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매일 마주하는 것들

총성보다 먼저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들에 대하여

by 스팅비 StinGBee


원래 같았으면 저녁 7시에 퇴근해서 집에 들어왔을 때가 대략 밤 8시 전이다. 그런데 오늘은 병원에 한 번 들렀다가 오느라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 반이 훌쩍 넘어 있었다. 뒤뜰로 나가 의자에 몸을 기대고 맥주 캔을

칙ㅡ 하고 따고 있다. 그 소리가 오늘은 유난히 크게 들리고 있다. 시가 끝에 불을 붙이고 작은 불씨가 잠깐 붉게 살아났다가 천천히 어두운 밤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나는 한 모금 길게 입안으로만 들이마신 뒤 그냥 뱉어내고 있다. 후ㅡ... 시가 연기가 내 자식들 4마리 킁킁거리면서 날 보며 반갑다고 꼬리가 떨어져 나갈 듯 흔들면서 다가오다가 시가 냄새에 못 견디고 멀지 감치 물러가고 있다. 그중 가장 어린 내 예쁜 딸내미가 그래도 날 반기며 옆에 달라붙어 있으려고 한다. 꼭 쳐다보는 눈이 아빠, 오늘은 어땠어요? 아빠 보고 싶었어요. 왜 이제 와요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난 지금 우리 애들을 가만히 앉아 보고 있다. 오늘 하루 동안 들은 이야기들과 본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쉽게 빠져나가지 않고 있다. 오늘은 브런치에 이렇게 생각일기를 쓰면서 어떻게 해야 정리가 될지 생각하면서 쓰고 있다. 음… 오늘 월요일 아침은 여느 때와 별다르지 않았다. 월요병에 걸린 듯 몸은 완전무장한 방탄복과 유니폼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그래도 이 후덥지근한 월요일 아침은 비교적 가볍게 시작할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갔다.


내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일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창문 쪽에 책상을 두고 앉아 있던 내 파트너 K가 의자를 돌려서 날 빤히 쳐다보며 뭔가 하려는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좀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표정으로 그냥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억지로 웃는 것 같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첫말을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그의 오늘 말투에는 전혀 그로부터 느끼지 못했던 설명하기 어려운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


“야, 스팅비. 난 너한테 질문은 꼭 해야 한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순간 직감했다. 아, 뭔가 있구나.

그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근데 질문하기 전에 답은 벌써 알고 있다. 그래도 물어봐야 한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니까.”

나는 바로 말했다.

“야, 질질 끌지 말고 이야기해. 뭔데 도대체?”

그러자 파트너가 물었다. 혹시 내가 다운타운 쪽에 있는 지역에서 좀 잘 알려진 BBQ 식당에 가서 점심 메뉴 할인을 안 해 줬다고 직원들과 다툰 적이 있냐고 묻는 거였다. What…?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리고 잠시 나도 모르게 뜸을 들이다


“어…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니? 점심값을 아끼겠다고 내가 식당 종업원이랑 시비를 일으킬 사람으로 보이니? 그것도 우리 경찰서 제복을 입고 완전무장한 채로?”


그제야 파트너의 얼굴이 확 풀렸다. 아까까지 어색하고 단호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치 묵은 체증이 내려간 사람처럼 말하면서 시원시원하게 웃어 됐다.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너한테 질문하기 전에 답은 벌써 알고 있다고 했잖아!”

나는 바로 되물었다.

“야, 근데 누군데 그 똘기 부린 놈이? 우리 경찰서 사람이야?”


