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Uncertainty

바다와 사막 사이

by 스팅비 StinGBee

이번 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각을 잃었다. 전쟁과 계속되는 inflation(자막: 물가 상승) 속에서 가계는 휘청거리고, 나는 몇 년 동안 쌓아 놓은 inventory(자막: 재고)들을 직원들에게 시켜 TikTok에 파격적인 세일로 계속 내보내고 있다. 매상이 조금 오르기는 해도 큰 도움이 되는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어차피 재고라는 게 묵은지처럼 묵혀두었다가 나중에 꺼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속은 쓰려도 내다 팔기로 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식으로 얼마나 더 끌고 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예전에 평생 장사하던 노부부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장사꾼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처음 들었을 때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개가 똥을 왜 먹느냐고, 참 비유도 지저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장사를 해 보니 이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장사를 하면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일들을 겪고 나니, 그분들이 왜 그런 비유를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만큼 속이 타버려서 생똥이 아니라 재 같은 것만 나오니, 똥개조차 그 시커멓게 타버린 똥은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다는 뜻이었구나 싶다.


재고는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신상품도 나름 좋은 품질로 최대한 싸게 들여와서 내놓고는 있다. 그런데도 재고는 계속 쌓인다. 총 inventory만 따져도 한화로 20억은 훌쩍 넘는다. 매장과 창고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영업이 끝난 뒤, 불이 꺼진 상태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묘해진다. 담담한데도 속은 타들어간다.

그 심정은 꼭 바다 한가운데 빠져서 얼굴만 겨우 물 위로 내놓고, 누군가 나를 발견해서 구조해 주기를 바라며 숨을 깔딱깔딱 쉬고 있는 느낌과 비슷하다.


불경기라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런데 점심 먹으러 쇼핑몰에 가 보면 어떤 곳은 사람들이 줄까지 서 가며 장사가 잘 된다. 그러면 괜히 저 집은 왜 저렇게 잘될까 싶고,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올라온다. 나는 재고를 줄이려고 애를 쓰고, 가격을 맞추려고 버티고, 좋은 물건을 최대한 싸게 들여오려고 머리를 굴리는데도 제자리걸음 같고, 어떤 곳은 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걸 보면 사람 마음이 참 곱게만 가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 경찰 일도 편한 게 아니다. NO KING PROTEST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정부 소유 건물을 상대로 테러 위협까지 들어오니 더 쉬지도 못한다. 안 그래도 더운데 무거운 장비 위에 혹시 모를 폭동 상황에 대비한 최류탄, 섬광탄등 진압용무기들을 챙기고 각종 기어들까지 겹쳐 입고 빌딩 안팎에서 대치하고 있으면, 숨 쉬는 것조차 답답해질 때가 있다. 방탄복만으로도 더운데 그 위로 또 장비를 덧입고 서 있으면 몸은 몸대로 짓눌리고, 머릿속은 머릿속대로 뜨거워진다.


동료가 군중진압용 캔니스터를 꺼내 준비중

개인사업은 바다 한가운데 빠진 느낌이라면, 경찰 일은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서 물도 없이 방향을 잃고 걷는 느낌이다. 꼭 숨 쉬기 힘들 정도로 살갗이 타들어가는 사막 한복판에서, 어디가 끝인지도 모른 채 겨우 한 걸음씩 떼는 기분이다. 거기에 집안일까지 뭐 하나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일들이 겹치니 짜증도 완전히 올라와 있다. 말 그대로 업업된 상태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치고, 머리는 계속 돌아가는데 정작 답은 하나도 안 보인다. 이럴 때는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버텨야 하는지, 무엇을 붙들고 밀고 나가야 하는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오늘 갑자기 위에서 사람이 내려왔다. C 경정이었다. 파트너 K와 함께 근처 스테이크하우스를 찾았다. 그런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왜 왔을까? 며칠 전 어떤 모지리가 BBQ 집에서 똘기 부린 일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쪽으로 인사발령이라도 통보하러 온 걸까? 안 그래도 집안일과 개인사업 때문에 복잡하고 피곤해 죽겠는데, 앞을 알 수 없는 일들까지 겹치니 평소 좋아하는 연어스테이크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때였다. C 경정 앞에는 크고 맛나 보이는 스테이크 버거가 나왔고, 파트너 K 앞에는 늘 즐겨 먹는 스테이크 샐러드가 나왔다. C 경정은 먹기 전에 음식 앞에서 기도를 했다. 여느 때보다 오늘은 조금 길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런 걸 보면 젊은 나이에 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지만, 그 안에 자기 나름대로 붙들고 있는 신앙심이 있고, 그래서인지 인간적인 결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냥 위에서 지시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하루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여서 묘하게 인간미가 느껴졌다.


