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왼손잡이 소년의 겨울
내 왼손은 태어날 때부터 일종의 결함이었다.
어른들은 그것을 '버릇'이라 불렀고, 조금 더 정직한 이들은 '고쳐야 할 것'이라 단정 지었다. 내가 처음 숟가락을 쥐었을 때, 어머니 전윤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그 손을 바라보았다고 했다. 기뻐해야 할 순간에 어머니의 얼굴을 스친 것은 환한 미소가 아니라, 아주 짧고도 깊은 망설임이었다.
망설임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나는 그 표정을 본 적도 없으면서, 어쩐지 평생 기억하는 것 같았다.
1988년의 대한민국에서 왼손은 틀린 손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글씨를 쓸 때도, 공을 잡을 때도 모든 기준은 오른손이었다.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는 늘 설명을 요구받았지만, 열한 살의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왜 왼손이 먼저 나가는지, 왜 굳이 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지. 다만 확실한 건, 이 왼손 또한 내 몸의 정직한 일부라는 사실 뿐이었다.
몸의 일부가 잘못이 된다는 것. 그것은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이른 서러움이었다.
그해 겨울, 우리 가족은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있는 큰 이모네 연립주택 1층에 얹혀살고 있었다.
낡은 벽지 사이로 외풍이 칼날처럼 스미던 그 작은 방은 우리 다섯 식구의 고단한 숨소리로 늘 눅눅했다. 밤이면 이불속에서도 발끝이 시렸다. 가난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저 공기처럼, 냄새처럼,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은 분이었다. 화를 낼 때조차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만, 대신 시선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밥상머리에서 내가 무심코 왼손으로 숟가락을 들면, 아버지는 젓가락을 조용히 내려놓고 말씀하셨다.
"오른손."
그 한마디면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나는 서둘러 숟가락을 옮겨 쥐었고, 손목에는 어색한 긴장이 맺혔다. 오른손으로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는 동안, 왼손은 식탁 아래에서 가만히 떨고 있었다. 마치 들켜서는 안 될 죄를 숨기고 있는 죄인처럼.
혼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그 침묵이, 그 무거운 시선이 두려웠다. 아버지의 눈길이 내 손에서 떠나는 순간에야 비로소, 나는 숨을 쉬었다.
방과 후, 나의 일상은 운동장이 아닌 도덕산의 가파른 비탈길에 있었다.
생계를 위해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산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손에는 이가 빠진 괭이가, 내 손에는 흙투성이 자루가 들려 있었다. 우리는 꽁꽁 얼어붙은 땅을 파헤치며 칡뿌리를 찾았다. 흙 속 깊이 박힌 뿌리를 캐내는 일은 힘이 드는 만큼 정직했다. 캔만큼 얻었고, 파낸 만큼 살았다.
"운아, 이쪽 봐라. 이게 진짜배기다."
어머니의 부르튼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나는 왼손을 뻗으려다 멈칫하곤 했다. 산속의 바람은 살갗을 베어낼 듯 매서웠고, 칡을 캐기 위해 삽질을 할 때마다 왼손을 쓰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말없이 내 손을 감싸 쥐었다. 꼭.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머니의 손등에는 말라붙은 풀 자국과 흙먼지가 별처럼 박혀 있었다. 그 별은 칭찬받아도 숨기고 싶은 내 왼손을 묵묵히 받아주는 유일한 위로였다. 세상이 내 손을 틀렸다고 말할 때, 어머니의 손만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다시 부엌 한구석에서 인형 눈알을 붙이는 부업을 시작하셨다.
바늘에 찔린 자국, 풀에 짓무른 살갗. 작은 눈알 하나가 붙여질 때마다 어머니의 손끝은 조금씩 더 닳아갔다. 라디오에서는 시국을 알리는 무거운 보도가 흘러나왔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나는 그 이름들의 무게를 몰랐다. 다만 세상이 어른들에게는 늘 무거운 곳이라는 것쯤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머니의 한숨이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날 밤, 어머니는 처음으로 비밀 같은 이야기를 꺼내셨다.
"네 아버지는… 너 지우자고 했었다."
부엌의 공기가 갑자기 낯설게 변했다. 라디오 소리가 멀어졌다. 풀 냄새가 진해졌다. 아니면 원래 그랬는데, 그제야 느껴진 것인지도 몰랐다.
"가진 것도 없는 형편에 아이 셋을 어찌 키우냐고…. 근데 엄마는 그럴 수가 없었어. 꿈에서 용 두 마리가 내 뱃속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갔거든."
나는 그 용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다만 생각했다. 그렇게 대단한 꿈을 꾸고 태어났는데, 왜 나는 이 차가운 도덕산 비탈에서 칡뿌리를 캐며 왼손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아이일까. 어머니의 손등에 별처럼 남은 풀 자국을 보며, 어쩌면 저것이 길을 잃어버린 용의 흔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용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면 어디로 가는 걸까. 땅속으로 내려가 칡뿌리처럼 웅크리는 걸까. 나는 그날 밤, 내가 그 용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며칠 뒤, 도덕산 너머 하늘이 잠깐 깜빡였다.
노을도, 비행기 불빛도 아닌, 세상의 색을 한순간에 지워버리는 기묘한 섬광. 배가 고파 헛것을 본 거라던 어머니의 말에도 그 빛은 잊히지 않았다. 눈꺼풀 안쪽에 새겨진 것처럼, 불을 꺼도 남아 있었다.
어느 밤, 창밖에서 다시 그 빛이 터져 나왔다.
1988년 철산동의 겨울 공기를 가르며, 아주 조용히.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 빛은 불빛이 아니라 문처럼 보였다. 어둠 속에 난 문. 그리고 분명히,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고른 숨소리를 등 뒤에 새기고, 소리 없이 골목으로 나섰다. 왼손을 꼭 쥔 채로.
빛은 가까웠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왼손이 타오르듯 뜨거워졌다.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세상이 하얗게 지워졌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철산동이 아닌 곳에 서 있었다.
낯선 불빛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골목은 반들반들하게 포장되어 있었고, 내 눈앞에는 내가 본 적 없는 거대한 쇳덩어리들이 빛을 내뿜으며 소리 없이 달리고 있었다. 공기에서는 연탄 냄새 대신 차갑고 낯선 냄새가 났다.
나는 떨리는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 한가운데에, 불에 덴 것처럼 선명한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다.
숫자였다.
2025.