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품에 안으면 15장-1부

(When I Hold You in My Arms)

by 스팅비 StinGBee


[PART 1/4] 너를 품에 안으면 [15장-1부] — 지워진 얼굴

(When I Hold You in My Arms — EP15-1)

낯선 집에서도 먼저 ‘규칙’을 세우는

한 여자가 텍사스에 이사 온 첫날,

그녀는 창문 블라인드를 끝까지 내렸다.


낮인데도 방 안이 어두워졌다.

그 어둠이—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밖에서 ‘누가 보고 있다’는 느낌이, 그제야 사라졌다.

그녀는 박스를 풀지 않았다.


침대도, 식탁도 아니고—노트북부터 꺼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손이, 이상할 만큼 익숙했다.


먼저 이사 온 지역을 인터넷으로 훑었다.

당장 살아야 하니까—필요한 것부터 찍었다.


한인 마트. 병원. 약국. 은행. 식당.

어디가 가깝고, 어디가 덜 눈에 띄는지.

지도 위에서 동선을 몇 번이나 겹쳐 그렸다.


모자는 현관에 걸어두지 않았다.

손이 닿는 곳에 둬야 했다.

밖에 나갈 때마다 그건 습관이 아니라 절차였으니까.


캘리포니아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그녀는 ‘도피’가 아니라 ‘재시작’이라고 믿었다.


처음엔 나름 초호화 저택이었다.

게이트가 있고, 잔디가 있고, 밤이면 조명이 자동으로 켜지는 집.


사진 한 장만 올려도 사람들이 “꽤 괜찮아 보인다”라고 말해줄 배경.

댓글은 늘 비슷했다.


“그래도 잘 사네.”

“아직 많이 남았네.”


그 말들이 위로처럼 들렸다. 적어도 그때까진.

하지만 집은—남는 게 아니라, 줄어드는 쪽이었다.


처음엔 “임시”였다.

다음엔 “정리 중”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사가 아니라 후퇴가 됐다.

방이 하나씩 사라졌다.


천장이 낮아지고, 창문이 가까워지고, 마당이 없어졌다.

그 대신 늘어난 건 박스였다.


뜯지 않은 박스. 다시 테이프를 붙인 박스.

처음부터 “다시 나갈” 걸 알고 포장한 것 같은 박스.


시간이 지나면서 집은 점점 작아졌다.

처음엔 “관리 부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마지막엔—그냥 현실이었다.


작은 집.

작은 집은 불편한 게 아니라, 변명이 줄어든다는 게 불편했다.


공간이 작아질수록 숨길 것도 작아져야 했다.

한인 마트, 한인 카페, 교회 앞 주차장.


그 작은 반경에서 시선은 늘 먼저 붙었다.

반가움이 아니라 판정이었다.


한물간 연예인.

실패한 연예인.

나이는 못 속이지.


말은 직접 오지 않았다.

직접 오지 않아서 더 정확하게 들렸다.


그래서 그녀는 더 멀리 옮겼다.

교포가 상대적으로 적고, 자기를 기억하는 사람도 덜한 곳.


“설마?” 하고 지나가줄 만큼 넓은 곳.

그 정도면 숨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텍사스는 “조용한 도시”가 아니었다.

여긴 조용해서 안전한 게 아니라—그냥 사람 눈에 덜 띄는 곳이었다.


문제는, 사람 눈을 피한다고

시스템까지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였다.


렌트 계약서의 이름, 전기·인터넷 명의, 운전면허 주소—

그런 것들은 조용히 남고, 조용히 이어진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남아 있는 것’들이

신고서 한 장이랑 붙어버리면—절차는 그녀를 찾는다.


텍사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사 상자가 아직 벽에 기대어 있던 오후,

모르는 번호가 울렸다.


여자는 받지 않으려다—받았다.

받지 않으면 더 크게 돌아오는 게 전화였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건조했다.

상냥하지도,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그냥… 절차였다.


“OO Police Department. This is Officer Barnett.

Am I speaking with Ms. Choi Yoon-seo?”

(자막: 경찰서입니다. 바넷 경관입니다.

최윤서 씨 맞으십니까?)


“I’m calling regarding your fraud report.

I need to confirm a few details.”

(자막: 사기 신고 건 관련해서

확인할 사항이 몇 가지 있습니다.)


“We’ll need to schedule an in-person interview.

What date works for you?”

(자막: 직접 오셔서 면담이 필요합니다.

가능하신 날짜가 언제일까요?)


윤서는 “저요?”라는 말을 삼켰다.

그 말은 늘—너무 늦게 나오니까.

“네. 제가 최윤서 맞는데요… 무슨 일이시죠?”


상대는 몇 가지를 확인했다.

이름, 생년월일, 주소.


윤서는 짧게 대답했고, 대답하는 동안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필요하면 안내 전달을 위해 방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 한 문장에, 윤서의 심장이 한 번 더 내려앉았다.