파트너 K는 늘 그렇듯 스테이크 샐러드를 주문하면서도 블루치즈는 넣지 말라, 스테이크는 어느 정도로 익혀 달라며 덩치와는 안 어울리게 까다롭게 굴었다. 나는 속으로 저 덩치에 맞지 않게 참 유난도 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샐러드가 나오자마자 파트너 K가 보더니 말했다.

“어, 여기 블루치즈가 올라가서 나왔어. 나 이거 못 먹어.”


나 같으면 그냥 걷어내고 먹었을 텐데, 저놈은 정말 별걸 다 따진다고 생각했다. 웨이트레스를 불러서 블루치즈 때문에 못 먹겠다고 나름 웃으면서 정중하게 이야기했고, 웨이트레스도 약간 당황한 웃음을 지으며 미안하다고 다시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새로 만든 스테이크 샐러드가 다시 나왔다. 그런데 파트너 K가 포크로 스테이크 위를 툭툭 건드려 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확 바뀌었다.


“What the fuck. They just scraped the blue cheese. Look. Here, there. I can’t eat this shit.”
(자막: 젠장. 블루치즈만 대충 긁어낸 거잖아. 봐, 여기랑 저기. 난 이런 건 못 먹어.)


평소에는 너그럽고 둥글둥글한, 그냥 옆집 아저씨처럼 보이던 얼굴이 순간 전쟁터에 들어가기 직전 열받은 수염 난 바이킹처럼 변해 버렸다. 웨이트레스를 다시 불렀고, 상황을 설명할 때 어찌나 딱딱하고 매섭게 말하던지 보고 있던 내가 다 민망해질 정도였다. 나는 속으로 그냥 좀 처먹지, 왜 저렇게까지 까다롭게 구나 싶었다. 다음에 음식을 시킬 때 진짜로 침이라도 뱉으면 어쩌려고 저렇게 까탈스럽게 구는지 나까지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웨이트레스는 이번에는 더 당황한 얼굴로 미안하다고, 새로 다시 해 오겠다고 했지만 기분이 완전히 상한 파트너 K는 됐다고, 더 이상 여기서 주문 안 하겠다고 했다. 아마 저 정도면 주방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것이다. 분위기는 어색해졌고, 파트너 K는 결국 쫄쫄 굶었다.


그렇게 식당 밖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파트너 K가 상관이 보는 앞에서 나에게 단호한 명령조로 물었다.

“야, 스팅비. 여기 파킹장 둘러봤어? 저기 가운데 쪽 파란 승용차에 사람이 죽어 있다. 넌 제일 먼저 어떻게 할 거야?”


순간 나는 저 인간이 음식 때문에 배고프고 짜증이 나서 나한테 화풀이를 하나 싶었다. 그런데 C 경정은 옆에서 내가 어떤 대답을 얼마나 빨리 하느냐를 보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서 나는 바로 대답했다.

“상황 통제부터 해야지. 당연한 거 아니겠어.”

파트너 K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그 통제를 어떻게 할 건데?”

나는 crime scene tape(자막: 범죄 현장 통제선)을 최대한 넓고 길게 사각형으로 치고, 그 안에 있는 차량들은 절대로 못 빠져나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파트너 K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저기 서 있는 Tesla(자막: 테슬라)들처럼 요즘 차들은 카메라가 차량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서 중요한 증거를 잡아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다음에는 주변 카메라들을 찾을 거라고 했다.

그러자 다시 물었다.

“통제선 안에 있는 차주들이 와서 난리 치면 어쩔 건데?”


나는 여기는 homicide scene(자막: 살인 사건 현장)의 연장선이니, 통제선 안 차량들은 모두 상황이 확인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evidence(자막: 증거물) 취급을 해야 하니 떠날 수 없다고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또 물었다.

“그래도 억지로 끌고 가겠다고 하면?”

나는 설명 끝에 말 안 들으면 subpoena(자막: 소환장)을 받고, 그래도 계속 억지 부리면 결국 수갑을 차는 것밖에 더 있겠냐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까까지 딱딱하고 단호하던 파트너 K의 표정이 풀리면서 갑자기 말했다.

“Good eyes. Good call.”
(자막: 좋다. 눈도 좋고 판단도 좋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상관도 바로 말했다.

“Very good”. 그러더니 우리 둘을 보면서 황당한 소리를 지껄였다.

“너희 둘 다 수사관 쪽으로 들어와야겠다.”


“With all due respect, sir, I like where I am. No, thank you.”

(자막: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 있는 자리가 좋습니다. 사양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파트너도 싫다고 했다. 상관은 파트너에게 은퇴를 미루고 앞으로 5년 더 같이 일하자고 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은 하얘졌다.

