었는지.


그러다 문득, 아까 나를 안아 주려던 그 중국 여성의 얼굴도 다시 떠올랐다. 어쩌면 그녀는 정말 아무 뜻 없이, 그저 그 자리의 분위기 속에서 가볍게 웃으며 다가온 것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걸 받아 주지 않았다. 아니, 받아 주지 않은 게 아니라 받아 줄 수 없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 무표정하게 한 걸음 비켜섰는지, 그런 내 마음을 그 여자는 알 리는 없겠지.


03/29/2026 새벽 1:21 AM


The Bodyguard • I Will Always Love You

원래는 이 뮤직비디오를 추억의 팝송 쪽에 넣어볼까 했는데, 오늘은 그냥 여기, 생각나는 대로 남겨두기로 했다. 이런 일이 끝나고 나니, 맥주가 들어가고 시가 연기가 천천히 올라와서 그런지 이상하게 영화 보디가드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다들 자기 밤을 챙겨 돌아간 뒤에도, 누군가는 끝까지 감정을 죽인 채 그 자리를 읽고 서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장면이 지금은 이상할 만큼 현실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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