파트너는 아직 모른다고 했다. 위에서 찾고 있고, 식당 쪽에서 우리 쪽 사람이라고 해서 컴플레인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이야기는 너무 어처구니없고, 또 너무 쪽팔려서 오늘 일기에 쓰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이게 현실이다. 곧 찾아지게 될 그 모지리는, 어렵게 쌓아온 경력이든 이제 막 배지를 단 신참이든 간에 결국 그 배지를 내려놓고 나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 황당한 경우도 있다. 얼마 전에는 다른 경찰서 경사가, 성인이 얼마 남지 않은 17살짜리 여학생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다가 경찰차에 장착된 MDT로 그녀 모르게 차량 조회를 해서 주소를 알아내고 집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불법으로 차량을 세운 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꺼내다가 결국 감옥에 갔다. 또 어떤 모지리는 자기가 딱지를 끊어놓고는 자기가 해결해 주겠다고 하면서 여자 전화번호를 받고, 나중에는 영상으로 자기 성기 사진까지 보내다가 역시 감옥에 갔다.


“이 두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라도 먼저 분노가 치밀 것이다. ‘미친 새끼들이다’라는 말부터 나올 것이다. 다만 막상 그 안을 들여다보면, 속사정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래전부터 얽혀 있던 관계가 뒤틀리며 프레임이 씌워진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드러난 내용 그대로가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세부 사정과 별개로 분명한 것은 있다. 저 두 놈은 처음부터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을 넘은 순간부터는 어떤 변명도 힘을 잃는다. 여자가 먼저 다가왔느니, 분위기에 휩쓸렸느니, 무슨 말을 보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객기와 욕망 앞에서 판단을 놓친 대가를, 영창이라는 가장 분명한 형태로 치르게 된 것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난다. 한심해서 나의 억누르고 있던 분노의 게이지가 빨간 경고 라인을 지나 경고음을 낼 정도다. 그러면서 동시에 슬퍼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한때는 경찰이었던 그들도 나름의 명예와 사명감을 품고 경찰이 되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를 위해 잘해 보겠다고, 나라를 위해 일해 보겠다고, 아니면 적어도 자기 인생에서 떳떳한 직업 하나는 제대로 가져 보겠다고 배지를 달았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깊이 들어와 현실과 마주하고 나면 전혀 다른 세상에 부딪힌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 경찰관들이 생긴다.


이렇게 예상 밖의 똘기를 부리는 모지리들도 우리 중에 섞여 있고, 황당한 일들이 종종 벌어지는 게 바로 여기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나를 잘 알고 있는 파트너조차도 당연히 내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또 제발 내가 아니기를 바라면서도 조심스럽게 확인차 물어보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워낙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믿고 따르고 심지어 가르치기까지 했던 경찰관들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내 소설 속에 넣어 둔 모범 경사 같은 장면도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틀 전, 내가 한 명 건너 아는 경찰관이 교통 위반 차량을 세웠다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금도 이 사건이 뉴스에도 나오고 있다. 그를 쏜 상대도 현장에서 다른 경찰관들이 쏜 총에 맞아 벌집이 된 채 죽었다고 했다. 다행히 의식은 돌아오지 않은 채 식물인간처럼 누워 있기는 해도, 목숨만은 간신히 붙어 있다고 했다. 혹시라도 더 늦기 전에 한 번은 보고 와야 한다고 그 친구가 부탁해 왔었다.


그래서 오늘은 일 끝나는 대로, 그를 잘 아는 같은 경찰서 동료가 나더러 함께 가자고 해서 급히 그 병원 중환자실에 다녀오는 길이다. 이런 이야기는 절대로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나 또한 저 자리에 놓일 수 있다는 생각을, 경찰들은 늘 마음 한켠에 품고 살아간다.


얼마 전 나는 무식하면 용감하다 3에서 경찰을 사칭하며 차를 세우는 일이 왜 그렇게 위험한지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괜히 위험한 것이 아니다. 그런 짓은 정말 한순간에 사람의 목숨을 바꿔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그 경찰관도 분명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멀쩡했을 것이다. 가족과 아이들, 아내에게 평소처럼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을 것이다. 그런데 그 평범한 아침 인사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상황 앞에 지금 놓여 있다.