“아, 오늘 이 둘이 나만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고 작정하고 왔구나.”

나는 지금 이 카운티 빌딩 자리에서 조용히 뼈를 묻고 싶다. 수사관도, VICE도, 다른 데로 옮겨 다니는 것도 이제는 다 싫다. 개인사업도 이렇게 복잡하고, 집안일도 머리를 짓누르고, 바깥은 시위와 위협으로 시끄러운데, 직장까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 놓이는 느낌은 정말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든다.


둘은 떠나고 혼자 빌딩 사무실에서 묵묵히 장가를 바로 보며 앉아 있는데 생각이 떠올랐다. 결국 내가 오늘 하루 종일 붙잡고 있던 건 같은 문제였다. 장사도 불확실하고, 경찰 일도 불확실하다. 하나는 바다 한가운데서 구조를 기다리는 느낌이고, 다른 하나는 사막 한가운데서 방향을 잃는 느낌이다. 그러다 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아직 정확히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나는 이렇게까지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있을까?”


아마 사람은 결과 자체보다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그 uncertainty(자막: 불확실성) 때문에 더 흔들리는 것 같다. 주식도 제일 싫어하는 게 uncertainty다. 오르는지 내리는지보다, 도무지 예측이 안 되는 순간에 더 크게 출렁인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은 불안과 근심걱정 때문에 며칠 밤을 새우고, 우울해지고, 심하면 극단적인 생각으로까지 밀려가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통계적으로 따져보면, 그렇게 붙잡고 상상하며 두려워했던 일들은 실제로 일어나는 것보다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 나만 보더라도 지금 하고 있는 개인사업의 앞날도, 경찰 일의 앞날도 지금은 밝게만 보이지 않는다. 둘 다 어둡고 불확실하다. 이러다 정말 매점을 폐업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경찰 일에서도 지금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다시 더 미친 세계로 끌려 들어가게 될지, 머릿속으로는 별별 생각이 다 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나의 마음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까지 미리 끌어다가 혼자 겁을 먹고 주저앉으려 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그렇게 겁먹고 상상했던 일들 가운데 실제로 일어난 것보다 끝내 일어나지 않은 것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렇다면 아직 오지도 않은 일 때문에 내가 먼저 무너질 필요까지는 없는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냥 낙천적인 사람이 되기로 했다기보다는, 적어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까지 미리 당겨 와서 나를 짓누르게 두지는 말자고 마음먹어야겠다.


불확실성은 여전히 그대로 있지만, 그 안에서 내가 먼저 나를 무너뜨리지는 말고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어쩌면 최악을 미리 살아보는 상상이 아니라,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버티는 단순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결국은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을 붙들고 내가 먼저 무너질 것이냐, 아니면 불확실한 가운데서도 내 마음을 어떻게 붙들고 버틸 것이냐는 결국 내 마음가짐과 받아들이는 방식에 달려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이라는 건 꼭 지금 당장 눈앞에 망가진 현실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감각, 그 불확실성이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든다. 어쩌면 내가 지금 버거운 것도 일 자체보다 바다에서도 사막에서도 아직 끝이 안 보인다는 사실 때문인지 모르겠다.


지금 시간은 밤 11시 40분을 지나고 있다. 당분간은 글을 쓰는 일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이렇게 서둘러 생각일기를 남기고 잠시 들어와 숨만 고른 뒤 다시 나가야 한다. No King 시위와 폭탄 테러 위협으로 비상대기와 비상근무가 이어지는 중이라 마음도 몸도 좀처럼 풀릴 틈이 없다. 쉬고 싶다. 자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눕고 싶다. 그리고 일어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댓글과 답글도 달면서 한숨 돌리고 싶다. 그런데 그래도 결국 할 일은 해야 한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바다에서도 아직 숨을 놓지 않고 있었고, 사막에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답을 다 아는 사람처럼 살 수는 없어도, 적어도 불확실성 속에서 내가 할 일을 하나씩 해내며 버티는 것,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그 정도의 마음가짐인지도 모르겠다.


2026-04-01 밤 11시41분


※ 짧은 안내 말씀

작가님들, 안녕하세요. 스팅비입니다. 갑작스러운 일들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당분간 스케줄이 많이 뒤죽박죽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예전처럼 댓글과 답글을 바로바로 달아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틈틈이 시간이 나는 대로 글은 계속 읽고 있겠습니다. 다만 답글이나 댓글 인사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설은 예약글로 설정해 둔 상태라 예정된 날짜에 정상적으로 발행될 예정입니다. 근무 시간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오면 저도 평소처럼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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