경찰이 집에 오면 이웃의 커튼이 흔들린다.


커튼이 흔들리면, 다시 시선이 붙는다.

시선이 붙으면—이름이 돌아온다.


경찰서로 가기 전.

전화를 끊고도 여자는 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엄지손가락이 화면 위를 맴돌았다.

변호사.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 업계 지인이 “혹시 몰라”

하고 남겨준 번호가 있었다.


윤서는 연락처를 눌렀다.

통화 버튼 위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예전 같으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돈이 아니라 체면이 먼저였고, 체면을 지키는 게 일이었다.


근데 지금은 달랐다.

변호사 비용이—갑자기 현실로 다가왔다.


저택에서 작은 집으로 옮겨오면서,

그녀는 “비용”이라는 단어를 몸으로 배웠다.


렌트, 보험료, 생활비, 예상치 못한 수리비.

그리고 ‘상담료’ 같은 단어가 이제는 가볍지 않았다.


‘지금 변호사를 부르면… 일이 더 커지는 걸까?’

‘내가 뭔가 숨기는 사람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그리고… 내가 그 돈을 낼 수 있나?’


윤서는 결국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대신 폰을 내려놓고, 작게 중얼거렸다.


“우선… 내가 직접 가서 정리하자.”

집에서 기다리느니—직접 가자.


절차가 나를 끌고 가기 전에, 내가 먼저 들어가자.

그런데 그 ‘우선’이 하루를 넘겼다.


윤서는 집에 혼자 앉아, 전화 화면만 몇 번이고 켰다가 껐다.

다음 날 오후, 초인종이 울렸다.


문밖에는 제복을 입은 **uniformed officers** 두 명이 서 있었다.


순찰차는 도로 쪽에 반쯤 걸쳐 세워져 있었고,

한 명은 손에 얇은 서류철을 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신고 건 관련해서요.

다시 전화드렸는데 연결이 안 돼서, 서류 전달 겸 안내드리러 왔습니다.”


그들은 집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문 앞에서 필요한 말만 했다.


신분 확인도 길게 끌지 않았다. 이름과 주소만 짧게 대조했다.


“가능하시면 경찰서로 연락 한번 주시고요. 면담 일정만 잡으시면 됩니다.”


대신 연락처 카드 한 장과 케이스 번호가 적힌 안내문을 남겼다.

경찰이 돌아가자, 집은 더 조용해졌다.


조용한데—커튼이 흔들릴 것 같은 공기만 남았다.

윤서는 그제야 결론을 냈다.


기다리면 커지는 건 오해가 아니라—절차였다.


여자는 휴대폰을 쥔 손을 놓지 못한 채,

저장된 연락처 목록을 천천히 내려갔다.


수많은 이름. 수많은 번호.

그중 **‘이도윤기자’**라고 저장된 이름 위에서,

가느다란 손가락이 멈췄다.


윤서는 숨을 한 번 고르고, 휴대폰 화면을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두 번 울린 뒤, 잠긴 목소리가 받았다.


“응. 나야.”


말을 고르려 했는데, 입에서 먼저 나왔다.


“뭐 좀 알아봐 줘야겠어.”


짧게. 더 짧게.

감정을 넣으면, 상대가 먼저 냄새 맡는다.


“방금 경찰이 날 보자고 했어.”

“내가… 어떤 투자사기에 ‘가해자’로 올라가 있대.”


잠깐 정적.

윤서는 그 정적을 못 참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네가 좀 알아봐 줄 수 있어?”

“가능하면 빨리.”

“알아내는 대로 바로 연락 줘.”


더 말하면 흔들릴 것 같아서, 그녀는 마지막을 딱 잘랐다.


“끊어.”


통화가 끝났다.

윤서는 휴대폰을 내려놓고도 한참 손을 놓지 못했다.


그때서야, 자신이 숨을 제대로 쉬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다음: 15장-2부에서…


안녕하세요.

독자분들의 원활한 열람을 위해 본편(최신 회차) 업로드 일정을 아래와 같이 안내드립니다.

[본편 연재 업로드 일정]

3부 구성 챕터: 화~목, 하루 1부씩 업로드

4부 구성 챕터: 화~금, 하루 1부씩 업로드

※ 가능한 한 각 챕터는 동일 주 내 업로드를 완료하여, 이야기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운영하겠습니다.


통합본(정주행용) 업로드 안내

통합본은 매주 월요일 업로드됩니다.

현재 통합본은 본편 진행 상황 대비 약 2~3 챕터 정도 후행하고 있습니다. 통합본은 정주행 하시는 분들을 위한 아카이브(묶음) 버전으로, 완결된 챕터부터 순차적으로 묶어 업로드하기 위한 방식입니다.

꾸준히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안내 — 모방 범죄 주의]
본 작품에는 범죄 수법·수사 절차·법정 장면이 현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범죄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며, 현실에서의 모방을 강력히 금합니다.
작품 속 사건은 허구 또는 각색이며, 어떠한 범죄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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