나도 경찰이 되기 전에는 몰랐다. 예전에 경찰차 여러 대와 경찰관 여러 명이 한 용의자를 잡으려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며, 겨우 저런 놈 하나 잡겠다고 저렇게까지 인력 낭비를 하고 시간 낭비를 하고 우리가 낸 피 같은 세금을 낭비하며 저렇게 쓰냐고 비웃듯 떠든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몇 초 만에 벌어질 수 있는지, 왜 한 사람을 잡는 일에도 그렇게 많은 눈과 손과 지원이 필요한지, 그때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가끔 그런 장면이 떠오르면 그때 내가 가볍게 내뱉었던 말들이 너무 부끄럽고, 또 그 상황 속에 있었던 경찰관들에게 미안해진다. 지금은 안다. 그때 내가 비웃었던 건 과잉 대응이 아니라, 누군가 살아서 집에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대응이었다는 것이었다.


아카데미 시절, 가드너와 잭슨 경사가 했던 말이 있다. 영화에 나오는 영웅이 되고 싶거나 겉으로 멋있어 보이는 경찰이 되고 싶은 놈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으로 돌아나가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좀 웃기기도 했고, 괜히 조교들이 생도들의 기강을 처음부터 잡으려고 거칠게 던지는 말쯤으로 가볍게 넘겼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정말 귀가 찢어질 듯한 총성이 울리고, 총구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이 오면 그 말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된다.


경찰이라는 직업은 겉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버텨내는 것이 너무 다르다. 그리고 현실은 총성과 법정만으로 사람을 흔드는 것이 아니다. 더 직접적으로 마음을 식게 만드는 순간들도 있다. 현장에서 정말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같이 들어와야 할 경찰이 겁을 먹고 그대로 굳어 서 있는 경우들이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 빌딩이든 집이든 알람이 터져 출동했고, 안에 누가 있는지 아직 확인도 안 된 상황인데 혼자 문밖에 서 있거나,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바로 옆에서 멀뚱히 보고만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순간에는 정말 귀싸대기라도 날리고 싶을 만큼 열이 오른다.


특히 그런 모습이 여자 경찰들 쪽에서 더 자주 보일 때가 있어서 더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성별이 핵심은 아니다. 진짜 핵심은 배지를 달고 이 일에 들어왔으면, 적어도 서로의 등을 비워 두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몇 초 망설이는 사이에 누군가는 피를 흘리고, 누군가는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는 그런 경우를 직접 겪은 적도 있다.


이 일은 선량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현장의 현실은 종종 그보다 더 냉정하다. 시민을 지키기 전에 먼저 나와 내 파트너가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순간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이것도 빼놓을 수 없다. 내 주위만 둘러봐도 경찰들의 이혼은 너무 흔하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어떤 경우엔 다섯 번까지 가는 걸 어렵지 않게 본다. 더 기가 막힌 건, 어떤 놈들은 그걸 꼭 훈장이나 계급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벌리고 다닌다는 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나도 결국 저렇게 되는 건 아닐까. 밖에서는 온갖 정의로운 척, 모범 경찰인 척 다 하면서 정작 제일 기본이어야 할 자기 가정 하나 제대로 못 지키는 모습은 솔직히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그리고 그 끝에는 꼭 경찰 본인만 남는 것이 아니다. 오늘 병원에서 본 가족들의 모습과 흐느끼는 소리가, 지금 맥주 세 캔을 비워냈는데도 아직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한 채 주저앉듯 무너져 내리던 아내와,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다 이해하지 못한 채 곁에 서 있던 아이들, 그리고 그 앞에서 차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서 있던 사람들.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 직업이 결코 한 사람만 감당하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물론 헤어져야 했던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본 현실 속에는, 그 무게를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결국 떠나는 아내들도 분명 있었다. 누가 특별히 더 나빠서라기보다, 이런 삶 자체가 감당하기 너무 버거워서 끝내 내려놓게 되는 경우들도 있다는 것을 나는 현장에서 보게 된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미국에서 경찰과 결혼해 산다는 것은 그저 평범한 결혼생활과는 다른 무게를 함께 짊어지고 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혼하는 순간, 아내 역시 더는 완전히 평범한 아내로만 살아가기 어려워진다. 늘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먼저 계산하게 되고, 전화 한 통과 늦은 귀가 하나에도 불길한 상상부터 앞서게 되며,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일을 마음 한편에 품은 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군인 가족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은 생각보다 변수가 너무 많은 일이다. 지금 나처럼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비교적 일정한 스케줄을 가지는 것도 사실은 어느 정도 시니어리티가 쌓여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근무 스케줄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으로 치면 가족들이 모이는 추석이나 설 같은 연휴도 대부분 근무에 나가야 하고, 누군가는 반드시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스케줄이 끝이라는 것도 아니다. 언제든 상황은 바뀔 수 있고, 바로 투입되어야 하는 일들은 예고 없이 생긴다.


특히 태풍이나 폭설 같은 자연재해나 더 큰 재난이 발생하면 경찰이나 소방관들은 가족을 뒤로하고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반복되다 보면 집에 남아 있는 아내와 가족들은 점점 더 혼자 남겨지는 시간에 익숙해지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쌓아가게 된다. 그 시간이 계속 쌓이다 보면 결국 지쳐 버리는 경우들도 많다.


어떤 경찰은 총 앞에서 무너지고, 어떤 경찰은 수치심 앞에서 무너진다. 어떤 경찰은 법정에 불려 다니는 과정에서 깎여 나가고, 어떤 경찰은 자책과 침묵 속에서 혼자 가라앉는다. 더 안타까운 건, 경찰서와 카운티가 병원과 협업해서 웰니스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막상 거기로 발길을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개인정보는 보장된다고 하지만, 상대 변호사들이 어떻게든 상담 이력을 물고 들어올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고, 동료들 사이에서 약해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찰은 늘 두 가지와 싸운다. 밖에서 오는 위험과 안에서 무너지는 자기 자신과 사람들은 보통 경찰이 무너지는 순간을 총성이 울릴 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총알보다 먼저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아무도 모르게 오래 쌓여온 수치심일 수도 있고, 자책일 수도 있고,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조차 말하지 못한 채 버티게 만드는 침묵일 수도 있다.


배지를 달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복을 입었다고 해서 상처가 비껴가는 것도 아니다. 경찰도 결국은 사람이다. 최근 FBI와 DOJ 자료를 보면, 경찰 자살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비극으로만 볼 수 없는 수준으로 다뤄지고 있다. 같은 조직 안에서 연달아 이어지는 사례들까지 따로 연구될 만큼, 이 침묵은 이미 오래되고도 깊다. 경찰이 자살로 사망할 위험이 타살보다 훨씬 더 크다는 지적도 더는 낯선 말이 아니다.


그래서 이 직업을 생각하면 가끔 이상할 만큼 쓸쓸해진다. 아침에는 가족에게 인사를 하고 멀쩡히 문을 나섰던 사람이, 밤이 되기 전에 총상으로 쓰러질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얼굴을 하고 근무를 이어가다가 아무도 모르게 속에서 먼저 무너져버리기도 한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도 있지만, 끝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실이 안타깝고 또 서글프다.


정해 놓은 내 맥주 리미트도 거의 다 되어 가고, 손끝에 물고 있던 시가도 어느새 끝까지 타 들어가고 있다. 오늘 밤 병원에서 봤던 가족들의 얼굴과 낮에 들었던 이야기들이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렇게 하루가 끝나가는데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과연 어떤 결말 쪽으로 가고 있는 걸까…


P.S.
지금 술기운도 조금 올라온 상태지만… 잠들기 전에 미리 양해 말씀드립니다. 제가 올리는 글은 부탁드리건대 문법이나 글 쓰는 방식은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있는 그대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쓰는 말들이 어쩌면 주정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제안이나 조언을 해 주시는 마음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작가가 될 생각은 없고, 그저 쓰고 싶은 대로, 생각나는 대로 적고 싶을 뿐입니다. 그냥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읽어 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제게는 충분히 감사한 일입니다.


스팅비 올림

2026-03-30 11:0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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